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보수주의와 노무현이 갈 길

등록 2003.04.14 10:32수정 2003.04.1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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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국에 보수주의가 있는가. 필자는 여기서 과문 때문에라도 보수주의의 사전적 정의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보수주의란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장치가 되어있고, 시장경제 논리가 활발하게 터를 잡는 이념쯤으로 이해하고 싶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보수주의는 분배보다 성장논리, 그러나 돈을 벌더라도 사회적 책무를 우선시하는 정신, 사회의 지배계급이 되더라도 건강한 상식이 토대를 이뤄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휴먼정신이 담긴 따뜻한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거칠고 부박하게 느껴지는' 진보주의보다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 보수주의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굴절되고 왜곡되었다는 진단이다. 요즘 한국적 보수주의가 과연 보수주의냐는 강한 비판과 함께 수구의 탈을 쓴 세력의 허구적 논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비판의 내용은 '썩고 병든 것도 감싸안는 것이 보수냐'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특권(기득권)을 향유해온 세력에 다름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득권 세력은 어떤 사람들인가. 논리 전개과정에서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한국 기득권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보수 이념을 지닌 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속적으로 지지해온 서울 강남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의 부의 창출과정이 어떠한가. 저, 개발독재 시절, 박정희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오늘의 강남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들의 정체성, 부의 형성과정, 의식 따위를 살펴보면 한국의 보수주의 세력이 어떤 세력인가를 알게 해줄 것이다. 바로 수구적 태도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줄 것이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경제개발 전략이 입안, 시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개발 정보를 맨먼저 입수해 부를 축적해온 세력이 다름아닌 특정 지역의 특정 학연과 연결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문 보도가 나오기도 전에 개발정보를 먼저 입수해 주택지며, 상업용지며, 공장용지를 사둔다. 또 라면값 기름값 오른다는 정보를 먼저 듣고 미리 라면과 석유를 사재기해 한몫 본다. 자기 돈이 없으면 사돈의 팔촌 돈까지 끌어들인다. 서로 떡고물을 챙기며 은행으로부터는 특융을 받고, 관으로부터는 특혜를 받는다. 자금이 확보된 것을 기화로 끼리끼리 커넥션을 형성해 군. 관. 재계와의 인사 네트워크를 장착한다. 누구는 사단장, 연대장, 그리고 관공서 개발국장으로, 누구는 대기업의 인사부장, 자재과장, 총무과장으로 내보낸다.

이처럼 자본과 인사의 유통 통로를 확보한 뒤엔 먼 눈짓으로 사인만 보내면 더욱 세련되게 소리 소문없이 한탕 해먹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지연 학연을 중심으로 자본 정보 인사의 카르텔을 형성해 부의 세습까지도 가능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빌붙어 연명하고자 하는 타 지역 사람들도 한두 자리씩 내주며 구색맞추기의 세련된 국가나 사회안전망 운영 기조도 유지한다. 이들 세력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강남 세력이 아니겠는가.


지난 5년전 김대중이 정권을 잡았지만 엉성한 관리 시스템,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서투른 국가운영 체계, 그리고 남이 하니까 자신들도 통할 것처럼 패밀리와 몇몇 가신들이 거들먹거리며 이권개입, 인사장사를 하다 수십년동안 '권력학'의 노하우가 축적된 구세력에게 덜미를 잡혀 끝내는 불구정권 식물정권 뇌사정권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바로 구세력의 노회하고 음험한 '권력학'을 터득하지 못한 결과다. 제대로 해먹지도 못하고 덫에 걸려 허우적거린 꼴이 되어버렸다. 잘한 것도 멱살이 잡혀 희화화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수구세력으로 불리는 한국 보수주의자의 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미안하지만 그것은 탈법과 반칙이 아니었던가. 권력과 돈이 있기 때문에 자식들 군대 보내는 대신 외국으로 빼돌리고, 부를 세습하고, 탈세도 당연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부도덕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가진 자의 특권으로 인식한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배우기 전에 배부터 불렀으니 그런 용어가 있는지조차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물질로 평가되고, 사람의 인격과 가치도 물신주의의 논리로 재단된다. 이런 천박한 부를 통해 천민화한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보수주의자의 자화상이라면 화를 낼 것인가.

