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집단 성폭행 피해 여중생, 지금은...

[리뷰] 이재익 <41> 성폭행당한 여중생, 몇년 후에 시작된 복수

등록 2012.05.15 09:24수정 2012.05.1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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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1> 겉표지

<41> 겉표지 ⓒ 네오픽션

2004년 12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이라고 알려진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드러났다. 이 사건은 이름 그대로 울산에 살고 있던 여중생을 밀양의 고등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이 성폭행은 무려 1년 동안 이어졌고 기간이 늘어나면서 가해학생의 숫자도 41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여중생을 성폭행하면서 그 장면을 휴대전화와 캠코더 등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부모나 경찰에게 알리면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리겠다'라는 식으로 여중생을 위협했다.

게다가 여중생의 여동생까지 강제로 불러내서 성폭행을 했다. 여중생에게 그 1년의 기간은 지옥 그 자체였을 테지만 사건이 밝혀졌다고 해서 그 끔찍한 시간이 끝난것도 아니었다. 가해학생 중 고작 10명이 기소되었고 나머지 학생들은 소년부로 송치되거나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서 기소를 면했다.


기소된 10명의 학생들도 모두 소년부로 송치되면서 사건은 종료됐다. 가해학생들은 전과자 신분을 면했고 이후에 아무 문제없이 학교 및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면에 피해 여중생의 생활은 지옥의 연속이었다.

충격적인 성폭행 사건

주위의 시선을 피해서 서울로 이사왔고 전학을 시도했지만 많은 학교에서 '성폭행 피해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간신히 한 학교에 전학했지만 가해자 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아들의 처벌 완화를 위한 탄원서를 써달라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학교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그녀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라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사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한 여학생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놓은 것도 있을 수 없는 범죄이지만, 그런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가해자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문제다.

이재익의 장편소설 <41>은 바로 이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성폭행 자체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사건이 종료되고 나서 몇 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에서 당시의 가해자들은 모두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교에 진학한 사람도 있고 군대에 간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조직폭력배가 되어서 여전히 폭력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주인공인 형사 제훈과 정태에게 며칠 전에 발생한 총기 사망사건이 할당된다. 지방에서 올라온 한 대학생이 자신의 자취방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것이다. 학교에서 동급생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여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친구들은 그 대학생이 총 맞고 죽을 일에 관여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총기 사망사건은 흔한 일이 아니다. 제훈은 얼마 전에 있었던 또다른 총기 사망사건을 떠올린다. 그 사건에서의 희생자도 역시 젊은 남성이었다. 제훈은 두 사건의 공통점을 추적하다가 두 희생자가 모두 몇 년 전에 M시에서 있었던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몇 년 후에 시작된 복수

사건이 의외의 양상을 보이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당시 성폭행사건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한 학생의 삶을 파괴하고도 그 가해자들이 멀쩡하게 살아간다면 피해자 측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질 노릇일 것이다.

아무리 정의감에 사로잡혀서 복수를 하더라도 그것 역시 범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번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억울한 판결이 내려졌고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면 복수를 꿈꾸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한 법조인은 의문을 던진다. 병원에서는 의사가 신이고 법정에서는 판사가 신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일뿐이지 실제로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실수도 있고 잘못된 판결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판사의 판결을 번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41>을 읽다보면 작품 속의 살인범에게 조금씩 공감하게 된다. 성폭행도 잔인하지만, 가해자들은 그에 맞는 처벌을 받지 않고 피해자는 숨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밀양의 그 여학생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41> 이재익 지음. 네오픽션 펴냄.


덧붙이는 글 <41> 이재익 지음. 네오픽션 펴냄.

41 - 이재익 장편소설

이재익 지음,
네오픽션, 2012


#41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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