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그런 곳이 어디 있습네까?"

평양사람들과 유머를 즐기며 평화를 얘기하다

등록 2005.10.07 15:15수정 2005.10.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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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공항에 내리자 검색대에서 내 핸드백을 열어보라고 했다. 검사원이 핸드폰보다 약간 크지만 보통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납작하게 생긴 카메라를 들고 그것이 무엇인가 물어보았다. 카메라라고 말한 후 비행기 속에서 읽으려고 가져왔다며 핸드백에서 책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제목이 재미있지요?'라고 책의 반입을 금한 북측에 그렇게 유머를 함으로써 방북을 시작했다. 그 책은 잘못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재미있게 비판한 책이다.

북측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산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기적>이란 책 5권을, 북측이 주민들에게 책 주는 것을 금한다는 말을 듣고 안 가지고 갔다. 대신에 알트 박사의 강연을 찍은 디카를 가지고 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40-50년분 밖에 안 남은 화석연료, 우라늄을 대체해야 할 대안에너지에 대해 얘기했다.

남측 검색대에서 북측 VCD와 CD를 금하지 않는 까닭은?

대화 과정에서 북측은 풍력발전을 시도해보았는데 작동이 잘 안되어 포기해버렸고 지붕에 설치하는 태양열 집열판은 돈이 많이 들어 아직 시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풍력발전 기술이 요즘엔 많이 발전해 보리밭에 바람이 스치는 정도의 소리만 나고 경제성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한국에서 2002년 국회 통과된 태양열 지붕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전기구입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북측 안내원은 대안에너지로 남측에서 성공하면 북측에서 받아들일 것이란 말을 했다.

남측도 북측 책과 비디오테이프 등을 사는 것을 금했는데 나는 모르고 VCD와 CD를 사왔다. 집에 와 틀어보니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돌아왔을 때 남측 검색대에서 비디오테이프만 금하고 VCD와 CD는 금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VCD와 CD는 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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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선

내가 보고 들은 평양은 정치제도의 비민주성,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해방 안 된 여성의 모습을 제외하면, 환경운동가들이 말하는 생태적인 미래도시에 가까웠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거리, 산속을 뚫어 만든 동굴에도 차도와 인도를 설치한 점, 주로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전기,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남성과 여성들의 모습에서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를 비켜가는 생활상을 보았다. 아리랑 예술공연에서 에너지원으로서 최근에 더 많이 지었다는 수력발전소를 카드섹션으로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유적지를 찾아 버스로 다닐 때 박동지라는 북측 남자 동반자가 아주 유머가 풍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람은 전문적인 안내자가 아니어서 안내해줄 의무는 없었지만 버스 안에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안내해주었다. 그는 "30%는 잘 몰라서 거짓말로 안내하게 될 것이라 안내비는 안 받겠습니다"라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대동강에 세워진 어느 다리를 버스가 건너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다리 이름이 행주대교라 해 내가 놀라서 정말이냐고 물어보니 정말이라 해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다음 다리는 반포대교, 그 다음 다리는 천호대교라고 해 그제서야 농담인 줄 알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나는 그에게 핵시대평화재단은 미국이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없애는 데 모범을 보이라는 운동을 하고 있는 단체로 노벨평화상을 탄 사람들이 고문으로 있는데, 내가 그 단체의 한국대표라며 명함을 주었다. 그리고 작년에 뉴욕에서 '북측(North Korea)을 선제 공격하지 마라,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연설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왜 미국이 북측을 선제공격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몰라 몹시 궁금했는데 드디어 이유를 알았다며 "안 선생님이 그런 연설을 해서 선제공격하지 않았군요!"라고 즐거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배꼽을 잡고 웃고 나서 그의 유머감각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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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선

아리랑 공연 중에 북측 사회생활 중엔 입지 않는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군인들이 나와 웃으면서 힘차게 칼춤을 멋지게 추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북측의 유머감각,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격렬한 방어정신과 함께 북측도 군사적 광기(military madness)의 희생양이란 슬픔을 느꼈다. 이 군사적으로 미친 상태에서 남과 북이 함께 벗어나기 위해서 평화적 통일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리고 그런 통일은 빠를수록 좋을 것인데 이런 남북 교류가 많을수록 통일은 빨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북측은 우리는 하나, 핏줄도 하나, 언어도 하나라며 닫힌 문을 우리 민족의 힘으로 열어가자라는 통일에의 의지를 카드섹션으로 보여주었다. 아리랑 공연 말미에 지구본과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를 들고 등장한 무대에서의 춤공연은 놀라움과 찬탄을 자아냈다. 또 그에 못지 않은 카드섹션으로 비둘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계 평화에의 염원을 보여주었다.

