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허시명
지난 19일 나는 스무 살 때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했다. 나 또한 스무살 때에 무슨 술이 보였겠는가? 고등학교 때에 명문대 기숙사반에 함께 든 친구 중에, 이미 됫병 술을 마셨던 친구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기숙사로 들어올 때 술 몇 잔에 불콰해진 얼굴을 가리려고, 신나게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는 겁많은 구경꾼이었지만, 그때의 호기로움와 사내다움을 기억한다.
대학에 들어와서 담배와 술은 내가 성인이 됐다는 상징 기호였다. 뻐끔 담배를 피우고, 주량도 모르면서 술을 마셨다. 친구들과 함께 드나들었던 학교 앞 주점 일미집과 녹두집이 눈에 선하다.
시위가 있던 날엔 방방 가득 '학우'들이 있었고,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술잔이 부족하면 구두에 술을 받아마시기도 했다. 술은 또 다른 해방구로 향하는 신비로운 물약이었다. 취하고, 소리치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지만, 위액까지 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술 얘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내게 '술이란 무엇이다'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한다'는 말을 해준 이는 없다. 있었겠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술을 마시지 마라' '적게 마셔라' '아버지도 술에 취하면 잠이 드니 너도 조심해라' 그 정도의 말만 들었다. 그 말은 내게 새겨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젊은 날을 건너왔다. 그리고 지금 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들에게 어떻게 술을 마시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아들과 비슷한 또래, 수능이 끝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주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드는 느낌은, 이교도들에게 전도를 하는 기분이었다. 청중들은 결론을 다 아는데, 강연자만 결론을 모르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술은 금기의 대상이다. 하지만 처음 술을 접한 나이를 물어보면 '중학교 2학년 때'라는 답이 가장 많이 돌아온다. 중학교 2학년 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학여행 때에 생수병에 술을 담아오면서 벌어진 일일까? 이렇게 교육청에 일하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아냐 지금은 생수병이 아냐, 그냥 가져와"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에게 금연 교육은 아주 철저히 하면서도, 술 이야기는 어디서 풀어낼지 해법을 못 찾고 있어. 그저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지. 그런데 사실 술은 교사들도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