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가 무개념녀들을 혼내 주었어"

[연재동화] 안내견 뭉치와 로봇 친구 또또(10) 지하철에서

등록 2012.02.14 12:07수정 2012.02.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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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민재와 뭉치는 아침 산책을 하기 위해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뭉치가 방에 응가를 한 뒤부터 민재는 더욱 아침 산책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뒤쪽 출입구를 빠져나오면 산으로 오르는 가벼운 산책로가 나옵니다. 아파트 뒷산의 있는 약수터로 오르는 산책길입니다. 민재와 뭉치는 익숙하게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중간에 민재의 "하나. 둘!" 신호에 따라 응가와 쉬도 했습니다.

20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자 약수터가 나왔습니다. 산책로를 벗어나 약수터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민재도 매일 다니는 길이라 훤히 알고 있습니다. 계단을 두어 칸 내려가야 하는 곳에서 뭉치가 순간 멈칫했습니다. 민재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계단에서 위험을 알려 줄 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뭉치가 정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멈칫했던 뭉치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학생. 오늘도 약수 뜨러 왔네."

언제나 이 시간이면 만나는 친절한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죠?."

민재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민재의 약수통을 받아 대신 물을 받아 주셨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학생이야. 앞이 안 보여도 하루도 쉬지 않고 이렇게 약수를 뜨러 오고 말이야. 우리 손자 녀석들도 학생같이 부지런하면 좋으련만…."


할아버지는 민재에게 물통을 건네주며 칭찬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부지런한 게 아니고요. 이 녀석 응가 시키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민재는 뭉치를 가리키며 할아버지께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도 껄껄 웃으셨습니다.

"뭉치. 가자 "

약수통을 어깨에 메며 민재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뭉치가 앞장서서 다시 산책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뭉치는 길을 내려가면서도 몇 번씩이나 멈칫 거렸습니다.

"뭉치. 왜 그래? 뭐가 있는 거야?"

민재가 물어도 뭉치는 그냥 길을 따라 내려갈 뿐이었습니다. 뭉치의 이상한 행동은 산책로를 벗어나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민재가 크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빠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계셨고 엄마는 아침밥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삼촌은 이제 막 욕실에서 나오며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었습니다.

"자, 모두 아침 준비 다 되었으니 어서 오세요."

엄마가 주방에서 가족들을 불렀습니다. 민재는 뭉치를 위해 사료를 준 뒤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 오늘 뭉치가 조금 이상했어요."
"뭉치가 어떻게?"
"글쎄. 약수터에서 내려오는 길에 자꾸 멈칫멈칫 그러더라고. 앞에 뭔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예요. 아무튼 다른 날과 조금 달랐어."
"그래?"

민재의 말에 식사 하시던 아빠가 뭉치를 쳐다보았습니다.

"저 녀석. 정말 뭔가 이상한데. 사료만 보면 누구한테 뺐길까 봐 아구아구 먹던 녀석이 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어 보이네."

아빠는 수저를 내려놓고 뭉치에게로 향했습니다.

"민재야. 뭉치가 네 말대로 조금 이상하구나. 눈도 조금 충혈 되어 있고 오늘 동물병원에라도 가봐야 겠다."

아빠는 조금 근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파트 앞 동물병원의 문을 열 시간에 맞춰 민재는 뭉치를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동물병원 선생님은 뭉치를 살펴보시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안구가 조금 건조하네. 안약 좀 넣으면 괜찮아 질것 같구나."
 "왜 그런 거죠?"
 "조금 눈이 피로해서 그럴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도 있어."
 "스트레스요? 우리 뭉치 그런 거 별로 안 받는 스타일인데."
 " 개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더욱이 뭉치는 안내견이니까 다른 개들과 비교해서 스트레스를 좀 더 받을 수도 있어. 그래서 이런 증상이 나올 수 있단다. 특별히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러면서 수의사 선생님은 뭉치에게 넣을 안약을 주었습니다. 선생님께 안약을 넣는 방법을 배운 뒤 민재가 직접 넣어 보았습니다. 뭉치는 민재형이 안약을 넣기 위해 눈을 잡자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민재는 선생님께 배운 대로 안약을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잘하는데. 그렇게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번 넣어 주면 돼."

민재와 뭉치는 동물병원을 나섰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모른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민재는 조금 미안해졌습니다. 민재는 뭉치의 견줄을 풀어주며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프리런을 시켰습니다. 뭉치도 간만에 공원처럼 꾸며진 아파트 공터를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와. 개다."
 "어? 저 개는 착한 개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공터에서 놀고 있던 꼬마 아이들이 뭉치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 아파트에서 뭉치는 친구가 많습니다. 꼬마 아이들도 뭉치의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뭉치를 아주 예뻐합니다. 민재가 뭉치를 만나고부터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아파트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뭉치를 만나기 전에도 아파트에서 길을 잃거나 하면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뭉치와 함께 생활하고부터 더욱 사람들과 친해진 느낌입니다. 모두 뭉치를 사랑하고 뭉치에게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안내견이 기능적으로 봉사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보통 시각장애인과 이웃이 서로 교류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아파트 같은 곳은 더욱 그렇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먼저 이웃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이웃들은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기회가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은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이웃들이 개의 이름도 물어보고 안내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궁금해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꼬마들도 다가와서 안내견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걸어옵니다. 이렇게 안내견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류가 일어나게 됩니다. 안내견을 통해 동물과 사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죠.

