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청처럼 찐득찐득... 오줌 싼 거 아닙니다

[응모- 폭염 이야기] 더울 때는 마눌님 말 잘 듣는 게 진리

등록 2013.08.21 17:43수정 2013.08.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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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섬과 우리집(아파트)을 잇는 통통다리. 이 때문에 붕어섬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 신광태


"어디 편찮으세요? 너무 땀을 많이 흘리세요!"


땀으로 목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 몰골은 한 마디로 물독에 빠진 생쥐가 봐도 웃을 지경이다. 역시 우리 부서 막내 직원밖에 없다. 큰일이 난 상황도 아닌데 두루마리 화장지를 아무렇게나 뜯어 가지고 와선 멈칫한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결혼한 이 못생긴 남정네 땀을 닦아 주어야 하나'라고 고민하는 듯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땀을 흘려야 했을까.

진돗개2, 그건 전쟁 조짐이다... 피하는 게 상책

"나, 오늘 급한 일이 좀 있는데, 차 좀 쓰자!"
"내가 말했잖아. 오늘 작은애 (춘천에 있는) 치과에 데리고 갔다 와야 한다고."

지난 13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내에게 한마디 던졌더니 아내의 대꾸도 퉁명스럽게 돌아왔다. 몇 년 전, 차 사고를 다부지게(?) 낸 이후로 내 것이라 여겼던 자동차가 집사람의 소유물이 됐다. 소유권을 넘겨준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차를 가지세요'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냥 빼앗겼다. 최소한 미안해 하는 마음마저 가지지 않는 아내의 태도가 밉기까지 하다.

"아니, 차는 내가 샀는데 왜 만날 당신만 쓰냐?"


이제부터는 아내가 내게 치과를 다녀온다고 말한 게 문제가 아니다. 늘 불만이 있던 차량 소유권에 대한 문제다.

"당신이 세차 한 번 해 봤어?"
"그래? 말 잘 했다. 늘 당신이 차를 끌고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세차를 해!"
"난 지금, 그 이전을 말하고 있잖아!"

집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로 봐서 이쯤 되면 진도개2(군대 용어)가 발령된 것이다. 전쟁 임박 단계다. 나는 그냥 큰소리 한마디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가면 된다. 물론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아내는 그 빠른 입놀림으로 내가 말한 것 세 배정도는 퍼부을 거란 걸 안다. 이럴 땐 몹시 화가 났다는 몸짓으로 신발을 구겨 신고 나가는 게 상책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걸어서 40분은 족히 걸릴 사무실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아파트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만들며 아는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5분여 정도 기다렸다. 옆 통로에 사는 아주머님이 차를 몰고 나오며 내게 가벼운 인사를 한다.

"차 좀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아주머님은) 아내와의 다툼을 알고 있는 듯한 야릇한 웃음을 보인다. 피해의식 때문인가.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는데 (휴가철이라서 인지) 좀체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벌써 8시 20분이다. 마냥 기다릴 순 없다. 그냥 걷기로 했다.

"뭐, 적당한 운동은 건강에도 좋지 않은가?"

50여 미터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30도를 훨씬 넘긴 기온에 길을 걷고 있자니 금세 집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너랑 3일간은 말 안할 거다." "퇴근할 때 술 잔뜩 마시고 들어가 주정이나 할까?" "아! 지난번 돈 2만 원 꾸고 안 갚은 거 있었지" 등 해괴한 생각으로 씩씩대며 걸으니 체감온도도 덩달아 급상승한다. 그렇게 40여 분을 걸어서 사무실로 왔다. 그러니 막내 직원의 눈엔 내 몰골이 해괴망측했을 게다.

그리고 어렴풋이 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왜 그렇게 땀을 흘리며 출근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녀석은 나를 친구'라 하고, '난 녀석을 아는 사이'라 한다

전날인 12일. 사무실에서 환경정화 활동을 한다고 했다. 날씨가 무더우니 오전 10시부터 부서별 담당구역을 청소하라는 배려(?)도 있었다. 아침 10시에도 30도의 뜨끈한 태양과 불쾌지수를 잔뜩 머금은 습기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사람을 괴롭히는 데 웬 배려?

"여러분들, 절전 때문에 선풍기도 못 틀고, 사무실이 한증막 같죠? 많이 당황하셨죠~ 밖에 나가 햇빛에 땀들을 좀 말리세요"라고 했으면 유머러스하다고 말하겠다. 그런데 웬 환경정화냐.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융통성 없다는 이야길 듣는 거야'. 구시렁대며 담당구역으로 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 안에 굴러다니던 선크림이라도 바르고 나올 걸. 이미 새까매져 버린 피부에 그런 거 발라봐야 별 소용도 없겠지만, 그나마 챙 있는 모자를 쓰고 나오지 않았을 때 그걸 바르면 조금 위안이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땡볕에서 열심히 휴지도 줍고 빗자루질도 했다.

