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배신자'가 늘어놓는 변심에 대한 변명

사랑하기에 너무 눈부신 아이들

등록 2010.03.07 15:32수정 2010.03.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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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급식실로 가는 길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좀 야릇하다 싶었는데, 한 아이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습니다.

 

"행복하세요?"

"나? 난 늘 행복하잖아."

"우리하고 안 만나고 선생님 반 애들 안 만나니까 행복하냐고요?"

"난 또 뭐라고?"

"말 해보세요. 지금 행복하시냐고요?"

"난 늘 행복하다고 했잖아."

"말 돌리지 마시고요."

"왜 또 그래?"

"배신자!"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 입씨름입니다. 그래도 귀찮기는커녕 귀엽고 고맙기만 합니다. 정년이 한 자릿수로 남게 되면서부터 아이들이 혹시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풀풀 쉰내가 난다고 나를 멀리 하지는 않을까? 은근히 마음 졸이며 걱정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치 배신한 정인을 다그치듯 새로 만난 아이들과 행복하냐고, 말 돌리지 말라고, 고문 아닌 고문을 해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는 아이들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제가 아이들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변심을 한 것이지요. 지금 제 마음은 오로지 새로 만난 아이들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제 자신도 놀랄만한 일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아이들과 정이 들어도 보통 정이 든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이들이 이런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개학을 하고 사흘 동안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과 틈틈이 면담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면담을 다 끝내고 난 뒤 저는 마치 꿈을 꾼 듯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제 앞에서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낸 것입니다. 면담을 하는 동안 마치 눈에 안약이라도 넣은 듯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숨기고 싶었을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제게 털어놓은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지요. 제가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란 사실 말입니다.

 

물론 담임교사라고 해서 한 아이의 가정사를 코치코치 캐물어볼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납부금과 급식비를 면제해주거나 장학금을 받도록 주선해주기 위해서는 그런 통과의례를 거쳐야 만합니다.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서도 그런 과정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매년마다 연중행사처럼 반복되는 이런 일들이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이었을까요?

 

다행히도 아이들은 저를 믿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들은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아이들은 어떻게 저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그들에게 전해준 '생명 값'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와 60의 차이는 얼마일까요? 30배지요. 그러면 20조 2와 20조 60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거의 차이가 없지요. 그 이유는 20과 60 앞에 붙어 있는 20조라는 숫자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 20조라는 큰 숫자를 저는 '생명 값'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개성과 외모가 다르고 제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여러분의 '생명 값'에 비하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신체적인 조건이 조금 못하다고, 남들보다 조금 못한 환경에서 자란다고 절대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생명 자체로 눈부십니다. 아, 눈부시다!(이 대목에서 아이들이 환히 웃었지요.) 조금 가난하고 부족하고 힘이 들어도 당당하고 쿨하고 멋지게 삽시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 중에는 유독 아버지가 안 계시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 사연도 다양합니다. 그 중 한 아이는 아버지 이름을 쓰는 란에 '안계심'이라고 적어서 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 부친의 이름이 '안계심'인 줄 알고는, "어, 성이 다르네!"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동료교사들로부터 '사오정'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와 한참을 웃다가 문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그 아이와 면담을 하면서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아이에게 이런 수작을 걸었습니다.

 

"나 네 아빠하고 성이 같다."

"아닌데요. 아빠는 성이 김씬데 선생님은 안씨잖아요?"

"너 아빠 성함 쓰는 란에 안계심이라고 썼던데 뭐. 안 계심이니까 성이 안씨잖아."

"에이 선생님도."

"나 한 해 동안 네 아빠할 거야. 아빠니까 너 많이 사랑할 거고. 그런데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네가 네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해. 약속할 수 있지?"

"예. 선생님!"

 

우리는 약속의 의미로 새끼를 걸고, 아이가 시키는 대로 손바닥 마찰까지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모둠별로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가려고 합니다. 학교 도서관에 수만 권의 책이 있지만 아이들은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닌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은 어딘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에게 독서훈련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책임은 우리 교사들에게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책과 친해지려면 교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학기 초가 되면 대다수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독서훈련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두발이나 복장 단속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무엇을 하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기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도록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이 학교의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아이들은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한 해 동안 아이들과 무언가를 하고 싶습니다. 웃으면서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제가 맡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만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송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눈부신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2010.03.07 15:32ⓒ 2010 OhmyNews
#순천효산고등학교 #안준철의 시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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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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