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런 미스터리 소설들이 대단했다

내가 꼽은 올해의 미스터리 작품들

등록 2008.12.26 08:53수정 2008.12.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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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스터리 소설 <밀레니엄> <브로큰 쇼어> <평양의 이방인> ⓒ 김준희

▲ 올해의 미스터리 소설 <밀레니엄> <브로큰 쇼어> <평양의 이방인> ⓒ 김준희

 

변방의 약진과 거장의 귀환. 2008년 국내에서 출간된 영미권의 미스터리 소설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이 계통의 소설 중에서 최고작으로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우선 미스터리 소설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이 배경이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스티그 라르손이 노후보장 차원에서 집필한 3부작의 첫번째 편이다. 출간하자마자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는 어떤 범죄가 있을까. <밀레니엄>은 상대적으로 낯선 장소인 스웨덴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잔인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돈키호테같은 열정을 가진 남자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은둔형 외톨이 같은 여자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힘을 합쳐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사회제도의 장단점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스웨덴과 호주를 무대로 한 색다른 추리 소설

 

또 다른 변방은 바로 호주다. 호주 작가 피터 템플은 <브로큰 쇼어>에서 호주의 우울하고 어두운 해변마을을 등장시킨다. 겨울이 되면 온갖 사회 부적응자들이 모여드는 작은 마을, 워낙 조용해서 범죄가 없을 듯 하지만 그 우울한 모습이 인간의 어두운 충동을 더욱 증폭시킨다.

 

한가한 일상을 보내는 마을의 경찰 조 캐신은 떠돌이 노숙자를 만나면서 사건에 휘말린다. 작은 마을에서도 음모와 암투, 배신이 난무한다. 사이코에 가까운 사람들의 내면과 감춰진 욕망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작품이다.

 

숨겨진 변방이라면 북한을 따라갈 곳이 또 있을까. 제임스 처치가 쓴 <평양의 이방인>은 거의 유일하게 북한이 무대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저자는 수십년동안 동양에서 정보원으로 근무했고, 북한에 대해서 정통한 인물이다. 그는 작품에서 북한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한의 주민들은 가난하고 정부에서 나눠주는 배급표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국경에서는 러시아 돈과 중국 지폐가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이런 북한에서 국가공무원도 굶주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날 아침에 마실 차도 제대로 끓이지 못할 정도다.

 

어느날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살해당한 외국인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것을 은폐하려는 일당들이 수사를 방해한다. 엽기적인 사건이 등장하거나 구성이 탄탄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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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스터리 소설 <듀마 키> <살인예언자> <고스트 라이터> ⓒ 김준희

▲ 올해의 미스터리 소설 <듀마 키> <살인예언자> <고스트 라이터> ⓒ 김준희

 

거장들의 작품도 올 한해 속속 선보였다. 스티븐 킹은 <듀마 키>로 돌아왔다. 사고로 불구가 된 주인공은 요양을 위해서 플로리다 해안의 섬 듀마 키를 찾는다. 멕시코 만이 발밑에 펼쳐지고, 멀리 돈 페드로 섬과 케이시 키가 꿈처럼 떠다니는 환상적인 곳이다.

 

그 섬에 있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주인공에게 이상한 능력을 불어넣지만, 그 능력은 결국 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이를 깨달은 주인공은 섬에 떠돌아다니는 악의 정체를 찾아서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이 작품은 어쩌면 스티븐 킹 자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스티븐 킹도 10여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걷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 개월 동안 병원에서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다. 회복을 위해서 그림에 매달리는 작품 속의 주인공은, 사고 후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집필을 놓지 않았던 스티븐 킹 자신의 모습이다.

 

스티븐 킹과 함께 돌아온 딘 쿤츠

 

또 다른 거장은 바로 딘 쿤츠다. 국내에서 스티븐 킹 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역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최근 작품인 <살인예언자>, <죽음의 여신>, <악의 수도원>이 연달아 올해 국내에서 출간되었다.

 

이 세 작품은 모두 오드 토머스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20세의 청년 오드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죽은 사람의 유령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망자들은 사연을 가지고 오드에게 나타난다. 수십 년전에 죽은 엘비스 프레슬리도 오드 앞에서 쇼를 할 정도다.

 

이 능력은 오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까. 죽은 사람의 도움으로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도 여러차례 해결했지만, 오드는 자신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하지는 못한다. 그랬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받거나 새로운 사이비 교주로 대접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유령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드는 유령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알려주는 경고를 듣는다. 이 시리즈는 오드와 주변 인물들이 늘어놓는 톡톡 튀는 대화와 유머감각이 또 다른 장점이다.

 

히스토리 팩션의 대가인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도 빠질 수 없다. 그가 현대의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서 발표한 작품이 <고스트 라이터>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에서는 다른 사람의 자서전을 대신 써 주는 대필작가가 주인공이다. 자신을 유령이라고 부르는 주인공답게, 작품의 끝까지 이 주인공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대필작가는 어느날 영국 전 수상의 자서전을 대신 집필해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그 보수는 엄청나다. 총 20만 달러를 받고, 기간내에 끝낼 경우에는 보너스로 5만 달러를 더 받는다. 전 수상은 테러에 대한 강경한 자세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자서전을 대필하다보면 작가는 어떤 위험에 빠지게 될까.

 

로버트 해리스는 이런 미스터리 성향의 작품과 함께 역사의 복원에도 중점을 둔다. 역시 올해 국내에서 출간된 <임페리움>에서는 미스터리의 요소를 제거하고 수천 년전 로마의 모습을 그려내는데에 치중하고 있다.

 

올 한해 출간된 많은 팩션들

 

이외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팩션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사실과 허구를 뒤섞는 팩션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여러가지 소재의 성찬이 펼쳐진 듯한 한해였을 것이다. <창조주의 지도>, <장미의 미궁>, <폭풍의 밤>, <빌라도의 아내> 등이 모두 그런 팩션들이다. <다빈치 코드>가 완역판으로 재출간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제프리 디버는 <콜드 문>으로 링컨 라임 시리즈를 이어갔고, 퍼트리샤 콘웰은 <데드맨 플라이>로 역시 스카페타 시리즈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작가의 롱런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영미권뿐만 아니라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들도 해마다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전망이라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즐거운 고민을 해야할 처지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국내추리작가들의 작품이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12.26 08:53 ⓒ 2008 OhmyNews

평양의 이방인

제임스 처치 지음, 박인용 옮김,
황금가지, 2008


브로큰 쇼어

피터 템플 지음, 나선숙 옮김,
영림카디널, 2008


[세트] 밀레니엄 세트 - 전4권

스티그 라르손 외 지음, 임호경 옮김,
문학동네, 2017


#미스터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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