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통'지고 5층 오르면... 35도 폭염은 아무것도 아냐

[공모-폭염이야기] 노가다 하던 시절, 너무 힘들었습니다

등록 2013.08.22 10:24수정 2013.08.22 10: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달아 놓아도 간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아는 '명언' 중 명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전역할 날은 반드시 온다는 말입니다. 국방부 시계만 아니라 '폭염시계'도 거꾸로 달아놓아도 갑니다. 비록 무인관측장비이지만, 울산은 한 때 40도가 넘었습니다. 아직도 무덥지만, 폭염 기세는 분명 한풀 꺾였습니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 것으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 달 넘게 열대야와 폭염에 시달린 이들에게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그리울 따름입니다. 특히 바깥에서 노동일을 하는 분들에게 7-8월은 한겨울 만큼 힘든 날들입니다. 가만히 앉아면 있어도 땀이 주루룩 주루룩 흘러 내리는 데 질통에 모래와 시멘트를 가득 담아 5층 아파트에 올라가면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1994년 여름, 2000년 여름, 2001년 여름에 설비업을 하는 큰 형님 따라 다니면서 이른바 '노가다'(노동일)를 했습니다. 1994년 여름은 고향 이웃집을 고쳤습니다. 다행히 시골집이 다 그렇듯이 단층이기 때문에 질통을 지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나이도 27살밖에 안 되었기 때문 힘든 것은 없었지만, 1994년은 가장 더웠던 여름입니다. 일주일 동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눈 앞에 캄캄해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님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그럼 쉬어야지."
"질통 질 사람이 없잖아요."
"질통이 문제냐. 쓰러지면 어떻게 하려고."


아직 젊을 때라 그런지 조금 쉬었더니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1994년 여름은 지나갔습니다. 6년 후 경남 통영에서 진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 사정도 어려웠습니다. 이를 안 형님이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7월이라 일할 사람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더운 날씨에 질통을 지고 계단을 오르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탁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질통 지고 아파트를 어떻게 올라다녀요?"
"날씨가 더우니까. 사람도 없고. 좀 부탁한다."

"몇 층이에요?"
"한 집은 시골이고, 다른 집은 4층."
"두 집이나? 와 다리가 후덜후덜하겠네."


저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정말 몸으로 떼워야 합니다. 모래를 리어카에 실어다 나르고, 시멘트(당시 40kg) 몇 십 포대를 들어야 합니다. 블록도 몇 백 장입니다. 당연히 자갈도 있습니다.

"모래가 모자란다."
"예."
"모래하고 시멘트 섞어라. 자갈도 넣고. 배합 잘해야 한다."
"예!"
"블록이 없네. 블록 좀 가져다 주라! 좀 빨리 빨리 하면 안 되나."
"지금 가고 있어요.
"그리고 김씨 아저씨 좀 도와 드려라."
"예."


노가다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모래+시멘트에 물을 배합하는 순간, 무게가 엄청나게 나갑니다. 이를 질통에 지고 계단을 오릅니다. 한 계단 한 계단이 천길입니다. 3층쯤 올라가면, 코가 계단에 닿습니다. 정말 입에서는 타는 냄새가 납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시멘트를 잘 바를 수 있도록 배합(모래+시멘트+물)된 것을 퍼주어야 합니다. 이 때 어깨를 조금 펼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 4-5층을 적게는 수십 번, 많게는 백 번을 넘게 오릅니다. 30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층에 내려오면 다른 때 같으면 더운 바람이, 에어컨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꼬박 일주일을 하고 더 아내에게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보 나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럼 쉬세요."
"다리가 지금도 후덜후덜 그려. 하루에 질통을 지고 5층을 약 백 번이나 올라가면 사람이 다리가 아니라. 통나무 같아요."
"그렇게 힘들어요."
"꾀병이 아니에요."

제가 힘들어 하는 것을 알았는지 형님은 3년 동안은 아무 부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여름 형님을 또 부탁을 했습니다. 딱 하루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5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갔다가 입이 벌어졌습니다. 화장실 정화조를 새로 묻어야 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정화조를 묻기 위해 '삽질'을 열심히 했습니다. 상상을 하면 어떤 모습일지 알 것입니다. 코는 감각을 잃었고, 땀은 범벅이었습니다.

"냄새 한 번 정말 고약하네요."
"이 냄새가 다 사람 배에서 나온 냄새다."

"하기사 우리집 정화조도 이런 냄새 나죠."
"날씨가 더우니까. 냄새가 더 심하네요."
"두 번 다시는 못하겠어요."
"너는 한 번이라도 나는 자주 한다."

형님 말을 듣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형님은 정화조 수리를 자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루면 끝납니다. 미안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형님도 설비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더 이상 질통을 지고 4층, 5층을 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20만 원을 준다고 해도 못할 것입니다. 땀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올랐던 그 때를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서 맞는 35도 폭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폭염이야기' 응모
#폭염 #질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3. 3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4. 4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5. 5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