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버려야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65] <삶과 죽음에 대하여>

등록 2015.07.14 16:29수정 2020.12.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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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풍요로운 삶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이해하고 있고, 분명하고 예리하며 깨어있고 살아있고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관찰을 잘 하고 수련을 잘 하는 삶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무를 볼 수 있고 나무를 즐길 수 있으며, 별을 바라보고 시기심 없이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삶은 야망과 탐욕과 출세를 숭배하는 삶이 아니다. - 226p

 

때로 우연히 읽은 책이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해답을 줄 때가 있다. 마치 이 시점의 나를 위해 쓰인 것처럼, 혹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내게 그 책을 읽도록 한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연이어 읽은 책이 서로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다. 우연히 집어든 두 권의 책이 서로 깊이 연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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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하여 책 표지 ⓒ 고요아침

▲ 삶과 죽음에 대하여 책 표지 ⓒ 고요아침

이동용의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를 접했을 때가 바로 그랬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 대한 주석서격인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는 독자로 하여금 의지의 지배를 극복하고 세계를 자아의 표상으로 파악하며 인식의 외연을 넓혀갈 것을 제안하는 책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통해 인간이 부정적인 현실 가운데서도 궁극적 목표인 행복에 다가설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염세주의는 인식일 뿐 결과가 아니었으며 행복이야말로 쇼펜하우어 철학의 종착역이었던 것이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삶과 죽음에 대하여>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주장을 펼친다. 책은 죽음이 삶 가운데 있다는 오래된 인식에 의견을 같이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삶이라는 건 태어나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이며 그렇기에 태어난 이의 숙명인 죽음 역시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어떻게 하면 죽음과 더불어 살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방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대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와 더불어 살 방법을 가질 수는 없다. 그대는 어떤 관념을 가지고서,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 달라. 난 그걸 연습해서 죽음과 더불어 살겠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다. 무언가 틀림없이 놀라운 것이 있는데, 그대는 그것과 더불어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대가 무서워 벌벌 떠는 죽음이라 불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것을 보고, 실제로 그것을 느껴야 한다. -232p

 

나아가 저자는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다고 말한다. 본래 하나인 죽음과 삶이 두려움 때문에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려움이 과거의 지식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며 현재적이며 참된 이해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그는 즉각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쾌락과 두려움을 지목한다. 현재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것들, 그러니까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지식, 믿음, 애착, 욕망, 시기심 등이 진정한 이해를 망친다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들에 근거해 현재를 바라봄으로써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를 대면하지 못한다는 게 크리슈나무르티의 판단이다.

 

저자는 매일 지고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꽃과 같이 매순간 모든 과거의 것들을 버림으로써 진정으로 죽음에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테이블을 만지듯 죽음과 대면해 그를 이해하게 되면 더는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단절은 삶의 속성이기에 확실성과 연속성을 부여잡으려 하면 할수록 불안과 슬픔이 싹트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은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매 순간 깨어있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쇼펜하우어의 주장과 상당부분 상통한다. 의지를 버리고 앎의 폭을 확장하라는 주장부터가 그렇다. 둘의 주장이 어찌나 비슷한지 쇼펜하우어가 사용한 의지와 표상, 행복 같은 용어를 쾌락과 지식, 사랑으로 바꾸면 대략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으로 읽힐 정도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현재를 살라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주장은 의지를 배격하고 인식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과 판박이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달라 표절로 보긴 어렵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아픔을 주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모욕은 버리고 싶어 하지만 아첨에는 매달린다. 제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라. 그런 쾌락을 버릴 수 있겠는가, 언젠가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그대는 죽음을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과 지루한 논쟁을 할 수가 없다. 기꺼이 자신의 쾌락을 버려야 한다. - 234p

 

두 책은 동일한 방법론을 갖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진 후에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의 심리적 창조물인 시간을 극복해야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경험과 지식이 시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때문에 인간이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와 미래에 매여 있게 된다고 비판한다. 상징과 관념, 기대와 희망 역시 시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이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현재를 자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죽음의 본 모습을 현재적 관점에서 자각함으로써 삶의 진면목에 다가설 수 있다는 데까지 이어진다.

 

난해한 책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다. 바로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지식에 얽매여 자유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어쩌면 둘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진정한 자기를 자각하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확장하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는 것을 버려야 모르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는 이들의 사상은 온갖 욕망에 휩싸여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대체 얼마만큼 적은가.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해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적은가. 언제고 찾아올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대는 지금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오면 그때 죽을 수도 있다. 오직 그 모든 작용을 이해하는 지적인 사람만이 종교적인 사람이다.

 

산야시의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사원에 가면서 삶으로부터 달아나는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젊고 신선하고 순결하다. 그대의 슬픔을 버리기 위해서는 쾌락을 버리고 그대 가슴에 은밀히 품고 있는 것들을 버려라. -259p

덧붙이는 글 | <삶과 죽음에 대하여>(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 정채현 옮김 / 고요아침 / 2013.03. / 1만원)

2015.07.14 16:29 ⓒ 2015 OhmyNews
덧붙이는 글 <삶과 죽음에 대하여>(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 정채현 옮김 / 고요아침 / 2013.03. / 1만원)

삶과 죽음에 대하여 - 개정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채현 옮김,
고요아침, 2013


#삶과 죽음에 대하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고요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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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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