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44) 중앙집중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655] '널리 퍼지는' 일과 '일반화되는' 일

등록 2009.05.31 15:37수정 2009.05.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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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중앙집중화되다

 

.. 본질적으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산업체계는 갈수록 중앙집중화되고 있다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민아 옮김-허울뿐인 세계화>(따님,2000) 97쪽

 

 '본질적(本質的)으로'는 '처음부터'나 '어쩔 수 없이'나 '처음 꾸릴 때부터'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막대(莫大)한 양(量)의"는 '어마어마한'으로 손질하고, '필요(必要)로 하는'은 '있어야 하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 중앙집중화 : x

 ├ 집중화(集中化) : 한곳으로 모이게 함

 │   - 인구의 도시 집중화 / 권력의 집중화

 │

 ├ 중앙집중화되고 있다

 │→ 중앙으로 모이고 있다

 │→ 가운데로 모이고 있다

 └ …

 

 국어사전에 '중앙집중화되다'라는 낱말까지는 실리지 않습니다. 굳이 이런 낱말을 실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꼈을는지 모르고, 따로 낱말책에 실어 놓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으레 알아듣겠거니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기글을 우리 말로 옮긴 분이 좀더 알맞거나 걸맞는 말씀씀이를 헤아리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는 가운데, 옮긴 분 스스로 당신 가슴 깊이 살뜰하고 넉넉하게 이야기뜻을 삭여내지 못한 탓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인구의 도시 집중화 → 사람들이 도시로 몰림 /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듦

 └ 권력의 집중화 → 권력이 한데 모임 / 권력이 한곳으로 쏠림

 

 보기글을 곰곰이 되읽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쓰도록 짜인 산업 틀거리는, 갈수록 중앙으로 쏠리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고, 한국땅으로 놓고 말하자면, "처음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만 하도록 짜인 산업 틀거리는, 갈수록 서울로 몰리고 있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에서 '한복판(중앙)'이라 한다면 바로 '서울'이니까요.

 

 다만, 이 글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서울로 쏠린다"라거나 "서울로 몰린다"처럼 적을 수 있을 터이나, 다른 나라로 치자면 "큰도시로 쏠린다"거나 "몇몇 큰도시로 몰린다"는 이야기쯤 되지 싶습니다.

 

 우리 둘레 삶터를 가만히 돌아보아도 이런 느낌은 얼마든지 받거든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자동차이든 문화이든 회사이든 관공서이건 온통 서울(또는 서울처럼 큰도시)로 몰려듭니다. 출판사도 거의 다 서울에만 있고, 신문사와 방송사도 오로지 서울에 본사를 둡니다(이런 시설로 치자면 나라안 큰도시에는 제대로 된 시설이 하나도 없고 서울에만 잔뜩 몰려 있는 셈입니다). 지역 언론사가 있기는 있으나 서울에 있는 언론사처럼 힘을 내지 못합니다. 서울에 있는 언론사에서 모든 힘과 소식과 흐름을 움켜쥐고 있는 가운데, 온나라가 서울이 이끄는 대로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서울바람'이라고 할 텐데, '중앙집중화'란, 이와 같이 몸집이 대단히 커서 다른 모두를 제 마음대로 이끌거나 다스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이는 셈이며, 이렇게 쓰는 '중앙집중화'라면 그때그때 흐름을 차근차근 살피면서 다독여 내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ㄴ. 일반화되다

 

.. 요즘에는 전기로 메주를 말리는 풍속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  <안혜령-농부의 밥상>(소나무,2007) 169쪽

 

 '풍속(風俗)'이라는 낱말도 흔히 씁니다만, 보기글에서는 '버릇'이나 '흐름'을 넣어 봅니다. '일'이나 '모습'을 넣어도 괜찮습니다. '점차(漸次)'는 '차츰'이나 '조금씩'으로 다듬어 줍니다.

 

 ┌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

 │→ 차츰 퍼지고 있다

 │→ 조금씩 자리잡고 있다

 │→ 많이 쓰이고 있다

 │→ 어느새 삶이 되었다

 └ …

 

 전기를 쓰면 좀더 쉽게 금세 말리니 좋은가 봅니다. 뭐, 메주 말리기뿐이겠습니까마는, 우리 삶터 어느 자리에 전기 안 써서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밥을 해도 밥솥에 전기를 꽂고, 설거지를 해도 개수도와 이어진 그릇씻개에 전기를 꽂습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뿐 아니라 예쁘장하게 꾸미려는 등불을 밝히려고 전기를 꽂습니다. 서울 한강다리마다 불을 잔뜩 밝히고 길거리마다 광고판에 불이 환하게 들어옵니다.

 

 빨래를 할 때에는 마땅히 돼지코를 꽂아 빨래틀을 돌려야 하는 줄 압니다. 방바닥을 닦을 때에도 으레 돼지코를 꽂아 청소기계란 녀석을 밀어야 하는 줄 생각합니다. 더우니 부채 아닌 선풍기를 틀었으나, 이제는 에어콘이 집집마다 한 자리씩 차지합니다. 식구들마다 손전화를 따로 쓰니 전화기에 밥 준다며 돼지코에 불이 붙습니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리는 흐름이 널리 자리잡고 있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리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 …

 

 언제까지 쓸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며 전기를 씁니다. 우리 스스로 전기를 만들지 못하면서 전기값만 내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아니, 이렇게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전기를 얻으려고 어떻게 하는지, 전기를 얻는 동안 우리 삶터가 얼마나 무너져야 하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태평양 섬나라가 물에 잠기고 남북극 얼음이 녹는 일은 먼나라 일로만 여깁니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리곤 한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리고들 있다

 ├ 전기로 메주를 말린다고들 한다

 ├ 으레 전기로 메주를 말린다

 └ …

 

 우리 스스로 우리 삶자락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삶자락을 우리 스스로 못 느끼는데, 우리 마음결과 우리 생각밭을 우리 깜냥껏 키우거나 북돋울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몸을 움직여 우리 스스로 우리 땀을 흘리지 않는데, 우리 이웃이 어떻게 지내고 우리 둘레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나와 내 둘레를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내 생각과 마음을 담는 말과 글이 어떻게 짜이고 쓰이고 나뒹구는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나날이 매캐해지는 이 나라 바람처럼, 나날이 찌들고 마는 우리 말입니다. 하루하루 메말라 가는 이 나라 사람들 마음처럼, 하루하루 팍팍해지고 무너져 가는 우리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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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5:37ⓒ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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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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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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