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100) 큰나무

[우리 말에 마음쓰기 886] '댐짓기'와 '댐건설'

등록 2010.03.25 13:56수정 2010.03.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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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큰나무 1

 

.. 매번 내리치는 도끼소리를 쉽게 셀 수 있을 것이며, 마침내 거목이 쓰러지며 내는 엄청난 소리에 온 이웃이 놀랄 것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이한중 옮김-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 41쪽

 

우리 나라 도시에는 숲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이 나라 사람들은 숲을 시골에서만 느끼는데, 더군다나 자동차를 타고 가서 느낍니다. 숲을 가까이에서 늘 함께하면서 느끼지 못하니 숲을 찾아가도 제대로 껴안거나 보듬지 않습니다. 한낱 구경거리로 여기고 돈 값어치로만 잽니다.

 

우리 말이 어지러운 까닭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자연을 잃으며 자연스러운 말의 느낌을 잃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말하듯 글을 쓰고, 쓴 글은 말하는듯 읽힐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이음고리를 놓치고 있어요. 머리로만 생각하고 머리로만 뇌까리며 머리로만 굴리니, 말이며 글이며 딱딱하고 거칠 뿐 아니라 삶이 없고 빛이 없으며 어렵고 따분합니다. 자연을 아끼듯 사람을 아끼고, 숲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말 한 마디에 담지 못합니다.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와 내 목숨을 나란히 놓으며 보듬으며 부둥켜안는 매무새를 글 한 줄에 싣지 못합니다.

 

 ┌ 거목(巨木)

 │  (1) 굵고 큰 나무

 │  (2) 큰 인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중목 : x

 └ 소목 : x

 

숲에 가면 나무를 봅니다. 숲이란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입니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숲에는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있고, 제법 자란 나무가 있으며, 아직 어린 나무가 있습니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우뚝 솟은 키가 큰 나무를 올려다본다면, "야, 큰 나무다." 하는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나무 참 크다." 같은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작달막한 나무를 보면 "와, 작은 나무다."라든지 "나무가 참 작네." 같은 말이 절로 나올 테지요.

 

그래요. 우리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하고 글을 적으면 됩니다. 우뚝 솟아 키가 큰 나무는 '큰나무'라 하면 알맞습니다. 키가 작은 나무는 마땅히 '작은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국어사전에는 '큰나무'하고 '작은나무'라는 낱말이 안 실려 있습니다. '거목' 하나만 덩그러니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거목'이란 낱말은 실으면서 '소목'이란 낱말은 안 실어요. 앞뒤가 맞지 않고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 큰나무

 └ 작은나무

 

낱말을 담는 낱말책에 우리가 쓰는 말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을 담아내고 생각을 펼치고 나눌 수 있도록 차근차근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슬기를 빛내면서 낱말책을 살찌우고 우리 말밭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고, 삶을 살리며 우리네 자연 터전을 함께 살린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ㄴ. 큰나무 2

 

.. 당시에는 골짜기 곳곳에 오래된 거목들이 즐비했는데, 이 나무들은 차례차례 목재로 실려나갔다 … 그리고 다른 키 큰 나무들은 전봇대로 세우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다 ..  <박경화-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양철북,2010) 252쪽

 

'당시(當時)에는'은 '그때에는'이나 '그무렵에는'으로 다듬고, '즐비(櫛比)했는데'는 '가득했는데'나 '많았는데'나 '빽빽했는데'로 다듬습니다. "세우기 위(爲)해"는 "세운다며"나 "세우려고"로 손봅니다.

 

 ┌ 오래된 거목들 (x)

 └ 키 큰 나무들 (o)

 

글쓴이는 '거목'과 '키 큰 나무'라는 낱말을 잇달아 적습니다. '거목'은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이지만 '키큰나무'는 국어사전에 안 실린 낱말입니다. 어쩌는 수 없이 '키 큰 나무'처럼 띄어서 적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헤아려 본다면, 키가 큰 사람이라 '키다리'라 하듯, 키가 큰 나무는 '키다리나무'나 '키큰나무'나 '큰나무'라는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또는 '어른나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와 맞물려 키가 작은 나무는 '키작은나무'나 '작은나무'나 '어린나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우리 터전을 돌아보고 우리 삶자락을 헤아리면서 우리 마음결을 쓰다듬는 말마디를 일굴 수 있습니다. 우리 목숨을 아끼고 뭇 목숨붙이를 사랑하며 우리 마음자리 돌보는 글줄을 가꿀 수 있습니다. 꾸밈없이 바라보고 꾸밈없이 생각하며 꾸밈없이 껴안으면 됩니다.

