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이가 떨어지질 않습니다. 안고 운전대에 앉아봤습니다. 꽤 능청스런 운전자 품새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정지 중인 차입니다.
김학현
딸내미가 집에 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요. 설 명절을 앞두고 미리 다녀갈 심산인 듯합니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는 걸 안 반가워 할 친정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솔직히 다 큰 딸이 온다는 것보다 기실 손자 녀석을 본다는 것 때문에 너무 반가웠습니다.
전화를 받고 하루를 지내는 것이 도무지 볼됩니다. 전화를 했으면 그날 홱 내달아 올 것이지 다음날 온다는 건 또 뭐랍니까. 일각이 여삼추라 했나요. 일각(15분)이 삼년같이 느껴진다는 뜻이죠. 하루가 왜 이리 물쩍지근한지요. 아무튼 전화를 받고부터 달뜬 마음에 일이 잘 여물지 않습니다. 그날 밤 잠도 잘 안 옵니다. 손자 녀석 서준이가 벌써 눈에 어른거립니다.
손자 기다리기, 일각이 여삼추이번에는 얼마나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려나. 제 엄마 친정 나들이에 동행하는 서준이가 내겐 주인공입니다. 서준이가 오는 것이지, 딸내미가 오는 게 아닙니다. 물론 딸내미가 이 소리 들으면 좀 섭섭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자식 잘났다는데 싫은 사람 없듯, 귀여운 서준이 기다렸다는데 서운할 리가 없겠죠.
기어이 '기다리~고기다리~던'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그다지도 긴 시간이라도 가긴 가는군요. 아침부터 언제 오느냐고 아내가 성화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 떠날 것이지, 통화를 하는 시간이 10시 30분인데 아직 출발 전이랍니다. "아무튼 요즘 것들은 느려 터졌다니까"라는 말을 남발하며 오매불망 서준이가 오기만 기다립니다. 잠시 후 카톡에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라는 소식이 뜨네요.
아고, 기다리다 지쳐 까무러칠 지경입니다. 그 지경에 왜 느닷없이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대요. 남들 하는 거 들어보긴 했지만 노래도 모르는 그 유행가 가사가 말입니다. 평소 가요를 잘 모르는 인생임에도 귀여운 손자 녀석 볼 생각에 별별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이럴 때 손자 녀석에 관한 시험을 치러도 만점을 획득할 것 같습니다. 허. 모르는 노래 가사도 생각나잖아요.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땡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