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0)

― '어떤 요지의 글', '그런 경우는 없다라는 요지의 이야기' 다듬기

등록 2010.03.08 18:51수정 2010.03.08 18:51
0
원고료로 응원

ㄱ. 어떤 요지의 글

 

..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힘있게 대중에게 전파시키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의무이다'라는 요지의 글도 봤는데, 정말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김근태-희망의 근거>(당대,1995) 285쪽

 

'자신(自身)이'는 '스스로'나 '내가'로 다듬고, "전파(傳播)시키는 것은"은 "퍼뜨리는 일은"이나 "알리는 일은"이나 "나누는 일은"으로 다듬으며, '정말(正-)'은 '참말'이나 '참으로'로 다듬습니다. '대중(大衆)'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사람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중요(重要)한 지적(指摘)이라고"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되고, "옳은 말이라고"나 "따끔한 말이라고"로 손질해 보면 잘 어울립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의무이다"는 "운동하는 사람들한테 의무이다"나 "운동하는 사람들한테 주어진 몫이다"로 고쳐 줍니다.

 

 ┌ 요지(要旨) : 말이나 글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   - 시간이 없으니 요지만 말해라 / 당신 논문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     이야기의 요지 / 다음 글의 요지를 파악해 한 문장으로 표현하시오

 │

 ├ …라는 요지의 글

 │→ …라고 말하는 글

 │→ …라고 밝히는 글

 │→ …라고 이야기하는 글

 │→ …라는 이야기를 담은 글

 └ …

 

보기글을 보면, 작은따옴표를 치고 옮겨 적은 대목은 '글쓴이가 읽은 글에서 알맹이를 추린 한 줄'입니다. 작은따옴표를 치며 옮겨 적은 글 뒤에 따로 '요지의'를 붙이지 않아도, 이 글은 저절로 '요지가 어떠하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 사람들한테 의무이다'라고 말하는 글도 봤는데"로 다듬어 놓으면 됩니다. 한자말 '요지'를 넣고 싶다면 "…라는 요지가 담긴 글"처럼 적어 줍니다. '요지'란 다름아닌 '줄거리'나 '알맹이'나 '속이야기'를 가리키는 낱말이니, 이 말뜻 그대로 '줄거리'나 '알맹이'나 '속이야기'를 넣어도 됩니다.

 

 ┌ 시간이 없으니 요지만 말해라

 │→ 시간이 없으니 줄거리만 말해라 / 시간이 없으니 콕 집어서 말해라

 ├ 당신 논문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 당신 논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 당신 논문에서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 이야기의 요지 → 이야기 고갱이 / 이야기 알맹이 / 이야기 속살

 └ 다음 글의 요지 → 다음 글 줄거리

 

한자 '要'가 들어간 낱말 가운데 "要 주의"처럼 외따로 적는 낱말은 일본말이기에 걸러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곳"을 가리킨다는 '요지(要地)' 또한 말 그대로 "중요한 곳"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를 가리킨다는 '긴요(緊要)' 또한 "매우 중요한"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따져 보면, '要'가 붙는 말마디는 예부터 우리 삶에 알맞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순화대상 낱말에 드는 '-要'붙이 가운데 몇 가지는 고쳐써야 한다면서도 '중요'와 '필요'와 '요긴' 같은 낱말은 고쳐써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일본 한자말이라 해서 모두 털어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일본 한자말이라 하더라도 굳이 털어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 쓸모가 있다면 받아들일 노릇이고,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다 하여도 우리 삶과 넋을 어지럽힌다면 털어낼 노릇입니다.

 

그러면, '요지' 같은 낱말은 어떻게 보아야 좋을까요. 우리한테 '요지' 같은 낱말은 얼마나 쓸모하고 찾을모가 있는가요. 얼마나 우리 생각과 마음을 살찌워 줄까요.

 

 ┌ 그런 요지의 말이 아닌데 (x)

 ├ 그런 뜻올 한 말이 아닌데 (o)

 └ 그런 말이 아닌데 (o)

 

우리들은 '이쑤시개'라는 말이 있어도 일본말 '요지(楊枝)'를 버젓이 쓰곤 합니다.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요지'나 '스메끼리'나 '다마네기'라는 일본말이 아닌 '이쑤시개'나 '손톱깎이'나 '양파'라는 우리 말을 알맞게 쓰고 있으나, '바께쓰'나 '만땅'이나 '이빠이' 같은 일본말은 아직 잘 살아남아 있고, '간지'나 '가오' 같은 일본말마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돌아보고 저런 모습을 살펴볼라치면, '요지' 같은 일본 한자말이야 우스운 노릇입니다. 이런 말마디를 쓰는 사람보다 '간지'나 '가오'를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테니까요. 더욱이, '요지 + 의' 말투는 이래저래 털어내기도 하고 고쳐쓰기도 하는 사람이 보이지만, '간지'나 '가오' 같은 일본말을 털어내거나 고쳐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이러면서 '엣지' 같은 미국말이 생뚱맞게 나란히 쓰이기까지 합니다.

 

ㄴ. 그런 경우는 없다라는 요지의 이야기

 

.. 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주어진 경우는 없다라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  <박원순과 52명-내 인생의 첫 수업>(두리미디어,2009) 47쪽

 

"저절로 주어진 경우(境遇)는"은 "저절로 주어진 일은"이나 "저절로 주어진 적은"으로 다듬습니다.

 

 ┌ 그런 경우는 없다라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

 │→ 그런 일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 그런 적은 없다는 줄거리를 담은 이야기였다

 └ …

 

한자말 '요지'가 아닌 토박이말 '줄거리'를 적어 넣었어도 "…라는 줄거리의 이야기였다"처럼 적는 분이 어김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낱말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는 눈길은 있으나, 낱말과 낱말을 엮어서 알맞게 추스르는 손길까지는 없는 분이 퍽 많거든요.

 

하나를 보면 이 하나를 바탕으로 다른 하나를 더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나를 보면 하나로 그치는 일이 잦습니다. 옳고 바르게 가다듬을 말마디 하나를 깨달았다면, 이 하나를 바탕으로 다른 하나를 차근차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어루만지면서 새로워지면 좋습니다만, 이렇게 새로워지는 사람들보다는 어쩌다 한 번 들은 말마디 하나를 붙잡고 그치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배고픔은 밥 한 끼니로 때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 숨이 이어지는 마지막날까지 꼬박꼬박 새로 밥상을 받아야 풀 수 있음을 모른다고 할까요. 날마다 새 밥을 먹고 새 물을 마시고 새 숨을 들이마시듯, 날마다 새로운 말을 익히고 새로운 글을 쓰며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삶을 새롭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함을 잊는다고 할까요.

 

그러나, '요지'가 아닌 '줄거리'를 붙잡을 수 있으면 반갑습니다. '요지'를 붙잡지 못했어도 토씨 '-의'를 붙잡을 수 있어도 반갑습니다. 처음부터 두 가지를 함께 붙잡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는 '요지'를 붙잡으며 새로워지고, 이튿날에는 '-의'를 붙잡으며 거듭 새로워질 수 있으면 더없이 고맙습니다. 우리 말마디를 사랑하는 길을 하나씩 갈무리하면서 우리 넋과 얼을 나날이 새롭게 북돋우고, 우리 삶을 언제나 새롭게 돌볼 수 있으면 그지없이 기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08 18:51ⓒ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