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노동자회 대학생 자원활동가 염소가 김은영(가명) 씨를 인터뷰 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회사로. 오늘날의 청년들은 취업이라는 기치 하나만을 바라보고 고된 교육의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달려가던 이 발걸음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때가 있다. 그 중, 여성들에게만 걸리는 특별한 브레이크가 무엇일까. 지난 2월 12일, 고학벌·고스펙으로 대기업 취업을 준비했던 김은영(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서울에 소재한 소위 1등급 대학교 출신이고, 대학생활 동안 취업시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는 대외활동, 교내 스터디, 마케팅클래스 수료 등의 활동을 약 20개나 참여하며 착실히 취업준비를 했던 20대 여성이다. 영어 실력도 좋았던 은영 씨는, 전환형 인턴을 거쳐 해외영업직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로를 목표로 약 7개월간 대기업 여러 곳에 지원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스물셋 찾은 '취업 학원', 그곳에도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은영씨의 본격적인 취업준비는 2016년 봄 학기부터였다. 자신의 관심분야가 무엇인지 보다 깊게 고민하면서, 자신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취업준비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취준생으로 노동시장의 문턱에서 마주한 것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고 했다.
기업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나 대학생 서포터즈와 같은 취업과 관련된 대외활동을 이미 여러 개 참여했던 은영씨는 그때 만났던 언니 오빠들과 함께 취업 스터디를 열었다. 이런 스터디의 조장이나 리더는 주로 남자가 맡았다.
"'조장 오빠'들이 특별히 그 스터디를 운영할 만큼 경험과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면 대외활동 할 때부터 그랬어요. 마케팅 관련 대외활동에서 그때 참여자 성비는 5:5였는데, 15개 조 중 딱 1조 빼고는 모두 남자가 조장을 맡았었어요. 연장자이자 남성이라는 점이 그에게 상당한 권위를 주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은영씨는 스터디 외, 30만 원짜리 한 달 단기과정의 취업학원도 다녔는데 그곳에서도 여성의 자리, 여성 롤모델을 찾기 어려웠다. 학원에는 한 달 단기코스, 모 기업 서류 준비를 위한 8주 특별반, 인적성반 등 다양한 단과반이 있었고, 'A기업 면접반', 'B기업 필기시험반' 등 다양한 강좌를 선택할 수 있었건만, 여자강사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미 취업 준비 과정에서부터 주체적 입지를 가진 남자와 조력자 역할을 맡은 여자로 조직이 운영됩니다. 유명 기업에서 일했던 분들이 와서 취업의 '비법'강의를 해주는데, 여성강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경력 단절도 하나의 원인일 테고, 기업을 나와서 강사가 된다는 것이 여성들에게 더 큰 모험이 된다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취업 과정은 남성이 만들어낸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이 생산한 정보를 남자가 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여성 취업준비생으로서 여성인 멘토를 원했으나 볼 수가 없었고, 남성들로만 가득찬 게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따랐다. 취업 학원이라는 존재가 취준생에게 주는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고스펙이어도 안 뽑는다, 미안하다"은영씨는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취업되는 걸 노리는 것보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한 인턴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중소기업은 전환형 인턴이 드물었기에, 학원을 다니며 대기업으로만 열두 군데를 준비했다. 분야는 해외영업 쪽이었다.
은영씨의 경우 영어성적이 높고, 당시 기업들이 신입 선발을 많이 하는 추세이니 유리할 것이라는 학원의 추천을 듣고 이 해외영업 분야로 지원을 결정한 것인데, 주변에서는 영업직은 여자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특히 영업분야 취업을 반대하셨어요. 아버지가 기업에 오래 계셨던 분이라 '여성이 대우받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라고 하시면서 보다 평등한 분위기인 국제기구로의 진출을 추천하셨습니다." 사실, 대기업 해외영업 분야는 여성을 많이 뽑지 않는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그러나 은영씨를 '고스펙, 고학벌'로 분류해 상담해준 학원에서도 추천했을 뿐더러, 언어 능력과 다양한 대외활동 등 객관적인 스펙을 구비해 "취업에 있어서 나름대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었"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많은 기업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객관적인 스펙으로는 떨어질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탈락 근거가 공개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모두 같은 기업의 같은 직무를 준비하니까 같이 스터디를 하고 매번 결과를 비교하는데, 저보다 대외활동이나 학벌 등에서 객관적으로 밀리는 남자들이 많이 붙었어요. 하지만 저를 포함한 학원의 다른 여자 선배들은 아무리 경력과 경험이 많아도 불합격했죠. 그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그러던 중 학원 강의에서 은영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만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여성이 많은 직종이 일하기 편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심지어 "안타깝지만 여자는 아무리 고스펙이어도 안 뽑는다, 미안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라는 말도 들었다.
은영씨는 그 외에도 지원서를 작성하며 느꼈던 성차별적 취준 과정들을 세세히 짚어주었다. 지원서에 성별과 사진이 붙여야 하는 곳, 몸무게와 키, 가족관계 등을 상세하게 써야 하는 회사도 있었다고 했다. 업무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잣대로 지원자를 판단한다는 것에 화가 나 아예 지원하지 않았던 곳들도 있었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잣대가 특히 여성에게 드리워지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운이 좋게도 실제 면접에서는 듣지 않았지만, 학원 면접 시뮬레이션에서 애인이 있냐는 질문도 종종 합니다. 실제 물어보는 기업이 있기에 그에 대비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여성에게는 애인의 유무에 대한 질문도 더 자주 돌아왔고, 야근할 수 있는지, 무거운 짐을 들 수 있는지 등도 더 자주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