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01)

― '히니의 결론', '서울의 지도' 다듬기

등록 2010.05.03 21:51수정 2010.05.0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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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히니의 결론은

 

.. 이것이 그 파란 많은 보고서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를 잊지 않고 있었던 히니의 결론은 그게 아니었다 ..  <티에리 수카르/김성희 옮김-우유의 역습>(알마,2009) 77쪽

 

"파란(波瀾) 많은"은 "말 많은"으로 손질하고, '유일(唯一)한'은 '하나 있는'이나 '하나뿐인'으로 손질해 줍니다. "자신(自身)의 고용주(雇用主)"는 "자신을 고용한 사람"이나 "나한테 일자리를 준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결론(結論)'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앞말과 묶어 "히니가 내린 생각"이나 "히니가 내놓은 생각"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뒷말과 묶으며 "그렇게 마무리짓지 않았다"나 "그와 같이 끝맺지 않았다"로 손봅니다.

 

 ┌ 히니의 결론은 그게 아니었다

 │

 │→ 히니가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 히니는 그렇게 결론을 내지 않았다

 │→ 히니가 내놓은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 히니는 그와 같은 생각을 내지 않았다

 │→ 히니는 그렇게 마무리를 짓지 않았다

 │→ 히니는 그와 같이 끝맺지 않았다'

 └ …

 

오늘날 토씨 '-의'를 넣은 말씨는 아주 자연스럽다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습니다. 때때로 "'-의'를 자주 쓰는 일은 일본 말법이잖아?" 하고 말하지만, 말로 그칠 뿐 입과 손에서는 토씨 '-의'를 떼어놓지 않습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말 한 마디 주고받을 때에도 생각과 몸가짐이 다르지만, 나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삶자락을 가다듬는 자리에서도 생각과 몸가짐이 다릅니다. 틀림없이 머리로는 "이 길로 가야 옳고 바른 삶이지요." 하고 생각하며 말로 읊기까지 하지만, 정작 몸으로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아니, 몸으로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이건 일이건 놀이이건 사람 사귐이건 언제나 지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아름답게 돌아보거나 내 삶자락을 알차게 추스르거나 내 삶매무새를 싱그럽게 보든는 쪽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머리를 쓰고 생각을 굴리고 말로 읊조리지만, 몸을 움직이고 어깨동무를 하며 온몸으로 뛰어들지는 않습니다.

 

 ┌ 히니는 마무리를 그렇게 짓지 않았다

 ├ 히니는 마무리를 다르게 적었다

 ├ 히니는 끝에 가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 히니는 끝에 가서 말이 달라졌다

 └ …

 

지식이 없다면 말을 못 할는지 모르고 글을 못 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이 하는 말이기에 더 투박하면서 야무집니다. 지식을 다루지 않는 글이기에 더 수수하면서 곱습니다. 우리한테 지식이 있다고 밥을 더 맛나게 짓겠습니까. 우리한테 지식이 있다고 정치를 더 즐겁게 꾸리겠습니까. 우리한테 지식이 있다고 사랑을 더 따숩게 나누겠습니까.

 

밥하기이고 정치이고 사랑나눔이고 모두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얼마나 쓰며 몸으로는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을 안 쓰고 몸을 안 움직인다면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마음을 안 바치고 몸을 안 놀리면 하릴없는 노릇입니다. 마음이 가며 몸이 가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입으로 놀리는 진보나 보수나 혁명이나 개혁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서 먼저 아름답게 이루는 진보이든 보수이든 혁명이든 개혁이어야 합니다.

 

ㄴ. 서울의 지도

 

.. 나는 서울의 지도를 펼쳐 놓고 서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복잡한 지도 속의 동네 이름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  <김윤수-17+i, 사진의 발견>(바람구두,2007) 165쪽

 

"탐색(探索)하기 시작(始作)한다"는 "찾아본다"나 "둘러본다"나 "살펴본다"로 다듬어 줍니다. '복잡(複雜)한'은 '어수선한'이나 '어지러운'으로 손보고, "지도 속의 동네 이름"은 "지도에 나오는 동네 이름"이나 "지도에 적힌 동네 이름"으로 손봅니다.

