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야, 생일 축하한다. 그러나···”

첫째는 부모 마음을 편하게 해야 착한 자식

등록 2009.02.05 15:00수정 2009.02.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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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달력으로 눈길이 향했습니다. 달력에는 아내의 한 달 근무표가 메모 되어 있거든요.


“세월도 빠르지, 2월도 벌써 3일이 지나고 4일이네. 가만있자, 오늘부터 자기가 이틀 연속 ‘나이트’(밤 근무)구나, 그럼 6일에나 만나겠네.”
“어마, ‘쓰리 나잇’인줄 알았는데 6일이 ‘오프’라니 다행이네요. 글고 오늘이 안나(딸) 생일이에요. 그래서 아침에 전화해서 밥이라도 먹었느냐고 물어봤는데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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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안나’ 모습. 토요일부터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던 딸이 이제는 대하기 어려운 숙녀가 되었습니다. ⓒ 조종안


이틀이든 사흘이든 아내가 밤 근무를 하는 것이야 한 달에 2-3회씩 경험하는 일이고, 혼자서 밥을 해 먹고 사는 게 몸에 익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 생일에 아내가 축하전화를 해줬고, 아침도 거르고 출근한 것 같다는데도 대꾸하기가 싫더라고요.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오후에라도 축하전화를 해줄까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자식이라야 딸 하나밖에 없는데요. 딸은 대학 등록을 앞두고 있던 2000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자취를 해오고 있습니다. 대학 수능시험을 치르고, 인터넷에서 사귄 선배동호인의 추천으로 광고회사에 2개월 계약직으로 취직해서 받은 월급으로 등록금을 납부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알바’를 해서 첫 등록금을 납부한 것만 보면 무척 착하고 야무진 딸이지요.

공염불이 되어버린 부탁

딸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첫 번째 부탁은, 서울 근교에 사는 고모와 외삼촌, 사촌 언니와 오빠들에게 안부전화를 잊지 말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도 엄마, 아빠에게 안부전화 하라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다하다 지쳤으니 부탁이 공염불이 된 것이지요.


만화를 그리는 딸은 혼자 밥을 해먹으며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대학 졸업도 늦게 했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 중학교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다가도 명절이나 연말에 안부전화 한번 없을 때는 속이 상합니다.  

대학을 어렵게 졸업하고 게임회사에 취직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용돈은커녕 내복 한 벌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일 때 축하전화 한번 없었고요. 그렇다고 탄식을 하면 아내는 “그래도 안나가 고급 카메라를 사주려고 하는 걸 보면 속으로는 다 생각이 있는 것 같던데요”라며 저를 설득하려 듭니다.

설날 아침에 세배하고 용돈까지 주는 조카들이 고맙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남들이 착하다고 칭찬하는 딸과는 대조적이지요. 안부전화가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전화를 하기 싫어서 그러는지는 지금도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나 직장에 다니는 지금이나 딸에게 전화 한 번 받기가 사찰에서 고깃국 얻어먹기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니 강한 생활력과 남들의 칭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부모 마음을 편하게 해야 착한 자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연휴 때도 나를 실망시킨 딸

지난 섣달 그믐날이었습니다. 형님댁에서 저녁을 먹고 조카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리기에 받았더니 딸이었습니다. 반가웠지요. 어디냐고 물었더니 익산이라며 기차를 타야 하는지, 버스를 타야 하는지 묻더라고요. 해서 버스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딸이 온다니까 조카들도 좋아라하더군요. 

익산에서 군산 형님댁까지는 얼추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1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애를 태우다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익산의 시외버스 터미널을 몰라 기차를 타고 왔다며 군산역인데 택시를 타려니까 돈도 없고 현금인출기를 찾아도 없어 도착해서 주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이도 없고 슬며시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신작로에 나가 기다렸다가 택시비 6천 원을 건네주고 딸을 모셔(?) 왔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택시비를 갚겠다는 딸의 말은 관념과 사고가 다른 세대차이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명절에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에 오면서 현금을 확인하지 않은 점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현금카드 하나만 가지고 고향을 방문한 딸은, 부산에서 오신 외할머니와 이모도 만나는 등 설연휴를 가족과 즐겁게 보내고 상경했습니다. 그런데 용돈은커녕 섣달 그믐날 저녁에 빌려준 택시비 6천 원도 받지 못했으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요.

딸은 어렸을 때 세뱃돈을 받거나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용돈을 주면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했고, 저는 돈이 급하면 자식이 저축한 돈을 찾아 쓰는 부모가 되었는데요. 딸이 옛날에 아버지가 찾아 쓴 돈을 감하느라고 그런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돈을 아끼고 알뜰하게 살면서 결혼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인사는 챙겨야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딸은 돈 모으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명절에 현금카드만 하나 달랑 가지고 고향에 내려올 정도이니 더 말하면 잔소리지요.

주변에서 보는 딸과 제가 경험하는 딸은 다른 것 같습니다. 남들은 일찍 독립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 같고, 저는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자식교육을 잘 못한 것 같아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생일이니 축하 메시지는 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안나야, 늦었지만 너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스레를 풀어 미안하다만,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니? 음력 정월은 친구와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달이니까 설연휴 때 뵙지 못한 둘째 고모와 외삼촌에게 안부전화라도 했으면 좋겠다. 부디 건강하고 꿈과 소망을 이루는 기축(己丑)년이 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미스터리' 응모글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미스터리' 응모글
#조안나 #설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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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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