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체불에 정신과 치료... "사장님 너무 해"

근로계약 연장을 무기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등록 2009.05.12 12:08수정 2009.05.1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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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제 버릇 개 못 준다'란 말이 있다. 이는 한번 젖어 버린 나쁜 버릇은 고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나쁜 버릇을 가진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은 어쩌면 평생 한이 될지도 모르는 일을 겪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인 나흐누는 작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8월이면 출국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 동안 밀린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지만, 그렇다고 사장에게 대놓고 월급 달라는 소리를 못하고 있다.

나흐누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경기도 이천에서 건설 현장 패널을 용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입사 이후 급여를 분기에 한 번씩 받아 왔다. 회사에서는 건설업체 특성상 현장이 끝나지 않으면 수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렇게 지급해 왔는데, 이번에는 약정된 기일이 두 달이나 지나고 있다. 예전에도 종종 약정된 기일이 지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사장이 "다음, 다음에"하면서 자꾸 급여를 미루고 있어 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2년 이상 급여를 분기별로 받아왔던 나흐누가 이렇게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귀국한 친구의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퇴사했던 동향 친구 로비가 출국 당시에 급여를 다 받지 못했는데, 사장은 그 때도 '다음, 다음에. 걱정 마, 인도네시아로 보내줄게" 하며 급여를 미뤘었다고 한다.

나흐누는 "우리는 용접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일도 많고 월급이 많아요. 거의 매주 일요일도 일하지만 특근 같은 거 계산 안 해 주고 용접한 정도에 따라 월급을 받는데, 보통 200만 원 벌어요. 돈 벌러 온 사람들이니까, 월급만 나오면 다른 데 안 가요. 그런데 지금은 집에 가야 할 때가 되니까, 조금 불안해요."

나흐누가 불안해 하는 이유는 설령 2분기에 밀린 급여, 1200만 원을 한꺼번에 받는다고 해도, 8월에 귀국할 때는 급여일이 아니기 때문에 로비와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 나흐누의 동료 수하르또요는 입사한 지 두 달이 조금 더 지났는데, 불안감은 나흐누보다 더하다고 한다. 그는 부산에서 1년 넘게 일하던 회사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해서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알선을 받고 근무처 변경을 했다. 아직까지 이전 업체에서 밀린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따지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일로 따졌다가 나중에 재입국을 위한 근로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임금체불로 정신병원 신세를 졌던 수곤도에 비하면 약과다. 수곤도는 한국에 온 지 석 달이 다 돼 갈 즈음에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는 수곤도는 근로계약서에 약정된 급여일이 세 번이 지날 때까지 한 번도 급여를 받지 못하자, 야근을 하던 작년 11월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작업 현장에서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이 일로 수곤도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상담을 하러 갔는데, 사장과 통화한 대사관에서는 수곤도를 치료 목적으로 신경정신병원에 데리고 갔다.


이 과정에서 수곤도는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링거 주사를 꼽을 때마다 뺐고, 이틀을 금식했다고 한다. 결국 신경정신병원에서는 대사관에 연락하여 퇴원 조치를 해야 했다. 이에 대해 병원 원무과에서는 "환자가 조울증 증세가 있어서 치료를 하려고 했는데, 워낙 완강하게 치료를 거부해서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대사관에 연락해서 퇴원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간 사정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하자 업체 사장은, "경기가 좋지 않아 급여를 지급하지 못한 건 맞지만, 숙식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줄 몰랐다. 본인이 원하면 근무처를 변경해 주고, 급여도 정산해 주겠다. 수곤도를 회사로 보내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수곤도에게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했던 사장은 여섯 달이 지나는 지금까지 수곤도에게 밀린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간 고용지원센터의 도움으로 근무처를 변경한 수곤도는 부천지방노동청에 진정하여 조사를 받고, 체불임금확인원도 받았다. 하지만 사장은 "준다, 준다" 말만 하면서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직 후에 큰 문제 없이 성실히 일하고 있는 수곤도는 '매번 노동부 조사를 위해 (옮긴 회사에서) 양해를 구하는 것이 미안했었는데, 이전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니 어떡하면 좋겠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않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제 버릇 개 주겠냐?'는 속담이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 수곤도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임금체불을 해소하기 위한 소송을 준비중이다.


덧붙이는 글 수곤도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임금체불을 해소하기 위한 소송을 준비중이다.
#임금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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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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