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못 입는 몹쓸병에 걸렸어요

[공모- 폭염이야기] 3개월 동안 접촉성 피부염과 싸우다

등록 2013.08.21 13:50수정 2013.08.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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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여름의 한강 ⓒ 김준희


여름이 시작되고 나서 한 번도 반바지를 입고 외출하지 못했다. 반바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누가 못 입게 한 것도 아닌데, 그럴만한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5월 중순경에, '접촉성 피부염'이라는 괴상한 질병이 나에게 찾아왔다. 처음에는 양쪽 팔 안쪽에 땀띠처럼 무언가가 빨갛게 돋아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여드름으로 고생했지만, 그 이후에는 피부질환을 앓은 적이 없었던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동네에 있는 피부과에 갔었다.

"접촉성 피부염이에요. 여름에는 좀 심해질 수 있어요."

피부과 의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먹는 약과 바르는 약, 주사를 처방해 주었다. 당시 만해도 나는 이 피부염을 가볍게 보고 있었다.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으니 금방 완치가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자 팔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팔은 깨끗해졌다.

대신에 이번에는 손등과 발등, 종아리 쪽에 한 두 개씩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피부염이 생긴 곳에서는 작게는 쌀알만한 크기, 크게는 5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로 피부가 빨갛게 변하고 진물이 배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미 병원에도 다녀왔고 약도 계속 먹고 있으니 새로 생겨나는 것들도 조만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오판이라는 것은 며칠 뒤에 드러났다. 피부염이 양쪽 허벅지를 거쳐서 허리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물론 다리와 허리 전체를 피부염이 뒤덮은 것은 아니었다(그랬었다면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을 것이다). 종아리에 몇 개, 허벅지에 몇 개, 허리에 몇 개씩 생겨난 동그랗고 빨간 피부염은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가벼운 증상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때 나의 벗은 모습을 보았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여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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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야기 접촉성 피부염의 자국들 ⓒ 김준희


나는 다시 동네에 있는 다른 피부과를 찾았다. 이번에도 진단은 똑같았다. 접촉성 피부염. 도대체 무엇이랑 '접촉'하면 이런 피부염이 생기는 걸까?


"여름에 땀이 나면 외부 요인들이 땀을 통해서 스며들 수 있어요. 정확한 원인은 너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이번에도 역시 먹는 약과 바르는 약, 주사가 처방되었다. 다만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이 전에 받았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특별히 조심할 건 없는데 술은 드시지 마세요. 술 드시면 확 번질 수 있어요."

의사는 이런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평소에 술을 즐기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술은 모든 질병을 악화시킨다. 나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피부염이 다 나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못한다면 어떻게 여름을 보낼까.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생맥주나 막걸리가 생각나는 법인데(물론 겨울에도 생각나지만).

여름이 시작되었다. 거리와 지하철에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나에게 반바지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무릎 아래에 있는 피부염의 자국들, 비록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어떻게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면서 그런 상처를 드러낸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팔의 상태는 양호했기에 반팔 셔츠를 입는 것에는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그들의 매끈한 다리를 부럽게 바라보기만 했다.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도 저렇게 깨끗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자기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몹쓸 병이 찾아왔는데. 여름에 반바지를 입지 못해서 슬픈 짐승, 피부병 환자여.

더위와 염증에 지친 여름 보내기

게다가 덥기는 또 왜 이렇게 더운지. 다리에 약을 바르다보면 무더위와 질병을 동시에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더울 때 염증이 생겼는지. 의사의 말처럼 염증은 여름에 심해지는데. 이렇게 덥고 습한 날씨만 아니라면 피부염이 심하게 번지지도 않았을 거고, 벌써 모두 아물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여름이 가기 전에 피부염을 없애자고 작정했다. 매일 하루에 두 차례씩 약을 먹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바르고 술은 가급적 삼가 했다. 피부염이 생겨난 곳에서는 아무런 통증도 없고 가렵지도 않다. 그러니까 순전히 보기에 안 좋을 뿐이지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보기에 안 좋을 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다리의 상태를 확인했고, 밤에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리에 있는 상처들 때문에 샤워할 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상처를 건드려서 악화되면 안 될 테니까.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피부염은 많이 줄어들었다. 진물이 배어나오던 곳에서는 진물이 멎고 딱지가 생겼다. 딱지가 떨어진 곳에서는 조금씩 예전의 피부로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조만간 완치가 되더라도, 올 여름에 생긴 피부염의 흔적들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피부과 의사는 이제 먹는 약은 중단하자고 말한다. 그만큼 상태가 완화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처음 피부과를 찾은 때로부터 무려 세 달이 지났다. 여름 내내 피부염을 달고 살면서 더위와 싸우고 염증과 싸웠던 여름이었다. 도저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름이 될 것만 같다. 그 여름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무더위도 곧 끝난다.
덧붙이는 글 '폭염 이야기' 공모글입니다.
#폭염 #피부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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