"남북이 평화로우면 미국도 평화롭게 될 것"

내가 뉴욕 지하철에서 만난 한 미국 남자가 국방연구원에서의 내 발표문 이야기를 듣고 '나를 위한 것이네 (That's for me!)'라는 말을 해 '남측과 북측이 평화롭게 되면 미국도 평화롭게 될 것이니 그건 그를 위한 것도 된다'라는 대화를 했다고 하자, 박동지는 "그 사람에게 북측이 미국의 평화도 만들어줄 것이다란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믿고 금을 사들이고 있어 국제 금값이 폭등하는 등 현 세계정세가 제1차 세계대전 전과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12-18개월 동안 동양 17개국의 연대를 이루어 그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발표하면 제3차대전의 불똥이 동양에 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글을 쓴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되 나의 예방활동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입에선 "안 선생님같은 분이 있으니 괜찮겠지요"라는 유머가 금방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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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선

내가 만난 사람 중 한국에선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 미국에선 미국 평화운동가 헬렌 캘디콧(Helen Caldicott)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모르면서도 'She is my friend'라고 말함으로써 평화운동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여기는 마음을 보여준 뉴욕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 그리고 북에선 박동지가 유머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인데, 그 유머를 분석하면 애정이 깃든 친절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더니 그도 웃으면서 수긍했다.

나는 그에게 독일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프란츠 알트 박사가 보여준 대안에너지 건물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보여주었다. 뉴욕에 세워질 그 건물은 5000명이 일할 수 있는 규모로 건물 유리창에 태양열 집열판을, 건물 사이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자연 에너지로 건물을 가동하며, 그 가운데 30%의 전기는 여분으로 전력회사에 팔아 돈도 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6자회담에서 북측이 핵쓰레기 처리 방법이 없고 테러리스트의 목표가 될 수 있는 위험한 경수로 원자로보다 이런 대안에너지 설비를 요구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말을 했다.

북한? 그런 곳이 어디 있나본데...

그는 또 평양의 변두리를 지나게 되었을 때 그곳이 서울의 강서구쯤 된다고 했다. 남측 사람들이 어찌 그리 서울지리를 잘 아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을 2002년도부터 3번인가 방문했다고 했다. 무슨 일로 방문했느냐고 남측 어느 남성이 묻자 "남파되었다"고 말해 또 한번 사람들을 웃겼다.

박동지도 유머 잘하는 사람들이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 하는 비슷한 반응을 했다. 김어준씨는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을 한 사람에게 "미워 미워"라고 말한 후 친절하게 설명하는 글을 통신에 올렸고, 뉴욕 남자는 싫은 질문을 듣고는 "좋은 질문이네!(That's a good question!)"라 말한 후 대답은 하지 않았었는데, 박동지는 남측 사람들의 "북한에선…" 식의 질문을 듣고는 "북한? 그런 곳이 어디 있나본데 여기에선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유머로 대꾸했다. 북측으로 떠나기 전 행동지침 및 주의사항으로 '남한, 북한 등의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남쪽, 북쪽, 북측, 남측 등의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한반도는 우리 땅, 이 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남측 사람들의 입에선 '북한'이란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습관은 고치기 참 힘든 것이었다.

서울을 떠날 때 북측 비행기를 탔는데 간식으로 땅콩을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에 주었다. 그 그릇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비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점이 좋다고 생각해 남자 기장과 여 승무원에게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배로 만든 주스를 배사이다라며 주었는데 사과주스 비슷한 맛이 나면서 아주 맛이 좋아 남측 배주스보다 더 맛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러자 남자 승무원과 여자 승무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호텔에서 식사시간에 준 밀감단물(오렌지주스)은 당도가 남측의 것보다 낮아 칼로리 걱정하지 않고 맛있게 마실 수 있었다. 물김치와 보통 김치의 중간쯤 되게 만들어 한 사람당 한 종지씩 준 김치는 환상적이었다. 단군 제사를 지낼 때 상에 차려 놓은 음식 중에 순대를 둘둘 말아 쌓아 올려놓고 잉어와 육고기를 익히지 않은 채로 올려 놓은 점이 남측과 다른 모습이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묘인 동명성왕릉에 갔을 때 옆에 고구려 시대의 사찰이 있었는데 3명의 부처상이 서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또 동명왕릉의 내부 그림을 그대로 본따 밖의 건물 내벽에 그려놓은 태껸하는 남자들, 춤추는 여성들, 활쏘는 모습 등에서 고구려 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북측 여성들이 거리에 다니는 모습을 유심히 보니 많은 여성들이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이 왕릉의 설명을 잘 해준 리명화씨에게 고맙다며 여분으로 가지고 간 스타킹 한 벌을 선물했다.

마지막으로 평양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호텔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안 가져갔다고 하자 서비스하는 여성들 둘이서 빌려다 주었고, 짐칸에 실은 내 짐을 내릴 때마다 친절하게 문을 잘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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