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눈엔 '교통체증'밖에 안 보이나

'장애차별 철폐의 날' 언론 보도에 할 말 있다

등록 2005.04.22 14:16수정 2005.04.2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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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일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 후 마포대교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위대가 저녁 8시 20분경 정리집회 뒤 이동하려는 순간 경찰이 김도현 장애인인권연대 정책국장(가운데)을 갑자기 연행하려 하며 다시 충돌이 발생했다. 폭이 채 3m도 안 되는 좁은 인도에서 수십명이 엉키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일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 후 마포대교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위대가 저녁 8시 20분경 정리집회 뒤 이동하려는 순간 경찰이 김도현 장애인인권연대 정책국장(가운데)을 갑자기 연행하려 하며 다시 충돌이 발생했다. 폭이 채 3m도 안 되는 좁은 인도에서 수십명이 엉키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김덕련

지난 4월 20일은 '장애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정부에서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그 주인공인 장애인들에게는 그 25년 세월 동안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장애인의 날에만 그들을 위한 행사가 펼쳐지고, 동정의 눈길과 관심이 쏟아진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다.

올해도 여지없이 장애인의 날이 되자 보건복지부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하는 등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올림픽경기장에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하지만 사회의 다른 한켠에선 같은 장애인들이 장애 차별 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서울 시내에서도 공덕로터리에서 마포대교까지 시위대가 행진을 벌이며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연합뉴스>의 단편적 현장 보도

이날 밤부터 각종 언론에는 이날 시위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속보성 <연합뉴스> 기사를 올린 것이었고, 그 연합뉴스 기사는 이날 장애 차별 철폐를 외친 장애인들의 외침은 빠뜨린 채, 본질을 축소ㆍ왜곡한 전형적인 현장 보도였다.

<장애인들 '차별철폐' 외치며 마포대교 점거>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차별철폐를 외치며 마포대교를 점거해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중략)하지만 공동투쟁단은 마포대교 위에서 당초 예정됐던 편도 2차로 외에 추가 차로 통제를 요구하면서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고 그 결과 약 1시간 가량 마포대교 양측 소통이 완전히 차단됐다. 일부 공동투쟁단 회원은 피켓과 목발 등을 휘두르며 전경들에 거세게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주동자급 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투쟁단원들은 연행된 동료 석방을 요구하며 마포대교의 양방향 2개 차로를 제외한 도로를 점거한 채 이날 오후 7시 현재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005년 4월 20일 19:41 입력



사실관계에 거짓은 없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더 많은 사실이 감춰져 있다. 더군다나 이날 시위의 본질은 일단 기사의 첫 문장에서부터 왜곡된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차별철폐를 외치며 마포대교를 점거해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라니. '마포대교를 점거해'까지는 좋았는데 그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과연 '교통체증을 빚었다'란 말인가.

장애인들이 왜 경찰과의 대립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러한 행진을 하려 했는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 1년 중 300여일을 집이나 시설에서 갇혀 지내다가 1년에 딱 한 번 길거리로 나선 이유가 교통을 마비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일부 공동투쟁단 회원은 피켓과 목발 등을 휘두르며 전경들에 거세게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주동자급 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라는 문장도 문제가 있다. 시위대가 피켓과 목발을 휘두른 것은 사실이지만, 전경들이 날카롭게 날을 간 방패를 치켜들며 시위대를 위협하고, 대열의 중간을 끊음으로써 미처 합류하지 못한 시위대를 연행해 간 사실은 은폐되어 있다.

또한 연행되어간 사람들은 주동자가 아니라 위와 같이 그저 전경들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아무나 연행해간 것이다. '주동자'를 연행해갔다고 하면 경찰 측에 정당성이라도 생기는 걸까.

무관심을 넘어선 주요 일간지들의 편향 보도

<조선일보>는 연합뉴스 기사를 싣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은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해놓는 데 그쳤고,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은 아예 관련기사가 없었다.

그나마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인터넷 언론들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올렸다.

한편 일간지들은 한술 더 떠서 시위에 대해서는 몇 줄 되지도 않는 이런 간단한 기사를 올렸음에 비해, 정부나 지자체가 주관한 장애인의 날 행사는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대조를 보였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 차별의 날
[현장] 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 후 마포대교서 경찰과 대치
- <오마이뉴스> 김덕련 기자(4월 20일)

장애인들이 '마포대교'에서 절규한 이유
[현장] "말만 장애인, 장애인 하지말라", 70여명 연행
- <프레시안> 김경락 기자(4월 21일)

道 '장애인의 날' 행사 이달 말까지 체육대회·문화공연 등 도내 곳곳서 -<조선일보>(4월 21일)

오늘 장애인의 날…'세종문화회관~돈화문로 휠체어로 가보니' 르포 - <동아일보> (4월 21일)

모범 장애인 자활시설에 1억5000만원 상당 물품 지원 - <중앙일보>(4월 21일)

"현직 법원장이 장애인을 위한 자선콘서트 지휘 맡아" - <경향신문>(4월 21일)


장애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러한 문화행사를 통한 단발성의 관심이나 동정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 이상 동정받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른바 비장애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특별히 동정하지 않고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그런 사회여건의 조성이다.

평소에는 장애인 정책에 관심도 없던 지자체나 언론이 이날에만 대대적으로 떠드는 것은 '병 주고 엉뚱한 약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진정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 장애인들은 혼자서는 외출조차 하기가 힘들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에게 이동 가능한 장소는 도로턱과 같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평탄한 곳뿐이며, 이동수단은 콜택시 말고는 없다.

그들은 버스조차 탈 수 없으며, 지하철은 타고 내리는 데만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중증 장애인에게는 1종 면허 발급이 금지되어 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비장애인'과 똑같은 교육권과 노동권, 그리고 이동권을 원할 뿐이다.

이러한 차별의 철폐를 요구하며 장애인의 날을 '장애 차별 철폐의 날'로 부르기 시작한 지 4년째에 접어들었다. 대화가 도저히 통하지 않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올해도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외치고, 절규하였다.

이번 시위에서, 교통체증을 일으킨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한 장애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동권이 없는 우리가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노동권을 잃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한국농아인협회 전승일 대표는 격렬한 수화와 몸짓으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국군의 날, 대통령과 영부인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습니까? 장애인의 날, 이 자리에는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죠? 참여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시혜와 동정을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항은 중단돼서는 안됩니다."

왜 장애인들이 모든 걸 감수하면서 길거리로 나섰을까. 정부와 사회는 더 이상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관련
기사
-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 차별의 날?

덧붙이는 글 | 박일순(필명 박수정) 기자는 언론비평웹진 필화(http://pilhwa.com)의 기자로 활동 중이며 본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일순(필명 박수정) 기자는 언론비평웹진 필화(http://pilhwa.com)의 기자로 활동 중이며 본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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