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은 부자들만을 위한 고급농사?

[한일 시민 친구만들기 ⑫] 일본 유기농의 산증인 '대지를 지키는 모임' 탐방

등록 2006.12.21 13:39수정 2006.12.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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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장점을 배우면서 좋은 친구가 되자.'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자유롭게 만나 서로 배우며 우정을 쌓는 교류의 장 '2006 한국·일본 시민 친구만들기' 행사가 15일부터 2박 3일간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오마이뉴스>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한국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25명과 일본 <오마이뉴스 재팬> 시민기자 25명 등 한·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편집자주>
a '농민이 변해야 산다'는 전국농민대회 포스터

'농민이 변해야 산다'는 전국농민대회 포스터 ⓒ 송성영

'한일 시민 친구 만들기'의 둘째날인 16일. 사는이야기 교류 부문 한일 시민기자들은 일본 유기농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지를 지키는 모임'(우리나라의 한살림이나 생협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마련해 줬다.


일본은 1970년대 전후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공해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 증가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무농약, 무화학비료 농산물재배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농약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가를 신랄하게 다룬 아리오 노리키의 경제소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유기농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처음에는 이바라키현에서 무농약 농산물을 생산해 한 가정씩 배달하기 시작했다. 소문을 타고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났고 1975년에는 농약공해에 반대하고 농축산물을 사회적으로 널리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지를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다.

직원들이 사회 활동가를 겸해서 일하고 있는 '대지를 지키는 모임'은 정부의 도움 없이 운영되는 순수 민간단체다. NGO 활동을 하면서 유기농업을 촉진하고 환경 살리기에 역점을 두고 있다. 초기 일부 뜻있는 농민들이 자기 농산물을 팔아 활동자금을 마련할 정도로 열악했으나 현재는 물류센터와 같은 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대지를 지키는 모임'의 농축산물을 이용하는 회원 수는 7만7천여 명, 생산자는 2천5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문서와 생산품을 소개한 회지를 소비자에게 보낸다. 매주 회지에 소개되는 생산 품목은 700개 정도. 소비자는 이것을 보고 주문하게 된다.


일본의 유기농과 한국의 유기농

a 한일 시민기자들, '사는 이야기'팀이 '대지를 지키는 모임'을 찾았다.

한일 시민기자들, '사는 이야기'팀이 '대지를 지키는 모임'을 찾았다. ⓒ 송성영

한국에서 '유기농'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지만 농민운동차원에서 논의가 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에서의 농민운동은 종교(가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회)라는 우산 속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농민회는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종교적 울타리를 벗어나 전국농민회총연맹을 결성하게 됐고 기존의 기독교농민회와 가톨릭농민회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 생명공동체 운동이라는 개념 속에서의 유기농 운동을 시작했다.

@BRI@처음에는 '유기농이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농민회에서는 원주교구의 한살림을 시작으로 유기농 운동을 생명공동체 운동의 핵심과제로 전개해 갔고, 기독교 농민회에서도 정농회와 협력하면서 생명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살림이 만들어졌고, 생협들이 만들어졌다. 유기농산물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백화점에 나오는 유기농산물을 보면 20%가 아니라 30% 이상 비싸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질문했다.

"질 좋은 유기농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먹지 못하고 돈 있는 사람들만 먹게 되는 게 아닌가?"

이에 대해 '대지를 지키는 모임'은 "유기농산물은 일반 농산물보다 18~20% 정도 비싼데, 유기농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음식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만큼 식비 값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유기농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유기농산물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노동력이 배 이상 들어간다. 이에 비해 생산량이 적다. 그러니 비쌀 수밖에 없다. 더불어 자연환경을 살린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는 것.

누구를 위한 유기농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일본의 '대지를 지키는 모임'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한살림'이나 '생협'들이 끊임없이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답을 NGO 활동에서 찾아갔다. 환경을 살리고, 쌀을 지켜내고, 원전을 반대하고,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운동 등이야 말로 유기농을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분명한 작업이라고 보았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은 오래 전부터 환경문제며 '쌀 지키기 운동'을 비롯한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다양한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우리농민들이 바다에 뛰어들고 삼보일배를 했던 홍콩에서의 WTO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또 이들은 꾸준히 원전반대운동을 펼쳐나가면서 '100만 명 촛불의 밤' 행사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전등 대신 초를 켜고 에너지 절약과 지구 온난화 방지에 동참하는 '캔들 나이트'라 불리는 이 운동은 2001년 미국에서 '정전 운동'으로 시작됐다. 그 이듬해 일본에 건너와 '대지를 지키는 모임' 주도로 열리고 있는데 현재 세계 12개국에서 동참하고 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유기농을 쉽게 접할 수 없는가

a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서 야채를 선물로 내놓았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서 야채를 선물로 내놓았다. ⓒ 송성영

가난한 사람들은 유기농을 쉽게 접할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유기농을 시작한 내 자신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질문의 핵심에서 벗어나 생각해 보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사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만 있다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게 물었다. 일본에서 유기농을 하면 4인 가족이 몇 평의 농사(야채를 중심으로)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나? 사람들은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싶어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내가 물은 '몇 평의 농사로 먹고 살 수 있나?'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생활 문제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농촌 현실에서 대규모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그만큼 농기계는 물론이고 농약도 많이 사용해야 한다. 결국 농기계상과 농약상만 먹여 살리는 꼴이 되고 자연환경은 포기해야 된다. 하지만 소규모 유기농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면 환경도 살리고 가난한 농민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귀농을 원하는 가난한 도시 사람들 또한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야채를 기준으로, 일본에서는 몇 평의 유기농으로 4인 가족이 먹고 살수 있나?"
"330평 정도면 먹고 살 수 있다."


통역이 잘못 됐을지도 몰라 재차 물었다. 330평의 밭에 유기농 야채를 성공적으로 재배하게 되면 분명 4인 가족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4인 가족이 먹고 살기에는 5백 평으로도 부족하다. 일본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유기농업을 해야 가능하다.

질문할 게 수두룩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서 야채를 내왔다. 방문자들이 찾아 올 때마다 내놓는 것 같은데 좋은 선물이었다.

사무실을 나오다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올 10월에 열린 전국농민대회 포스터였다. 포스터 그림이 차분했다. 통역자 말로는 포스터의 머릿글이 '농민이 변해야 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다.

하지만 우리 농민들에게는 한미 FTA라는 커다란 장벽이 있다.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 당장 장벽을 허물어야 하고 또한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수 있다. 그만큼 우리 농민들은 사는 게 힘들다.

덧붙이는 글 | 농가 현지 방문은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매장 탐방을 기대했지만 일정에 쫓기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내가 유일했다. 내 관심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쪼갤 수 없는 문제였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 관련된 기사 내용은 통역자의 입을 빌린 내용이기에 문제가 약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열심히 통역해 준 정송씨(도쿄대 유학중)와 김지미씨(제일교포 3세) 두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농가 현지 방문은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매장 탐방을 기대했지만 일정에 쫓기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내가 유일했다. 내 관심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쪼갤 수 없는 문제였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에 관련된 기사 내용은 통역자의 입을 빌린 내용이기에 문제가 약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열심히 통역해 준 정송씨(도쿄대 유학중)와 김지미씨(제일교포 3세) 두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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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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