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작은 마을에서는 어떤 범죄가 생길까

[신간] 피터 템플 <브로큰 쇼어>

등록 2008.06.25 09:14수정 2008.06.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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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쇼어> 겉 표지 ⓒ 영림카디널

▲ <브로큰 쇼어> 겉 표지 ⓒ 영림카디널

범죄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대부분 대도시다. 대도시일수록 돈과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돈을 노리는 사람,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면 왠지 이런 범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을까.

 

호주 작가 피터 템플(Peter Temple)의 <브로큰 쇼어>도 이런 곳을 배경으로 한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해변마을 포트 몬로가 바로 그 장소다.

 

호주의 원주민과 백인이 뒤섞여서 살아가는 곳이다. 백인은 원주민을 가리켜서 '검둥이들'이라며 무시하고, 원주민은 이런 백인을 증오하며 자기들끼리 뭉치려고 한다.

 

포트 몬로는 해변 마을이라서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도시에서 온 버릇없고 타락한 아이들, 그들의 금발머리 엄마, 물렁살의 뚱보 아버지들이 이 마을로 와서 여름을 보낸다. 크라이슬러 크루저, 메르세데스 벤츠, BMW가 큰길을 차지한다. 남자들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을 퍼마시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얼음장 같은 비,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 그리고 온갖 사회부적응자들만 남는다. 실업자, 반실업자, 취업 불가능자, 술꾼과 마약중독자, 연로한 연금생활자, 온갖 생활보호 대상자, 절름발이, 불구자 등이 포트 몬로의 거리를 차지한다.

 

해변의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과거에는 이곳에서 강력범죄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갈등도 보이지만, 아직 그것은 문제가 될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포트 몬로는 몇가지 불안요소들이 있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다.

 

변해가는 작은 해변마을 포트 몬로

 

주인공 조 캐신은 이 마을의 경찰서 책임자다. 그는 원래 도시에서 강력계 형사로 근무했다. 그 당시에도 캐신의 일상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식사는 경찰서 책상이나 거리에서 해결한다. 시간이 나면 잠을 자거나 동료와 함께 경마장에 간다.

 

축구 또는 낚시를 하고나서 누군가의 뒷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맥주를 마신다. 한적한 도시 만큼이나 한가로운 경찰의 일상인 셈이었다. 그러다가 캐신은 어떤 사정 때문에 도시에서의 형사 생활을 접고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 포트 몬로로 파견 나오게 되었다.

 

다시 돌아왔지만 포트 몬로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예전 같지 않다. 사람들은 경찰을 불신하고, 대놓고 경찰을 경멸하기도 한다. 해변에 대규모 리조트 개발이 예정되어 있고, 마을 주민들은 부자들만을 위한 개발에 반대한다. 자본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부작용은 이 지역의 10대 청소년들에게도 미치기 시작한다. 10대 학생들이 산탄총을 들고다니는가 하면, 남자아이들은 마약을 팔고 여자아이들은 몸을 판다.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10대들 때문에 통행금지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무장강도와 자동차 도난사건이 발생하고, 그러면 항상 애꿎은 원주민만 표적이 된다.

 

사건이 터지면 경찰들은 주도권 싸움을 하고 정치인들은 사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 지역에서는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갈등,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오려는 자본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변화의 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포트 몬로 마을도 그리고 조 캐신도.

 

복잡한 살인사건을 어떻게 추적할까

 

그러던 어느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돈 많은 70대 노인 찰스 버고인이 자신의 집에서 습격당한 것이다. 경보기는 꺼져 있었고, 무단침입 흔적도 없다. 지문도 없고 무기도 없고, 수상쩍은 DNA도 없다. 손목시계 하나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을 뿐, 그 외에 또 뭐가 없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찰스 버고인은 돈이 많은 인물이지만 이 지역에서 나름대로 명망도 있는 노인이다. 그동안 버고인 신용금고가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렸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주었고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기부금을 주었다. 학교, 구세군, 재향군인회, 미술관 등에 돈을 주고 축구클럽에는 수도 없이 퍼주었다고 한다.

 

이런 인물이니만큼 누군가가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사람이 침입한 것 같지도 않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면서 원주민 정착지를 바그다드처럼 폭파시켜 버려야 한다고 언성을 높인다. 원주민들은 이런 비난에 맞서면서 무능한 경찰을 향해 언성을 높인다. 조 캐신은 사건을 수사하면서부터 이 두 집단 사이의 갈등 때문에 난항을 거듭하게 된다.

 

<브로큰 쇼어>는 호주 추리작가 협회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상을 휩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호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작은 마을에 모여사는 사람들의 내면과 갈등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우울하게 펼쳐지는 해변의 풍경도,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부서지는 해안'도 인상적이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호주의 마을과 사람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크건 작건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호주의 작은 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한걸음 들어가면 그 안에는 인간들의 추한 탐욕과 어두운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개발과 변화의 바람 때문인지 포트 몬로에서도 이런 경향이 점점 더해져간다.

 

그래서 캐신과 동료들은 과거를 그리워 한다. 대규모로 개발하기 전의 순수했던 자연을, 세상이 지금처럼 타락하기 전의 사람들을, 미치광이 살인마가 거리를 휩쓸고 다니기 전의 경찰생활을, 그리고 자신들을 이끌어줄 강한 리더가 있던 그 시절을. 캐신은 혼자서 작은 마을로 내려왔기 때문에 더욱 쓸쓸함을 느끼며 이런 회상에 빠져들 때가 많다.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캐신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변해가는 환경을 보면서 누구나 그런 감정에 빠져든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누구는 '부서지는 해안'에 몸을 던지고, 누구는 포르노 동영상을 탐닉한다. 또 누구는 자신의 집으로 부랑자를 끌어들이고, 누구는 술을 퍼마시고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작가는 범죄와 사건보다도, 변해가는 세상과 거기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브로큰 쇼어>의 진정한 주인공은 조 캐신이 아니라, 포트 몬로와 그곳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덧붙이는 글 | <브로큰 쇼어> 피터 템플 지음 / 나선숙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2008.06.25 09:1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브로큰 쇼어> 피터 템플 지음 / 나선숙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브로큰 쇼어

피터 템플 지음, 나선숙 옮김,
영림카디널, 2008


#브로큰 쇼어 #피터 템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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