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을 넣어서 맥즙을 끓이고 있다.
허시명
지구인들이 마셔대는 알코올음료의 80% 정도가 맥주고, 한국인들이 마시는 알코올음료의 55% 정도가 맥주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맥주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알코올음료가 됐다. 사실 맥주는 유럽 자본주의 문명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세계 음료로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 맥주판에서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존재해왔다.
막걸리는 집에서도 빚을 수 있지만, 상품화되는 것은 양조장에서 빚어진다. 김치는 상품화돼 있지만, 주로 집에서 담가 먹는다. 김치처럼 농산물을 재료로 만든 발효 음식의 하나가 술이다. 맥주라고 다르지 않다. 유럽의 막걸리가 맥주다. 맥주는 보리나 밀로 만드는 곡주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로 만드는 곡주다. 똑같은 곡물로 만드는 저알코올 탄산음료가 맥주이고 막걸리다. 강원도의 엿술은 맥아로 쌀이나 옥수수를 당화시켜서 누룩을 넣고 빚는다. 엿술은 막걸리와 맥주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막걸리나 엿술은 우리 것인데 맥주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짙다. 맥주를 막걸리보다 훨씬 많이 마시게 된 지도 30년이 돼가는 데도 말이다. 이는 맥주가 무슨 재료로 어떻게 빚어지는지, 그 제조법과 변동의 역사를 우리가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인상이다.
한국 맥주는 일본 맥주의 이식으로부터 시작하였고, 국내 자본으로 전환된 뒤로도 수입 재료와 장비에 의존했고, 이제는 자본마저 의존해 맥주를 만들다보니 빚어진 결과다. 이러다 보니 생산과 소비는 철저히 분리되고, 생산에 유리한 측면만 발전해 단일 제품과 단일한 맛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되는 상황이 굳어졌다.
다행히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 최근 크래프트 맥주 바람 속에 들어 있다.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맥주 바람은, 단순하게 외국의 다양한 맥주를 맛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자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맥주를 만들겠다고 건립된 작은 맥주 양조장이 새로 20여 개가 생겨났다. 또한 외부 판매가 가능해진 하우스맥주 집들도 시설을 늘려 적극적으로 외부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은 맥주 제조장에 특별한 제조법을 제시해 주문 생산하는 맥줏집들이 생겼다.
취미 삼아 빚던 맥주, 문화를 바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