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95) 센터

[우리 말에 마음쓰기 887] '재활용 수집 센터', '지도 센터' 다듬기

등록 2010.03.26 16:37수정 2010.03.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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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재활용 수집 센터

 

.. 재활용 수집 센터를 방문해 병을 모으세요 ..  <엠릴 잉그램/김승태 옮김-페트병 속의 생물학>(지성사,2004) 15쪽

 

'수집(收集)'은 '모으는'이나 '거두는'이나 '받는'으로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수집하는 센터"를 단출하게 일컫자면 '모음터'나 '거둠터'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방문(訪問)해'는 '찾아가'나 '찾아가서'로 손봅니다. '재활용(再活用)'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다시쓰기'나 '되쓰기'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 센터(center)

 │  (1) 축구 배구 농구 따위에서, 중앙의 위치 또는 그 위치에 선 선수를

 │      이르는 말

 │  (2) (물건이나 음식 혹은 지명 따위의 이름 뒤에 붙어) 그것을 파는

 │      곳을 나타내는 말

 │   - 치킨 센터 / 영양 센터 / 학교 앞에 분식 센터를 차렸다

 │

 ├ 재활용 수집 센터

 │→ 재활용 수집 기관

 │→ 다시쓰기 모음터

 │→ 되쓰기 거둠터

 └ …

 

운동경기에서 일컫는 '센터'라는 이름을 어찌저찌 손볼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축구경기에서는 때때로 '중앙 (무엇무엇)'이라 하고, 야구경기에서는 '중견수'라 합니다. 그렇지만 농구나 배구에서는 달리 손보는 낱말이 없습니다. '라이트'와 '레프트'를 '오른쪽'과 '왼쪽', 또는 '오른날개'와 '왼날개'라고 일컫지만, 정작 '한복판'이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센터'만은 거의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복판'이나 '한가운데'라 할 수는 없었을까요? 아니면, '몸통'이나 '기둥'이라 해 볼 생각은 없었을까요?

 

정부기관 가운데 '고용안정센터'가 있습니다. '고용지원센터'가 있고 '고용보험센터'가 있으며, '고용안정센터' 또한 있습니다. 이런 정부기관과 함께 '동주민센터'가 있습니다. '동사무소'를 갑작스레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정부기관 이름을 바꾸면 길알림판이며 지도며 모조리 바꾸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애먼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네 정부기관 이름을 굳이 영어를 넣어 바꾸어야 했을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정부는 '파출소'를 '치안센터'로 이름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치안센터'라는 이름이 제법 쓰이지만, '파출소'라는 이름이 좀더 자주 쓰입니다. 아니, 두 가지 이름이 섞갈려 쓰인다고 하겠습니다.

 

동사무소나 파출소 이름을 보아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기관 이름에 '-센터'를 붙이면서 딱히 나아지는 구석이 없는 한편, 괜스레 나라돈만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우리 넋과 삶과 말을 가꾸려는 매무새는 옅어지거나 스러질밖에 없습니다.

 

 ┌ 치킨 센터 → 통닭집 / 튀김닭집 / 닭집

 ├ 분식 센터 → 분식집 / 떡볶이집 / 라면집

 └ 영양 센터 → 영양집(?)

 

국어사전에서 '센터'라는 낱말을 찾아보니 버젓이 '치킨 센터'이니 '분식 센터'이니 '영양 센터'이니 하는 보기글이 실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통닭'이나 '튀김닭'이나 '닭'이라 안 하고 '치킨'이라 말한다 할지라도 '치킨 센터'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으레 '치킨집'이라 하고, '닭집'이라 합니다.

 

분식을 파는 가게를 '분식집' 아닌 '분식 센터'라 가리키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분식집'을 일컬어 '떡볶이집'이나 '라면집'이라 하기도 합니다. 떡볶이집에서도 다른 분식을 팔고, 라면집도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요사이는 라면만 파는 가게가 있으니, 앞으로는 '라면집 = 분식집' 틀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 외국인노동자 쉼터

 └ 외국인노동자 센터

 

한국땅에 들어온 나라밖 일꾼을 돕고자 하는 모임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쉼터'이고 다른 하나는 '센터'입니다. 가만히 보면 말장난 같습니다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알맞고 올바르게 이름붙일 줄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얄궂고 뒤틀리게 이름붙이면서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 쉼터 / 배움터 / 모임터 / 만남터 / 도움터 / 어울림터

 ├ 쉼마당 / 배움마당 / 모임마당 / 만남마당 / 도움마당 / 어울림마당

 ├ 쉼자리 / 배움자리 / 모임자리 / 만남자리 / 도움자리 / 어울림자리

 └ …

 

'쉼터'는 말 그대로 쉬도록 마련한 곳이 한다면, '도움터'는 말 그대로 돕도록 애쓰는 곳입니다. '배움터'는 배움길을 열어 놓는 자리라 할 터이고, '모임터'는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연 자리입니다. '만남터'란 스스럼없이 만나도록 하는 곳이요, '어울림터'는 너나 없이 어울리며 즐기는 자리입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 좋은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짚으면 살가운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두루 돌아보면 고운 말을 일굴 수 있습니다. 새롭게 나아지는 우리 삶터라 한다면, '복지센터' 아닌 '복지마당'이 되어야 할 터이고, '카센터' 아닌 '자동차 손질집'이 되어야 하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ㄴ. 지도 센터

 

.. 지나는 길에 지도 센터에 들러 우리가 앞으로 갈 곳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 지도를 샀다 ..  <원공 외-우리는 왜 그 길을 걸었을까>(호미,2003) 129쪽

 

한국과 일본에서 세계축구대회를 함께 열었을 때, 한국땅부터 일본땅까지 걸어서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땅을 밟은 뒤 낯선 곳을 가느라 길을 헤매기도 해서 길그림을 그려 놓은 책을 좀 볼까 하고 '지도 센터'란 곳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지도 센터'라는 곳은 없습니다. '관광 안내소'쯤은 있겠지요. 그래, 일본사람이 살고 있는 일본땅 문화로는 '지도 센터'이구나 싶습니다. 우리 문화로 보자면 말 그대로 '지도방'이거나 '지도집'이거나 '지도가게'나 '지도 안내소'쯤이 될 테고요.

 

 ┌ 지도 센터 (x)

 └ 지도집 / 길알림터 (o)

 

'지도(地圖)'를 좀더 다듬으며 '길그림'이나 '땅그림'이라고 쓰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도를 다루는 곳 이름이라 한다면 '지도집'으로 적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일본사람이 영어를 더없이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낀 나머지 지도 파는 가게를 '지도 센터'라고 이름붙였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씩씩하고 꿋꿋하고 아름답고 싱그럽게 '지도집' 한 마디로 갈무리하면 반갑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3.26 16:37ⓒ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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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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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외국어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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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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