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지영
그 질문에 헛웃음이 나오는 이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수사는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낙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편과 네 편을 나눈 후, 누가 권력을 잡는가를 놓고 끝없이 대결을 벌이는 것 말이다. 그래서 성역없는 비판을 던지는 이들은 소신이 있는게 아니라 '배신자' 혹은 '적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된다.
발언의 의도를 의심 받는다. 사실 여성단체는 어떤 조직보다도 정치적인 집단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단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명제는 여성주의적 가치 실현이라는 것뿐이다. 민주주의, 노동, 대중 문화를 망라한 모든 영역을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30년이 넘는 여성 운동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많은 변화 속에서도 이 원칙이 기각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내 눈에 보이지 않냐고' 자신있게 외치는 것도 씁쓸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정치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는 기득권의 위치에서는 절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남성들이 여성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래서 듣지 않던 목소리가 들리니 시끄럽다고 말하거나 왜 이런 때만 떠드냐고 분노한다.
이들은 권력 관계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하다. 자신을 사회의 평균이자 보편이라고 생각하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찾아보고 말하려는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켰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배우들>에 등장한 고현정의 명대사를 곱씹는다.
"내가 쉴 때도 네 눈에 보이게 쉬어야돼? 일할 때도 네 눈에 보이는 데서 일해야 돼?"
여성운동이 다져온 기반사실 여성단체가 지금까지 뭘했나를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룬 좋은 책들도 있고 심지어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참고할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역사는 매우 방대하고 역동적이다. 80년대 후반 여러 여성단체들이 생긴 이래로 많은 것이 최초였다. 몇몇 사건을 계기로 90년대 초반, 한국이 성폭력 문제에 취약하다는 최초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는 이후 성폭력 특별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1994년에는 서울대 신 교수 성추행 사건에 많은 단체들이 연대했고 지원했다. 한국에선 최초로 직장 내 성추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은 일이었다. 6년이 넘는 싸움이 펼쳐졌고, 피해자의 승소와 더불어 이후의 법률적 변화도 이끌어졌다. 현재 문화계와 연예계의 성폭력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미 2009년부터 여성 연예인 인권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극히 일부분만 다룬 것도 이 정도다. 여성운동이 걸어온 길과 미친 영향을 모두 이야기 하자면 아마 분량은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이 활동들이 항상 완벽한 성취를 거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혐오의 벽은 너무도 견고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폭력이고 성추행이며, 배제이고 혐오라는 처음의 목소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어떤 언어를 가지고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들에 이름을 붙이고 문제 의식을 사회 전반에 공유하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성적 폭력과 추행이라는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소리나 듣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의 가장 큰 원동력은 피해자들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담대하게 발을 디딜 최소한의 여건을 여성운동의 역사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여성단체는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