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조직의 배후를 어떻게 추적할까

[리뷰] 존 르 카레 <원티드 맨>

등록 2009.09.18 13:41수정 2009.09.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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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티드 맨> 겉표지

<원티드 맨> 겉표지 ⓒ 랜덤하우스

냉전이 끝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불안하다. 중동은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이고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지구 여기저기서 터지는 테러도 마찬가지다. 9.11 사건 이후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테러는 전쟁을 통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테러와 싸운다는 것은,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좀비와 싸우는 것과 같다. 냉전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싸움이 바로 테러와의 싸움이다.

상대가 바뀌었기에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 냉전 시대에는 수많은 스파이를 동원해서 첩보전을 벌이고, 많은 돈을 들여서 상대편 스파이 또는 거물급의 군인을 매수하기도 했다.

대테러 전쟁에서는 그런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다. 성전을 벌이고 있는 근본주의 무슬림들에게 돈이 통할리도 없거니와,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매수해야할지 정확히 구별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는 상대국가의 암호를 해독하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암호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테러 전쟁을 위해서는 냉전시대에 사용하던 낡은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함부르크에서 감지되는 테러의 기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로 유명한 영국작가 존 르 카레의 2008년 작품 <원티드 맨>에서도 테러와 싸운다. 작품 속에서 테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문가들이 모여서 테러조직의 동선을 꼼꼼하게 추적한다. 거대한 덫을 마련해서 배후의 인물을 잡아들이기 위해.

<원티드 맨>의 무대는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 독일은 왠지 테러의 변방일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독일은 미국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있고,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에 맞서서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때도 독일은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해 군인들을 레바논으로 보냈다. 깡패를 보호하겠다고 나선 꼴이니, 레바논의 무슬림들이 독일의 철도에 폭탄을 설치하려고 덤벼들만도 할 것이다.

<원티드 맨>에서는 레바논 대신에 체첸인이 등장한다. 어느날 함부르크 시내에 키는 크지만 깡마른 체첸 젊은이가 나타난다. 함부르크 시내에 체첸인이 걸어다니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항구도시인만큼 외국인은 도시 풍경의 일부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든 곳이 바로 함부르크다.

하지만 이 체첸 젊은이는 좀 묘한 구석이 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에 턱수염은 제멋대로 헝클어졌지만 두 눈동자만은 타는 듯이 이글거린다. 그는 한 터키 무슬림의 집으로 찾아와서 무작정 자기를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터키인들은 생전 처음보는 체첸인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그동안 외국에서 수차례 투옥과 고문으로 심신이 정상이 아닌 이 젊은이에게 동정이 생겨서 결국 그를 받아들인다.

체첸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소지품도 이상하기만 하다. 구소련 붉은 군대의 장교 사진이 실려있는 신문기사 조각들, 미화 50달러짜리 뭉치, 열쇠 하나, 여섯 자리 숫자가 제일 아래에 적혀있는 편지 한 장이 전부다. 이 체첸 젊은이는 독실한 무슬림이지만, 혹시 독일에 테러를 몰고 올 과격한 근본주의자는 아닐까?

테러조직의 배후를 찾아가는 전문가들

<원티드 맨>의 작가 존 르 카레는 오래전에 실제로 영국 첩보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1963년에 발표했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면, <원티드 맨>은 냉전이 끝난 이후 새롭게 재편된 국제정세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거기에 대응하는 수단도 조금씩 변한다. 테러 조직에 첩보원을 심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스파이 활동이 바탕이다. 스파이는 목표물을 체포하지 않는다. 다만 목표물을 조종해서 더 큰 목표물로 방향을 다시 잡을 뿐이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진짜 거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상이 테러조직이라면 어떻게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테러활동에도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은 테러자금이 어떻게 마련되고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그 실태를 파악하려 한다.

자금이 어떻게 마련되는지 알 수 있다면, 그 자금을 만드는 인물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테러조직을 뿌리부터 뽑아낼 수도 있다. 더 이상 운용자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도 굴러가지 못하고 멈춰 설 테니까. 테러와의 싸움이 좀비와의 싸움이라면, 그 좀비가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원티드 맨> 존 르 카레 지음 /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원티드 맨> 존 르 카레 지음 /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원티드 맨 #존 르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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