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대변인' 한마디에 휘둘리는 '아프간' 보도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국내 언론은 그동안 뭐했길래

등록 2007.07.25 17:49수정 2007.07.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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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프간 무장단체에 피랍된 23명의 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아프간 무장단체에 피랍된 23명의 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문경미

조심스럽다. 23명의 목숨이 걸린 사안이어서. 또 계면쩍다. 이 역시 뒷북이어서. 하지만 짚어볼 대목은 짚어보자.

아프가니스탄에서 23명의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의해 피랍된 이후 신문 지면과 방송은 온통 아프가니스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문들은 서너 면씩을 온통 피랍 관련 소식으로 채우고 있다. 방송은 뉴스 시간뿐만 아니라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대거 이 소식을 주요 쟁점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속시원한 현지 정보는 접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뉴스들은 거의 모두 '외신'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외교부 브리핑과 카불 현지 대사관 관계자들의 전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현지 교포들과의 통화 내용 등이 '직접 취재'의 거의 전부다.

그동안 동의·다산 부대의 파병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들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부 방송의 기획 특집물을 제외한다면 간헐적으로 국방부의 취재 협조를 받아 동의·다산 부대를 방문해 이들 부대의 현지 활동을 소개한 것이 고작이다. 외신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은 주된 관심사 밖이었다.

언론, 아프간에 관심이나 있었나?

신문과 방송들은 이번 피랍사건이 나자 일제히 한편으로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분쟁지역을 대상으로 한 선교 봉사활동의 무모함을 질타했다.

피랍 위험이 상존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여행금지' 국가가 아니라, '여행 제한' 조치만을 취한 것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정부의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의 종교적 반감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격적 선교활동에 나선 기독계의 무모한 행동을 질타하기도 했다.


맞는 말들이다. 하지만, 되돌아보자면 그동안 그러면 한국 언론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게 된다. 이런 위험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이번 피랍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명분의 옳고 그름을 떠나, 파병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자국군 수백 명이 파병된 나라의 현지 사정과 그 추이에 대해 언론은, 더 나아가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가를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아프가니스탄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자이툰 부대가 파병된 이라크에 대해서도, 또 한국군 동명부대가 파병된 레바논에 대해서도 한국 언론은 '국방부의 자료'와 '외신'을 전할 뿐 현지 취재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외신'에 휘둘리는 한국 언론

a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의 아프간 철군을 주장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의 아프간 철군을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물론 이들 지역, 특히 이라크 같은 곳은 아예 취재가 사실상 '원천 봉쇄' 돼 있다. 정부의 협조 없이는 이라크 입국 비자를 받기 어려운데 정부는 바그다드의 치안 상태가 불안정해진 이후 사실상 기자들의 취재 입국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이라크 입국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신변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취재 활동은 '선교활동' 못지않게 무모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역에 대한 '한국적 시각'의 보도 노력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한국 언론이 그동안 이들 지역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보도해왔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 언론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진정 '한국적 시각'에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종교단체들의 무모한 '아프가니스탄행'에 대해서 사전에 경고할 수 있는 기회도 있지 않았을까?

더 중요한 대목은 바로 이 같은 평소의 무관심 때문에 피랍사건 발생 후 쏟아지고 있는 엄청난 외신의 홍수 속에서 그 정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중계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혼란'이다.

납치 단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거의 전무한 가운데, 언론의 보도는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통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익명'의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계자의 '발언' 한마디에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한마디로 너무 성급한 보도들이 많다.

정확한 정보 아니면 지금은 지켜보는 것이 '최선'

특히 협상 관련 보도가 그렇다. 23명의 목숨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자제와 자제를 거듭할 필요가 있다. 공개될 수 없는 협상의 성격 상 협상의 진전 내용에 대해서는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하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언론들은 탈레반이 포로 교환 대신 몸값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일부 외신의 보도에 입각해 일제히 '몸값 흥정 국면'으로 사태를 몰아가는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정확한 보도'도 '책임 있는 보도'도 아니다.

일부 외신과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실제 협상 국면에서 '몸값 흥정'이 이뤄지고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 다른 나라의 인질 사례에서 보듯이 공개적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인질이 풀려난 경우는 없다. '몸값 흥정'은 어디까지나 장막 뒤편에서 이뤄지는 '비밀스럽고 비공개적인 협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언론들이 일제히 '몸값흥정' 쪽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은 너무 앞서나가는 보도일 뿐만 아니라, 자칫 협상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현지에서 확인된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면, 지금은 지켜보는 것이 '최선의 미덕'일 수 있다.
#탈레반 #샘물교회 #피랍 #아프가니스탄 #인질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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