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아닐까

[리뷰] 로버트 하인라인 <므두셀라의 아이들>

등록 2009.05.29 09:58수정 2009.05.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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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므두셀라의 아이들> 겉표지

<므두셀라의 아이들> 겉표지 ⓒ 오멜라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므두셀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에녹의 아들이자 노아의 조부되는 인물로, 969살까지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래 살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를 받은 모세, 신의 계시를 받고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과 비교하자면 므두셀라의 업적은 형편없을 정도다. 강산이 백 번 가까이 변하는 세월을 그냥 보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긴 그렇게 오랫동안 살다보면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해질지도 모르겠다. 오래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지만, 천 살 가까이 살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로버트 하인라인의 1967년 작품 <므두셀라의 아이들>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은 구약성서의 무대가 아니라 먼 미래인 2136년이다.

지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 극히 일부인 약 10만 명 가량의 사람들만이 장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몇백 살의 나이를 먹고도 건강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워드 일족'이라고 부른다. 일족의 구성원들 중에는 200살을 가볍게 넘기고도 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거듭된 노력의 결과이다. 오래사는 것에 집착했던 아이라 하워드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19세기말에 재단을 설립한다. 그리고 장수의 혈통을 가진 집안끼리의 인위적인 교배를 시도한다. 이런 노력이 거듭되고 축적된 결과, 장수의 특징을 지닌 하워드 일족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실제 나이와 이름을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40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00살인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10만 명에 가깝다면 일반인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할 것이다.

하워드 일족을 심문해서 장수의 비밀을 알아내려 할테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의 형태로 그들을 질투하고 증오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징을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배척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일족의 사람들은 수시로 신분증을 위조하고 거주지를 옮긴다. 그러면서도 일족들끼리의 연락망은 완벽하게 구축해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리고 그 만일의 사태가 2136년에 발생한다. 정부에서 이들의 정체를 파악해서 전부 검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일족의 재산도 모두 압수당한다. 오랫동안 조용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일족에게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족은 모두 체포되서 집단수용되지만, 아직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다. 일족의 대표는 자신들에게 지구 한 귀퉁이를 떼어주면 그곳에서 모여 살겠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거절당한다. 정부측의 명령은 단호하다. 일족은 모두 지구 밖의 다른 행성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구금된 채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행성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금성에도 사람이 산다. 하지만 여전히 지구 밖의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그래서 일족은 탈출을 결심한다. 거대한 우주선 한 대를 탈취해서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죄인 취급 당하면서 태양계 안에 머무느니 우주의 떠돌이가 되는 쪽을 택한다. 미래에 벌어지는 거대한 출애굽이다.

하인라인이 만들어낸 미래의 역사

로버트 하인라인은 1907년에 태어나서 1988년에 죽었으니, 백 살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장수한 편에 속할 것이다. 오랫동안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기억들을 간직해야한다는 의미다. 수백 살의 나이를 가진 사람은, 자신과 주변에서 그 기간동안 일어났던 일들의 상당수를 기억할 것이다.

인간의 기억력에도 정해진 용량이 있다면, 그 용량을 넘어서게 될 때 어떤 증상이 생길까. <므두셀라의 아이들>에는 이백열세 살이지만 건강한 육체를 지닌 인물도 나온다. 그는 몸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력을 걱정한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억력이 이번 세기 들어서 안 좋아졌다고 투덜댄다.

이백 년이 넘는 시간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필요할 때 적절한 기억을 꺼내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기억법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한히 쌓이는 기억들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끝내는 미치거나 정신박약이 될테니까.

작품 속에서 하워드 일족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토론한다. 위장하면서 일반인들을 속이는 것을 지긋지긋해하는 사람도 있고, 힘을 쌓아서 일반인들과 정면대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무한한 시간을 시험하기 위해서 무한한 우주로 나아간다. 시간과 공간은 애초에 하나였기에.

<므두셀라의 아이들>은 하인라인이 집필했던 '미래사' 연작 중의 한 편이다. 항성간 도약과 냉동수면, 새로운 별을 찾아나가는 일족들의 모습이 흥미롭지만, 그것과는 다른 질문 하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이백 살이 넘도록 오래 산다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

덧붙이는 글 | <므두셀라의 아이들>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 김창규 옮김. 오멜라스 펴냄.


덧붙이는 글 <므두셀라의 아이들>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 김창규 옮김. 오멜라스 펴냄.

므두셀라의 아이들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김창규 옮김, 이소담 그림,
오멜라스(웅진), 2009


#로버트 하인라인 #므두셀라의 아이들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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