 "엄마아…. 무서워."

아파트를 뛰어다니던 커다란 덩치에 뭉치에게 놀란 꼬마가 엄마에게 달려들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유치원을 다닐 정도의 꼬마였습니다.

"괜찮아. 저 개는 안내견이어서 전혀 무섭지 않아."

젊은 엄마가 꼬마를 안심시켰습니다.

 "엄마. 안내견이 뭐야?"
 "안내견은 저 형처럼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개란다. 착한 일을 하는 개야."

사람들 속에서 꼬마 아이와 엄마의 주고받는 말소리도 들렸습니다.

 "이 착한 개한테 과자 줘도 되나요?"

꼬마 아이가 민재에게 물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안 되는데."
 "왜요?"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을 안내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거든. 먹는 것에 신경 쓰면 안내를 제대로 못 하게 돼. 또 안내견은 식당 같은 곳도 들어가야 하는데 아무것이나 먹게 되면 식당 같은 곳에서 음식을 먹고 싶게 될 거 아냐? 그래서 안내견들은 정해진 사료밖에 먹지 못한단다."

민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안내견에 대한 상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모두 안내견센터의 이광훈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꼬마는 뭉치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착한 개야. 미안해. 나만 맛있는 과자 먹어서."

꼬마는 뭉치에게 말하곤 쪼르르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과자를 모두 버렸습니다.

 "먹고 싶지만 착한 개도 못 먹으니까 나도 안 먹어도 괜찮아."

꼬마는 쓰레기통에 버린 과자를 조금 아쉬운 듯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 아주 착하네."

꼬마의 엄마가 아이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런 꼬마를 보면서 뭉치에게 또 다른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민재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이, 김민재!"

누군가 뒤에서 민재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민재와 짝궁인 이동욱의 목소리였습니다.

 "동욱아. 웬일이야?"
 "그냥 집에 있기 심심해서."
 "그래? 잘 됐다. 우리 도서관이나 갈까?"

민재와 동욱이는 과학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민재는 아직 또또의 계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날마다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아무리 자료를 뒤져도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녁이 다되어 민재는 동욱이와 헤어졌습니다. 뭉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올 때였습니다. 뭉치는 언제나처럼 민재형을 노약자 보호석으로 안내했습니다. 훈련 때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보호석에는 어떤 할아버지와 젊은 아가씨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다음 역에서 나이가 드신 할머니가 타시고 보호석으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수다를 떨고 있던 아가씨들이 갑자기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뭉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이 자리에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니면 임신한 아줌마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앉아 있곤 했습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누나들이 앉아 있던 적을 뭉치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지금 아주 연세가 높으신 할머니가 오셨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누나들을 보자 더욱 이상했습니다.

뭉치는 이 얄미운 누나들을 골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뭉치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청바지를 입은 누나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쁜 누나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만 볼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뭉치는 다시 누나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지만 누나는 아무도 모르게 뭉치를 째려보았습니다. 뭉치는 갑자기 누나의 허벅지에 턱 하고 얼굴을 올려놓았습니다. 예쁜 누나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뭉치는 이번에는 그 옆의 예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누나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쑥하고 들이밀었습니다.

 "꺄아아~~악."

아가씨는 지하철이 떠나갈듯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곤 두 아가씨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곤 부리나케 옆 칸으로 달아났습니다. 지하철에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뭉치를 찍는 카메라 소리도 들렸습니다. 민재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렸습니다.

 "학생. 그 개가 안내견이야? 정말 무지 똑똑하네."

누나들 옆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네. 안내견이 맞는데. 무슨 일이라도…."

민재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이 개가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던 버르장머리 없던 젊은 것들을 혼내 줬어."

그 말에 뭉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박수를 쳤습니다. 뭉치는 박수 소리에 앞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폼을 잡았습니다. 특유의 부챗살 모양으로 꼬리를 살살 흔들면서 말입니다. 민재만 무슨 일인지 몰라 머리만 긁적거렸습니다.

[뭉치가 들려주는 안내견 이야기] 

안내견에게 먹을 것 주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안내견들은 참 잘생겼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를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거나 많은 관심을 보이지요. 그런데 가끔 먹을것을 주는 사람이 있어요. 착한일 한다고… 그런데 먹을 것은 주지 마세요. 머리를 만지지도 말고. 우리를 만날 때는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을 떼거든요. 왜냐하면 시각장애인을 안전하게 안내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자꾸 머리 쓰다듬고 이것저것 묻고하면 신경이 분산되고 그러면 안전한 안내를 할 수가 없죠. 먹을것은 절대 안돼요. 사실 우리도 아주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우리는 사료만 먹어야 해요. 다른 것을 먹게되면 우리가 먹을것에 신경쓰고 그러면 식당같은데 못들어가죠.

그래도 맛이 있는 것은 먹고 싶다.
#안내견 뭉치 #로봇 또또 #무개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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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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