우리의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이 애국의 선두에 있는 양 국민을 우민화하면서 군사문화가 내세운 냉전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조한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나 미국 의존의 사대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의 오만에 대해 비판하려 들면 좌파로 몰아붙인다. 그러면서 영원토록 세상이 변해선 안된다며 변화를 조롱하고 냉소한다. 변화도 자기들만의 것이라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런 구조하에서 합리적 보수주의가 터를 잡을 수 있었을까. 때로는 합리적 보수 자체도 좌경이 되는 수도 있었다. 낡은 사고구조에 갇혀있는 그들 편에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산 정신 육체적 피해를 본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말은 보수주의지만 극우 파시즘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이 파편화되어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특권 엘리트주의, 지역분열주의를 조장한다. 근거도 없는 지역우월주의를 부추기며 지역패권주의를 계속 향유하려 한다. 이념 분열을 넘어 이제는 세대간 분열까지 조장하는데, 이는 분열시키고 자기들 식으로 통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특히 이해가 맞아 떨어지고, 이념적 동질성, 인적 자원도 한 줄기인 메이저 언론에 의해 더욱 증폭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개발독재시절, 빈곤으로부터 나라를 일으켜세운 주역이라고 말한다. 산업화와 그에따른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國富를 창출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만의 독점물은 아닐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박봉과 과로를 마다하지 않은 산업역군의 몫도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점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과실을 독점하면서도 사회적 책무를 회피해온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간 세대간 분열을 조장하고, 국민을 파편화 형해화한 책임도 크다. 부의 형성과정이 굴절되고 천민화되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사회적 아젠다가 달라지고, 사회적 주류도 교체되어가고 있다. 이는 한 세력이 고여있음으로 해서 썩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국민의 유용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같다. 어느 면에서 더 내놓고 고함을 지른다. 여전히 자신들에게 힘이 있다고 나온 자세들일 것이다. 물론 권력교체가 되었지만 자본. 정보. 인사의 자원은 그들에게 더 많고, 투표자의 숫자적 우세도 앞선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근래 더욱 새 권력(무늬만 그렇다고 보지만)이 위태위태하고, 불안하다고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같다. 거대언론을 우군으로 두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군림하려 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지난 대선을 살펴보자. 이회창이 영남에서 70% 얻은 반면, 노무현은 호남에서 95%의 지지를 얻었다. 이를 두고 호남표는 김일성 집단이나 지금은 패주한 이라크의 후세인과 같은 독재적 광기의 표, 지역감정을 극단화한 표가 아니냐는 한나라당측의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영남과 호남의 표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상식과 몰상식이라는 차이는 없는가, 도덕과 부도덕한 차이는 없는가, 특권과 지역우월주의 유지와 이의 피해에 대한 혁파라는 표심도 작용한 것은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남인이 더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나, 호남이 더 사로잡혀 있나도 살펴볼 계제다. 어느 것이 이기적인 표이고, 정의로운 표인가도 보아야 한다. 어느 것이 광기의 표이고, 어느 것이 순수 순정성의 표인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만이 계산법은 아닌 것이다.

언필칭 균형이란 정의와 불의의 어정쩡한 중간지점이 아니다. 과감히 정의의 편에 서야 균형이 되는 것이다. 이 점을 무시하거나 간과한 채 억지를 부리는 것은 이성사회를 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지킬만한 보수로 돌아서는 일이 급선무다. 수구의 탈을 쓴 보수는 허구일 뿐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정략으로는 국민의 표를 살 수도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덫에 걸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소수로서 허덕이는 노정권을 앞 뒤 가리지 않고 몰아붙이거나 낡은 숫법으로 대응하려다가는 소멸될 수도 있다. 국민의 의식은 어제의 그것이 아닌 것이다. 지킬만한 보수를 내세울 때 지역 계층 구분없이 지지자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반면 노무현 정권은 자기 색깔을 분명히 내야 한다. 가깝게는 4.26 보궐선거, 멀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은 집토끼 산토끼 다 놓칠 우려가 있다. 정략은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들통이 나게 되어있다. 최악의 경우, 잃더라도 반만이라도 잃는 자기 선택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세력, 민주화 세력을 대결집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적으로 소수정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고달프긴 하지만 정의로운 자기 이념과 세력을 중심으로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도 적지 않다. 수가 적다고 탄식하며, 야당 문을 기웃거리면 이들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통째로 삼키려 들 것이다.

피아(彼我) 구분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전선과 대오가 지리멸렬해지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비록 외로울지라도 자기 지지세력부터 다져놓고 외연을 확장해나가야 한다. 내가 허약하게 보이면 가냘픈 토끼도 달려들 것이고, 비록 허약하더라도 당당하게 서면 백수의 왕 사자라도 주춤거리게 된다. 정치는 반드시 숫자 게임만은 아닌 것이다. 상생의 정치라고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지만, 상생의 훈련을 받지 못한 세력, 즉 지난 반세기 가까이 군림과 오만으로 캐릭터화한 세력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적 보수주의자들은 노무현의 시체를 넘고 갈 노회한 전략과 정보,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확보해놓고 있다. 그것을 뛰어넘는 아젠다 세팅이 없으면 그 역시 김대중처럼 5년 내내 허덕이게 될 것이다. 약한 동물이 사자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닌다 해도 사자 입장에서는 자기 주위에서 맴을 도는 형국일 뿐, 손쉽게 사냥감을 포획하게 된다. 비록 소수라도 세를 결집해 한 방향으로 줄곧 내달리는 동물은 살아남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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