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검찰 이구동성 "녹취록 공개"... 왜?

[게릴라칼럼] <경향>, 검찰에 녹음파일 제공하기로... 수사결과 주목해야

등록 2015.04.13 10:48수정 2015.04.14 18:34
19
원고료로 응원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9일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채 발견된 그의 옷에서 '56자' 리스트와 금액이 적힌 쪽지가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이 세상에 드러낸 56자가 가져온 파문은 엄청났다.

성 전 회장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새누리당 경선과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그는 거액을 '친박' 정치인에게 전달했다. 쪽지에 이름이 적힌 정치인들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1대, 2대, 3대(현재)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현 국무총리인 이완구씨 이름도 포함돼 있다.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 그러나 10일 오전부터 12일 오후까지 청와대는 '쪽지'에 대한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나흘 만에 나온 대통령 입장

a

상황에 따라서는 대선자금으로까지 2012년 박근혜 캠프의 홍문종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성완종 씨 주장을 보도한 <경향신문> 4월 11일자 ⓒ 경향신문PDF


반면,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가 등장하자마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일 검찰은 김진태 검찰총장 주재로 대검 간부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대전지검장을 수사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특별수사팀장은 검찰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는 계통으로, 사실상 과거의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별수사팀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수사를 벌일 수 있을 것인가. 과거 서슬이 퍼렇던 대검 중수부도 쪽지 속 직책 혹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기획을 해야 했다. 쪽지 속 이름의 면면을 보면 그 정도로 거물들이다. 당장 현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이 포함돼 있지 않은가. 직책상 위에 있는 국무총리 등을 대상으로 검찰이 무슨 조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12일 4·29 성남 중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환석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인사말에서 "리스트의 주인공들은 수사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직책을 내려놔야 한다"라며 "진실을 밝히고 검찰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발 빠르게 움직이자 박근혜 대통령도 입장을 내놓았다. 12일 검찰에서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직후에 박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 바란다"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을 대변인을 통해 밝히는 데 나흘이란 시간이 소요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일에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많은 입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가장 먼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성완종 파문, 보호할 생각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 수사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서 책임지겠다"면서 "새누리당은 이 의혹에 대해서 보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검찰에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리스트에 이름 올린 사람들 자리에서 물러나서 조사 받으라'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박 대통령은 "검찰, 성역 없이 조사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12일, 검찰과 김무성 대표가 공통적으로 요구한 것

a

김기춘의 반격 성완종 쪽지가 발견된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반박하는 김기춘 전 청와대 실장. 4월 11일자 ⓒ TV조선갈무리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외압'을 막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결연함 속에 출범한 검찰 특별수사팀이 요구한 자료가 공교롭게도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 둘은 <경항신문>의 '녹취록 전문'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지금 고인이 50분간 대화한 녹취록을 <경향신문>에서 가지고 있는데 빨리 다 공개해주기 바란다"면서 "굉장히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에 사실을 밝힐 모든 자료는 빠른 시일 내에 공개돼야 한다, 협조해달라"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이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는 자리에서 <경향신문>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빨리 다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 까닭은 무엇인가.

검찰 또한 김 대표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12일 오후 발족한 특별수사팀이 <경향신문>에 '인터뷰 녹취록'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밝힌 것이다. 성완종 전 회장이 돈을 주었다고 지명한 대상은 정치인인데, 무엇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한 언론사를 지명해서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지 궁금하다.

성완종 쪽지에 '김기춘 10만달러(2006년 9월 26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26일에는 서울에 없었다, 9월 23일에 출국해서 10월 2일에 돌아왔다, 정말 엉터리다"고 반박했다.

9년 전 일정을 찾아서 고인의 주장을 나름 반박한 김 전 실장에게 <경향신문>은 다음날 '김기춘 엉뚱한 해명 들통'이란 제목의 기사로 대응했다. 성 전 회장이 마지막 50분 통화에서 '9월 26일은 돈을 전달한 날짜가 아닌 김 실장이 독일에서 수행을 하는 사진이 찍힌 <조선일보> 사진 게재일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a

김기춘 반격에 대한 <경향> 재반박 성완종 씨와의 마지막 50분 통화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하며 김기춘 전 실장의 반격 내용을 반박하고 있는 <경향신문> 4월 11일자 ⓒ 경향신문PDF


<경향>이 쥔 패, 정권 명암 달렸나

공개되기 전의 정보가 가치가 있는 법이다. 새누리당 대표와 검찰에서 공개적으로 요구한 <경향> 녹취록 전문이 그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성 전 회장은 '쪽지'에 이름을 적은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 전달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경향>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뤄볼 때 이 신문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내용도 공개된 내용과 유사한 수준일 것이라 추측된다.

이 부분은 검찰의 대응을 궁금하게 한다. 신문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녹취록을 요구한 검찰이, 만약 녹취록을 손에 쥐지 못하게 된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수사를 할 것인지. 또 녹취록을 손에 넣은 다음에는 어느 수준까지 수사를 할 것인지 말이다.

이 대목이 궁금한 이유는 이번 사안의 끝에 '현 대통령의 대선자금'이란 푯말이 놓여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쪽지 속 인물 중 한 명이자 성 전 회장이 2012년 대선 당시 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주말인 지난 1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은퇴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

"경향신문 녹취록 공개하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성완종 씨와 50분 통화한 녹취록을 가진 <경향신문>에게 녹취록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4월 12일자 ⓒ TV조선갈무리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기고 간 리스트나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비자금 장부'는 판도라상자가 되지는 못했다. 이미 공개된 이름 8명은 쪽지 내용에 대해 거세게 반박하고 나섰다. 고인이 <경향>과 마지막 50분을 통화했다는 사실과 일부 녹취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들은 고인의 주장에 대해 거센 반박을 할 것이다.

그러나 <경향>의 녹취록 일부가 공개된 이후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쪽지 속 인물들뿐 아니라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들은 입을 닫거나,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지난 주말 있었던 일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감하게 했다. 김무성 대표도, 서청원 의원도 성 전 회장과 통화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에게 구명로비 받은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13일, '성완종 녹음파일 입장'이란 글을 통해 검찰에 녹음파일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진짜 '판도라 상자'인 성완종 녹음파일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궁금한 건 이후 펼쳐질 장면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몇 단계나 더 빨리 끌어올릴 수 있는 사안이다. 또 4·29 재보궐선거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새누리당에도 좋은 '패'는 아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이번 검찰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해야 한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성완종 #경향신문
댓글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80대 아버지가 손자와 손녀에게 이럴 줄 몰랐다
  2. 2 "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3. 3 "알리·테무에선 티셔츠 5천원, 운동화 2만원... 서민들 왜 화났겠나"
  4. 4 "이재용은 바지회장"... 삼성전자 사옥앞 마스크 벗고 외친 젊은 직원들
  5. 5 "내 연락처 절대 못 알려줘" 부모 피해 꽁꽁 숨어버린 자식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