여직원들만 없었다면 땀에 흠뻑 젖은 속옷을 훌러덩 벗어서 힘껏 짜보고 싶었다. 땀이 한 양동이는 나올 것 같다. 그 땀의 무게를 생각하니 더 더워진다. 물은 마시지 말자. 그러면 더 나올 땀도 없을 테고 옷에 배인 땀이 마를 거다. 술을 자주 마시기 때문일까. 내 땀에선 이상하게 불쾌한 냄새가 난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데 남들이야 오죽하겠나. 땀을 몹시 흘린 날은 직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기를 피했다.

"6시 땡 하면 일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집으로 튀자!"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때르릉~~"

내 자리에 있는 전화기가 더위에 지친 벨 소리를 낸다. 예감이 좋지 않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으랴' 싶어 수화기를 들었더니 "퇴근시간 다 됐지? 너 만나려고 사무실 앞에 있다. 좀 있다가 보자"며 한 녀석이 제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녀석은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지만, 난 친구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다.

이 녀석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다만, 모처럼 쉬려고 하면 꼭 그 시기에 맞추어 전화를 걸거나 찾아오는 그의 행동이 싫었을 뿐이다. 그리고 뭐가 그리 잘났는지 일방적으로 제 말만 한다. 물론 내 휴대폰에는 이 녀석의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남들처럼 누군지 확인하고 전화를 받기위해 등록한 것이 아니라, 받지 않으려고 등록한 번호다. 그랬더니 이젠 사무실로 전화를 한다.

"더운데, 어디 시원한데 가서 소주나 한 잔하자."

나한테 술을 사라는 소리다. (잠시 쉬고 있다고 말하지만) 3년째 백수인 녀석은 "공무원이 사는 소주 맛 좀 보자" "월급 탔다며?"라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너 붕어섬 가 봤지? 강물 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지금쯤 시원할거다. 가자."

녀석에게 빌미를 주면 안 된다. (화천읍) 시내 쪽으로 향하다 갑자기 슈퍼로 들어섰다. 새우깡 두 봉지에 소주 다섯 병. 내겐 치사량이다. 술의 힘을 빌어서 녀석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녀석이 기가 질려서 나를 말리기를 기대했다. 녀석의 주량도 나와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맞아. 물가에서 마시면 술이 잘 안 취하지. 맥주도 몇 병 더 사지 그래?"

'이 염치도 싸가지도 없는 시키야!' 녀석의 뻔뻔스런 행동에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예상했던 대로 읍내에서 붕어섬까지 20여 분을 걷는 동안 녀석은 무지하게 떠들어 댄다. 50대를 훌쩍 넘긴 녀석이 정치, 경제, 최근의 연예 소식까지 등등 다양한 정보로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연구대상이다.

붕어섬 벤치에 자리를 잡은 나는 녀석과 최대한 붙어 앉았다. 나의 고약한 땀 냄새를 풍겨서 녀석을 불쾌하게 만들리라. 그런데 축농증이라도 걸린 걸까. 오히려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너스레를 떤다.

'아! 누가 물가에서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시는 샤워하지 않고 그냥 자지 않겠다... 그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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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여름은 얼마나 무더웠던지, 이런 눈 내린 풍경을 수백 번 상상했다. ⓒ 신광태


"여보, 빨리 일어나. 씻고자."

집인가 보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녀석과 나는 어깨동무를 하고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던 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그 이후에 기억이 없다.

"나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는데, 그냥 자면 안 될까?"
"당신이 지금 누워있는 자리가 어떤지 좀 보고 그런 소릴 해. 좋게 말할 때 일어나서 씻어."
"아! 진짜~ 나, 죽겠다니까!"

짜증스럽다는 듯 큰소리를 한번 내고 돌아누웠다. 잠시 후 주섬주섬 베개며 이불을 챙겨가지고 건넌방으로 가는 아내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난 낮에 땀에 흠뻑 젖었던 옷을 입은 채로 뻗어 있다. 몽롱함 속에서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만 날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잤던 장소를 보니 가관도 아니다. 오줌을 싼 것도 아닌데 깔고 잔 이불에는 얼룩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조청처럼 찐득한 땀이 이불에 묻어난 때문인 듯하다. 그런 몰골로 뭐 잘났다고 일어나자마자 "급한 일 있는데, 차 좀 쓰자"라고 말을 했으니, 아내에게 먼지가 나도록 맞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덧붙이는 글 폭염 이야기 응모 글입니다
#폭염 #화천 #붕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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