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밭 갈대 숲 찍고 해안도로 풍광에 기절

[제주올레 1코스 트래킹 3] 소금밭-종달 시흥해안도로 걷기

등록 2009.09.24 14:17수정 2009.09.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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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에 누워 초등학교 5학년 올래꾼 ⓒ 김강임


종달리 소금밭 흔적을 찾아서

척박했던 서귀포시 종달리 땅에 신은 소금밭을 주신 모양이다. 옛날, 바닷가 모래밭에 소금밭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 왔던 종달리 소금밭, 그러나 지금 그곳은 갈대숲으로 변해버렸다. 당시 이 소금밭에서 난 소금을 짊어진 아낙들은 등에 소금을 지고 밤새 한라산을 넘나들며 소금을 팔았다 한다. 하지만 당시 소금 장수 아낙들이 발품을 팔았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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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밭 올레 지금은 갈대숲으로 변한 소금밭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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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 소금밭 갈대숲 소금밭은 가을 연출 ⓒ 김강임


소금밭 주변에 '안내 표지판이나 당시 사진을 설치해 놓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들이 팔았던 발품과 올레꾼의 발품을 비교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종달리 삼거리에 서있는 팽나무 고목을 지나 소금밭으로 이어지는 길은 넓은 시멘트 길이었다. 휑-하니 뚫린 소금밭 올레는 자동차가 쌩쌩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길 끝에 아스라이 성산일출봉이 매달려 있었다. 갈대숲 사이를 걷는 기분은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소금밭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했다. 소금밭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모습은 다정다감해 보였다. 담장너머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빨간 담장넝쿨과 호박꽃만이 빈 집을 지킨다. 가을 하오에 시골마을 사람들이 집을 지키고 있을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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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소금밭 주변 정자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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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꾼 해안도로 걷는 올레꾼 ⓒ 김강임


바당올레 제주의 보물

소금밭에서 종달리 해안도로로 꺾는 모퉁이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바다와 오름, 소금밭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는 길손들의 휴식처였다. 길을 걷다가 심심하면 풍월이라도 읊어 볼수 있는 휴식처가 있으니 제주도 도보기행은 그리 각박하지만은 않다.

제주올레 1코스의 매력은 오름과 어우러진 바당올레다. 그 바당올레의 포인트가 바로 종달리와 시흥리를 이어주는 해안도로가 아닐까. 언제보아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제주바다, 더욱이 일출봉과 우도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섬을 안고 걸어보기도 하고 오름을 등지고 걸어보기도 하고, 파도소리를 들이며 심호흡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바당올레다. 때문에 이 해안도로야말로 제주의 멋이 그대로 드러난 보물일 수밖에.


9월 20일 하오, 낯선 동무와 나는 왼쪽으로는 연둣빛 바다, 오른쪽으로는 종달리 마을, 그리고 꼬불꼬불 이어진 해안도로를 안고 느릿느릿 걸을 작정이었다. 자동차로 달리면 10분이면 달릴 수 있는 길이지만 발품을 팔면 넉넉히 1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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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해안도로 물허벅 지고 있는 해녀상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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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해안도로 종달리 해안도로 오징어 말리는 풍경 ⓒ 김강임


캔 맥주 들이 키고 구운 오징어 씹으면 간장이 서늘


" 먼저 갑니다"
말미오름에서 만난 올레꾼들이 우리 일행을 추월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올레꾼들이라 낯이 익다. 서로가 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통하는 길손들, 올레풍경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훈훈하다. 

제주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발견하는 곳이 바로 한치와 준치를 말리는 풍경이다. 이 풍경이야말로 제주의 미를 살릴 수 있는 소품이기도 하고, 길을 걸으며 구운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면 그 고소함은 뼈 속까지 스며든다. 물론 여기에 '캬-!' 하고 캔 맥주 들이키면 간장까지 서늘해진다.

혼자 걸어도 심심하지 않은 종달리 해안도로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길은 종달리와 시흥리 사람들이 밭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또 관광객들의 드라이브코스가 되어주기도 한다. 더욱이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각관을 받고 있는 길도 바로 동쪽의 해안도로다. 어디 그 뿐인가. 그 길은 쉬엄쉬엄 걷는 올레꾼들이 풍경에 빠져 기절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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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하이킹 자전거 하이킹 하는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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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바다 종달리 바다 ⓒ 김강임


작은 휴게소 올레꾼들의 아지트

목화휴게소와 금영휴게소는 작지만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목마름을 해소하는 곳이었다. 물론 그림같이 예쁜 펜션이 올레꾼들을 유혹했지만, 아무래도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쉼터는 신발 벗지 않고 털썩 주저 않아 잠시 쉬었다 갈수 있는 곳이 안성맞춤이다. 그 이유는 땀 이 배인 옷과 신발, 그리고 심신이 편안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바로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올레꾼들의 사람들의 욕구가 바로 인간의 희.노.애.락을 맛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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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종달리 포구 ⓒ 김강임


걸을수록 신나는 길... 걸을 수 있음에 감사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고맙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인 제주올레. 어떤 이는 치유의 목적으로, 어떤 이는 자아발견을, 어떤 이는 인내를 꿈꾸며, 제주올레에는 저마다 모토가 있다.

종달리 포구에 다다랐다. 잔잔한 포구에 떠있는 테우와 서너 척의 배를 카메라에 담았다.  길 위에서 만났던 지우(초등학교 5년)가 포구 언저리 잔디 위에 누워 있다. 다리가 아픈 모양이다. 시흥초등학교에서 성간갑문까지 12km를 걸었으니 힘들었겠지.

지우는 자신이 걸었던 올레를 이렇게 말했다. "지겹지만 걸을수록 신나는 길이다."라고.

소금밭 유래. ⓒ 김강임


종달리 소금밭 유래
옛날 종달리는 유명한 소금 생산지로 알려졌다. 본시 염전이 없어 원시적 방법으로 갯바위에서 소량의 소금을 생산하고 다량 육지부의 수입에 의존했었다.

<한국수산지>에 의하면 '선조때 목사 강여는 종달리를 최적지로 보아 마을 유지들을 출륙시켜 제염술을 익혀 들어와 소금을 생산한 것이 시초이다. 1900년대 초에 353호 가운데 160여명이 제염에 종사해 14,357평의 소금밭 46곳의 가마에서 연간 89,052근은 생산하였다'라고 써 있다.

이후 교통이 발달하여 육지염이 다량 수입으로 활기를 잃었다. 광복 후 동부수리 조합을 창설, 1957년부터 소금밭에 688m 방조제를 쌓아 간척지를 조성하였다. 1968년 11월 북제주군은 769만원을 투입하여 논 24ha 농토를 만들어 90년대까지 농사를 지었다. 쌀이 남아 돌아 자연 폐작 현재 개인소유로 남아있는 상태다.

-종달리 소금밭 주변 표지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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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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