평양 고려호텔에서 외국인 시신이 발견됐다!

[신간] 제임스 처치 <평양의 이방인>

등록 2008.08.06 08:40수정 2008.08.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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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이방인> 겉표지 ⓒ 황금가지

▲ <평양의 이방인> 겉표지 ⓒ 황금가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크건 작건 항상 범죄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온갖 범죄가 판을 치는 미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범죄소설의 변두리인 아이슬란드나 호주의 작은 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에는 어떤 범죄가 있을까? 타인의 돈을 노리는 정교한 사기사건이나 유괴사건, 아니면 사이코 살인마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일도 북한에서 발생할 수 있을까?

 

제임스 처치(James Church)의 장편 <평양의 이방인>(박인용 옮김, 황금가지 펴냄)은 제목처럼 현대의 북한을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이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두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또 그곳에서는 누가 어떤 이유로 범죄를 저지를까 하는 점이다.

 

소설이라서 북한의 실제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인 제임스 처치는 수십 년 동안 서방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그러니 그가 들려주는 북한의 실상이 허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

 

<평양의 이방인>의 무대는 평양에서 시작해서 강계, 중국과의 국경도시 만포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도시들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 중 한명은 '평양이 점점 부르주아 경향를 띠어간다'라고 불평한다.

 

해외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일제 장난감이나 유럽의 보드카를 들여오고, 끗발 있는 사람들은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당 중앙 간부는 맥주는 마시면서 "왜 저런 쓰레기를 틀어 놓는 거야?"라고 불평한다.

 

그와는 관계없이 서민들의 생활은 어렵기만 하다. 하급 공무원들은 사무실에서 차 한잔도 마시기 힘들다. 시내의 아파트 수도는 툭하면 고장나서 밖에서 물을 받아와야 한다. 정상적인 절차보다는 5달러, 10달러짜리 화폐가 더 위력을 발휘한다.

 

공무원들은 항상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초상을 패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징계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업무용으로 카메라를 지급하면서 배터리를 빼놓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불편들을 모두 감수하고 일을 하며서도 월급은 제때 받지 못한다.

 

변두리의 모습은 좀 더 흥미롭다. 평양과는 달리 매춘을 알선하는 사람도 있고, 국경도시에 가면 러시아, 중국에서 온 많은 여자들을 술집에서 만날 수 있다.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배급표보다 러시아 돈이나 달러가 더 효과적이다.

 

국경도시의 활기 때문인지 물가도 비싸고 암거래도 많지만, 북한 정부의 공권력이 효과적으로 미치지는 못한다. 사람 하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는 이 국경도시들을 '범죄가 판치는 무법천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평양에서 발견된 외국인 시신

 

그러던 어느날, 진짜 범죄가 평양에서 발생한다. 주인공 '오 검사원'은 새벽에 평양 외곽에서 고속도로를 통해 다가오는 한 대의 자동차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감시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 자동차에 탔던 사람은 곧 시체로 발견된다.

 

뒤이어 평양의 고급호텔인 고려호텔에서도 외국인의 시체가 나온다. 사망한 외국인의 바지에서 핀란드 출신 국제원자력기구 요원의 신분증이 발견되자 인민보안성은 발칵 뒤집힌다. 이 요원의 죽음이 큰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 검사원도 이 사건 수사에 투입되지만 의문점이 많다. 호텔에서는 수상한 사람을 보았다는 직원이 하나도 없고, 정황상 그 시신은 외부에서 사망한 후에 누군가가 호텔로 들여온 것처럼 보인다. 시신에서 나온 신분증도 믿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외국인 수를 제한하고 있다. 각 지방 관서에서 출입증을 바탕으로 외국인 인원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다시 조사해서 누락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그 시체의 정체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부로부터 압력도 들어온다. 당 중앙 간부는 오 검사원에게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말한다. 대충 덮어두고 미제 사건으로 분류해 버리자고 말하며 은근히 협박하기도 한다. 곧 천지가 뒤집히고 하늘의 별이 떨어진다, 새로운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모르는 척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한다.

 

살인사건과 음모의 정체는 무엇일까

 

<평양의 이방인>에서 묘사하는 평양의 모습은 워싱턴과 비슷하다. 가운데에 강물이 흐르고 공원과 기념물이 많다. 중앙에 큰 탑이 있고 사건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워낙 폐쇄된 국가이기 때문에, 사건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건이 생겨도 그냥 덮어두는 것 아닐까.

 

그것을 추적하려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보내져서 어떤 형태로든 '제거'될 가능성도 많다. 북한의 요원들은 헝가리, 체코 등으로 파견되서 활동하고 서방요원들은 그들과 접촉해서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려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이야말로 고전적인 스파이 소설의 무대가 될 만한 훌륭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물론 수준 이상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평양의 이방인>은 그런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다. 구성과 사건도 독특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변화를 바라는 사람, 낡은 가치관을 고집하는 사람, 이도저도 관심없이 돈벌이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 등.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각이고 천차만별인 만큼, 북한의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본다는 것 만으로도 <평양의 이방인>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평양의 이방인> 제임스 처치 지음 / 박인용 옮김. 황금가지 펴냄.

평양의 이방인

제임스 처치 지음, 박인용 옮김,
황금가지, 2008


#평양의 이방인 #추리소설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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