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42) 여론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635] '내 것 삼기'와 '사유화'

등록 2009.05.11 10:43수정 2009.05.11 10:43
0
원고료로 응원

ㄱ. 사유화하다

 

.. 7대 종단이 손잡고 마련한 '지리산 위령제'의 일환이었던 도보 순례가 갖고 있던 역사적 대의를 부정하지 않되, 나는 그 걷기를 나름대로 사유화했다 .. <이문재 산문집>(호미, 2006) 53쪽

 

'일환(一環)'은 '하나'로 고쳐 줍니다. 보기글 뒤쪽에는 '걷기'라고 적으나, 앞에는 '도보(徒步)' 순례라 적습니다. '순례(巡禮)'라는 말을 함께 묶어 "걷기 순례"이든 "걷는 나들이"이든 "걷기마실"이든, 또는 "걷기"이든 적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대의(大義)'는 '큰뜻'으로 다듬고, '부정(否定)하지'는 '거스르지'로 다듬습니다. '역사적(-的)'은 '역사 깊은'이나 '역사에 남을'로 손질해 줍니다.

 

 ┌ 사유화(私有化) : 개인의 소유가 됨. 또는 개인의 소유로 만듦

 │   - 국영 기업의 사유화 / 토지의 사유화 / 국유지를 사유화하다

 │

 ├ 걷기를 나름대로 사유화했다

 │→ 걷기를 내 것으로 삼았다

 │→ 걷기를 내 나름대로 받아들였다

 │→ 걷기를 내 나름대로 즐겼다

 │→ 걷기를 내 나름대로 돌아보았다

 └ …

 

'사유화'하는 일과 맞서는 '국유화'입니다. 또는 '공유화'가 될까요. '공과 사'를 이야기하니, 아무래도 '국유화'보다는 '공유화'가 어울릴 듯합니다. 그렇지만 '공유화'라는 말은 거의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또, 우리가 굳이 이렇게까지 말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알아듣기 좋도록 '내 것으로 삼다-나라 것으로 삼다-모두 것으로 삼다'처럼 적으면 넉넉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느 어른도 '사유화-국유화-공유화'를 꺼내지 않으리라 봅니다 '혼자 가지려 하다-나라에서 가지려 하다-다 함께 가지려 하다'처럼 말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 국영 기업의 사유화

 │→ 국영 기업을 개인 소유로 바꿈

 │→ 나라가 꾸리던 기업을 개인이 꾸리게 함

 ├ 토지의 사유화 → 땅을 저 혼자 쓰게끔 함 / 내 땅으로 삼음

 └ 국유지를 사유화하다 → 나라땅을 개인땅으로 바꾸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도 '사유화'를 말할 어른이 있을 듯합니다. 아이들 앞이라고 하여 당신 말마디에 더 마음을 쓰지 않을 테니까요. 나이든 어른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든 어른이 알아들을 낱말과 말투를 골라서 한결 수월하고 살갑고 올바르게 말할 만큼 말매무새를 가다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나아가, 아이와 어른 앞에서뿐 아니라 누구 앞에서라도 좀더 손쉽고 맑고 빛나는 말마디와 글줄로 가다듬으며 제 이야기를 펼치려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돈이며 이름이며 힘이며 내 손아귀에 움켜쥐면서 사람들 위에 올라서고픈 마음 그대로, 말이며 글이며 갖은 지식을 뒤집어씌우는 가운데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고픈 마음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며 배운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는 핑계로, 좀더 깊고 너른 학문으로 거듭나도록 힘쓰지 않은 제 모습을 감추고 있지 않은가 궁금합니다.

 

나 혼자 아는 지식에 머물고, 나 하나 헤아리는 지식으로 고이며, 나 홀로 콧대 높은 말과 글로 우리 삶터를 옥죄고 있지 않나 궁금합니다.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서, "'지리산 위령제' 가운데 하나로 함께한 걷기에 담긴 깊고 큰 뜻을 거스르지 않되, 나는 그 걷기를 내 나름대로 돌아보기로 했다"쯤으로 다시 써 봅니다.

 

ㄴ. 여론화되다

 

.. 진실로 사법부는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는 칭송과 격려가 여론화되기도 했다 ..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한승헌, 범우사, 1991) 104쪽

 

'진실(眞實)로'는 '참말로'나 '참으로'로 다듬습니다. "칭송(稱頌)과 격려(激勵)가"는 "따뜻한 말마디와 북돋움이"나 "힘찬 손뼉과 따뜻한 말마디가"로 손질해 봅니다.

 

 ┌ 여론화(輿論化) :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 됨

 │   - 소수의 의견이었다고 해도 여론화해서 정당성이 획득되면 /

 │     어떤 의견을 여론화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

 │

 ├ 여론화되기도 했다

 │→ 여론이 되기도 했다

 │→ 신문ㆍ방송에 실리기도 했다

 │→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 널리 퍼지기도 했다

 └ …

 

'여론화'란 말 그대로 '여론이 되게 함'을 뜻합니다. 한자말 '여론'을 국어사전에 찾아봅니다.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풀이합니다. '대중(大衆)'은 "수많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이 한목소리인" 모습이 '여론'이며, "수많은 사람이 한목소리가 되도록 하는" 일이 '여론화'인 셈입니다.

 

 ┌ 모든 사람들 생각이 되기도 했다

 ├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 모두들 이처럼 생각해 주기도 했다

 ├ 모두들 이와 같이 바라기도 했다

 └ …

 

수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낸다 할 때에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참말로 사법부는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는 손뼉과 말마디를 사람들마다 한목소리로 나오기도 했다"나 "참으로 사법부는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며, 온 나라 사람들이 손뼉치고 북돋워 주기도 했다"쯤으로 고쳐써도 퍽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법부가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고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나 "사법부가 이렇게 달라지기를 사람들 모두 바라기도 했다"쯤으로 고쳐 주어도 괜찮습니다.

 

 ┌ 소수의 의견이었다고 해도 여론화해서

 │→ 작은 목소리였다고 해도 널리 알려서

 │→ 작은 목소리였다고 해도 사람들한테 알려서

 ├ 어떤 의견을 여론화하기 위해서는

 │→ 어떤 생각을 널리 알리자면

 │→ 어떤 뜻을 사람들한테 알리려 한다면

 └ …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이 보기글들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품도록" 하는 일을 가리킨다기보다,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도록" 하는 일을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말뜻 그대로 이 자리에서는 "널리 알리도록"이나 "두루 알리도록"이나 "더 많이 알리도록"처럼 적어야 한결 알맞습니다.

 

꾸밈없이 쓰고, 글흐름을 살피면서 쓰며, 앞과 뒤를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쓰면 됩니다. 말껍데기가 아닌 말알맹이를 찾고, 말치레가 아닌 말가꿈을 해 주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5.11 10:4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화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