 

 

ㄷ. 댐짓기

 

.. 작업 감독은 몹쓸 짐승들 때문에 댐 건설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골짜기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주민들도 댐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릴 처지였기 때문에 댐 짓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  <톰 맥커런/우순교 옮김-돼지풀꽃이 필 때면> 163쪽

 

'중단(中斷)할'은 '멈출'이나 '그만둘'이나 '접을'로 손봅니다. '결심(決心)했다'라 하지 않고 '단단히 마음먹었다'라 한 대목은 반갑습니다. "골짜기 주민(住民)들의 생각은 달랐다"는 "골짜기 주민들은 생각이 달랐다"나 "골짜기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로 손질하고, "삶의 터전"은 "삶터"나 "살아갈 터전"으로 손질합니다. "잃어 버릴 처지(處地)였기 때문에"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잃어 버릴 판이었기 때문에"나 "잃어 버릴까 걱정이었기 때문에"나 "잃어 버릴 마당이었기 때문에"나 "잃어 버릴 터이기 때문에"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 건설(建設)

 │  (1) 건물, 설비, 시설 따위를 새로 만들어 세움

 │   - 건설 현장 / 댐 건설로 우리 마을이 물에 잠기었다

 │  (2) 조직체 따위를 새로 이룩함

 │   - 새 사회의 건설을 위한 노력을 할 때이다

 │

 ├ 댐 건설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x)

 └ 댐 짓는 사람들을 (o)

 

'댐(dam)'은 토박이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말로 굳어진 낱말입니다. 예부터 '둑'이라는 말을 써 왔고, 곰곰이 따지고 보면 '둑'이라는 낱말을 살려서 '댐'을 걸러낼 수 있었겠지만, 댐을 짓거나 댐 정책을 펴낸 사람들은 우리 말글로 '댐'이라는 낱말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말이란 말을 하는 사람들 나름대로 알맞게 짓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 걸맞게 손질하거나 다듬거나 매만지면서 북돋웁니다.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말이란 없고, 누군가 선물처럼 멋들어지게 지어서 베풀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손으로 빚고 우리 손으로 보듬으며 우리 손으로 가꾸는 말입니다.

 

 ┌ 댐 건설 → 댐 짓기 / 댐 쌓기

 └ 교량 건설 → 다리 짓기 / 다리 놓기

 

보기글을 살피면 첫머리에는 "댐 건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음 줄 끝에는 "댐 짓는"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대목은 같은 모습 같은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댐 둘레에서 일하는 사람은 '건설'이라는 말을 쓰는 셈이고, 댐 둘레에서 삶터를 빼앗길 사람은 '짓다'라는 말을 쓰는 셈입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뭍과 뭍을 잇는 길을 놓는다고 할 때에 '다리'라는 토박이말을 알맞게 살려서 쓰는 공무원이나 건설업자나 지식인은 몹시 드뭅니다. 하나같이 '교량(橋梁)'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다 지은 다리를 놓고 '무슨무슨 대교(大橋)'라는 이름을 붙이기 일쑤입니다. '한강다리'나 '동호다리'나 '한남다리'처럼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다리를 지을 때에도 '다리 짓기'나 '다리 놓기'라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살아가는 모양새대로 나누던 말틀을 잃었다고 할 만한데, 우리 삶 매무새를 살펴본다면 오늘날 우리 말글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 그대로이구나 싶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오늘날 삶 매무새는 제 넋을 잃고 제 얼을 버리며 제 길을 내팽개친 채 어지러이 떠도는 뒤죽박죽이기 때문입니다. 뒤죽박죽인 오늘날 우리들 삶이요, 엉망진창인 오늘날 우리들 매무새이며, 돈에 눈먼 오늘날 우리들 모양새입니다. 이리하여 이런 삶과 매무새와 모양새 그대로 생각을 하기 일쑤이고,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오늘날 우리 말과 글에 차곡차곡 담깁니다.

 

아름다이 살아가고자 하지 않으면, 그만큼 아름다이 나눌 말을 꽃 피우지 못합니다. 싱그럽게 지내고자 하지 않으면, 그만큼 싱그러이 나눌 글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따숩고 넉넉하게 어깨동무하고자 하지 않으면, 그만큼 따숩고 넉넉한 이야기를 껴안지 못합니다. 이기주의 세상에서는 이기주의 말이 떠돌고, 제멋대로 말이 넘치다가, 결국 망가진 말이 뿌리내리며 대물림됩니다. 슬픈 아픔이지만 슬픈 아픔인 줄 모르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25 13:56ⓒ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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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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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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