 

 ┌ 서울의 지도를

 │

 │→ 서울 지도를

 │→ 서울을 그린 지도를

 │→ 서울길을 그린 그림을

 │→ 서울 길그림을

 └ …

 

군더더기를 붙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곤 합니다. "서울 지도", "인천 지도", "한국 지도", "프랑스 지도"처럼 못 적고 토씨 '-의'를 붙여 "서울의 지도", "인천의 지도", "한국의 지도", "프랑스의 지도"처럼 적는 마음은 어떠한 마음일는지 궁금합니다.

 

"교통 지도", "산업 지도", "자전거 지도"라 말하지 "교통의 지도", "산업의 지도", "자전거의 지도"라 말하는 일이 없는데, 우리는 어이하여 "서울의 지도"처럼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마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는 분도 그렇지만, 이와 같은 글을 다듬는 출판사 일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말을 해야 할까요.

 

 ┌ 지도 : 地 + 圖 = 땅 + 그림

 │

 ├ 땅을 그린 그림 → 땅그림

 ├ 길을 그린 그림 → 길그림

 ├ 집을 그린 그림 → 집그림

 ├ 번지를 그린 그림 → 번지그림

 └ …

 

우리가 '지도'라는 낱말을 쓰기로 했으니 '지도'입니다. 그런데 지도는 왜 지도이고 왜 지도여야 하며 왜 지도에만 머물러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 낱말을 그대로 쓴다고 나쁠 구석이 없고, 이 낱말을 고쳐쓴다고 나쁠 구석 또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이 '그리 먼 옛날부터 새로 만들어 쓰던 말'이 아니었는데에도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말 아니면 다른 말은 쓰면 안 되는 듯' 굳어져 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책을 읽으니 '책읽기'이지만, 책읽기라 말하기보다는 이 낱말을 한자로 덮어씌운 '讀書'라는 낱말만 아주 즐겨쓰고 있거든요. 다달이 내는 삯이기에 '달삯'이지만, 달삯이라 하기보다는 이 낱말을 한자로 옮긴 '月貰'라는 낱말만 그예 쓰고 있거든요.

 

우리는 땅을 종이에 그린 그림이라 하여, 한자말로 '땅 地 + 그림 圖' 짜임새로 '지도'를 쓰고 있는데, 말 그대로 '땅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는 길을 종이에 그렸다 해서 '길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꼭 한자로 뜻을 새겨 놓아야 쓸 만한 낱말이지 않고, 굳이 한자로 뜻을 새기지 않더라도 토박이말로 넉넉히 말뜻과 말뜻을 알뜰살뜰 새기거나 나타낼 수 있습니다.

 

 ┌ 나는 서울 길그림을 펼쳐 놓고 서울을 살펴보기로 한다

 ├ 나는 서울길을 그린 그림을 펼쳐 놓고 서울을 둘러보기로 한다

 ├ 나는 서울 모습을 담은 그림을 펼쳐 놓고 서울을 알아보기로 한다

 └ …

 

한자말로 한다면 '상상력'이고, 우리 말로 한다면 '생각힘'이나 '생각날개'입니다. 우리는 우리 깜냥껏 생각힘을 펼치거나 생각날개를 퍼덕거려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고이는 생각이 아닌 흐르는 생각으로 가다듬고, 멈추는 생각날개가 아닌 힘찬 생각날개가 되도록 추슬러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하는 삶으로 가꾸며 생각하는 매무새로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생각하는 넋과 얼이 되면서 생각하는 말과 글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꾸준히 걷는 걸음새로, 꿋꿋하고 당차게 내디딛는 걸음걸이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03 21:51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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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한글 #국어순화 #토씨 ‘-의’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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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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