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당신이 대법관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경기도 광주 선거구 문제의 42표 전부 공개

등록 2000.10.24 14:15수정 2000.10.2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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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기사는 스캐너로 쓰는 기사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문세표'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난 4·13 총선때 경기도 광주군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 박혁규 후보가 16,675표를 얻어 16,672표를 얻은 민주당 문학진 후보를 3표 차로 눌렀습니다.

우리나라 선거사상 가장 적은 차이인 3표 차. 이때부터 당선자인 박혁규 의원보다 낙선자인 문학진 후보가 더 유명해졌습니다. '문세표'라는 별명으로 말입니다.

그 뒤 문학진 후보는 광주선관위위원장을 상대로 개표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당선무효소송을 냈고, 지난 6월5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며 재검표 공판이 열렸습니다.

이 소송의 원고는 문학진 위원장이고 피고는 경기도 광주군 선관위원장 임승균 씨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재판은 원고 문학진 위원장과 피고보조참가인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의 싸움입니다.

피말리는 재검표 결과는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 16,667표, 민주당 문학진 위원장 16,665표, 판정 보류 14표. 여전히 박혁규 의원쪽에 많은 표가 집계됐지만 3표 차이가 2표 차이로 줄었고 14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표'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때부터 문학진 위원장의 별명은 '문세표'에서 '문두표'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2표 차가 아닙니다. 이미 판정이 내려진 표 가운데서도 28표에 대해 문학진 위원장과 박혁규 의원쪽에서 서로 "이의가 있다"며 승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방망이가 '땅땅땅' 두드려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28표도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거죠.


양쪽이 이견을 제시한 28표(박혁규 의원쪽 7표, 문학진 위원장쪽 10표, 무효 11표)를 제외하면 박혁규 의원은 16,660표, 문학진 위원장은 16,655표가 됩니다. 2표 차이가 5표 차이로 벌어지는 것이죠. 여기에 아직 임시로 판정이 내려진 28표와 판정이 보류된 14표가 남습니다.

좀 복잡한 것 같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현재 박혁규 의원과 문학진 위원장의 표 차는 2표가 아니라 5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혁규 의원쪽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는 42표(임시판정 28표, 판정보류 14표) 하나하나입니다. 4명의 대법관이 이 표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판결하느냐(만장일치로 해야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그야말로 '피말리는' 싸움입니다.

42표는 한 표 한 표에 실린 무게가 상당할 뿐 아니라 모두 명쾌한 판정이 힘든 상태입니다. 또한 지난 6월5일 재검표를 실시했던 대법원 특별1부 소속 대법관 4명(지창권, 신성택, 서성, 유지담 대법관)가운데 지창권 재판장과 신성택 주심은 7월10일로 임기가 만료됐습니다.

국회의 신임 대법관 임명 동의에 맞춰 새로운 재판부가 구성돼야 사건 처리가 다시 시작됩니다. 따라서 빠른 처리를 원칙으로 하는 당선무효소송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장기화 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자, 각설하고 지금부터 여러분을 이 세기의 재판에 초대합니다. 한 표 한 표가 피말리는 재판. 여러분이 대법관이라고 생각하시고 한번 판결을 내려 보십시오.

이 재판에서 필요한 것은 법률적 지식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를 떠난 공정성과 기준 적용의 형평성, 그리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양심과 건전한 상식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42표 모두를 공개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혹시나 아직 끝나지 않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한 표 한 표를 마주하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나의 한 표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의 한 표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다 느껴보자는 취지로 <오마이뉴스>는 문제의 42표를 스캐너를 통해 모두 공개합니다.

이제 여러분께서 대법관이 되어 보십시오. 과연 경기도 광주군 유권자는 누구를 선택했는지.

<판단에 주의할 사항>

1. <오마이뉴스>에서 공개하는 '문제의 42표'는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판단과 나중에 원본을 보고 내리는 대법관의 판결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2. 선관위에서 보통 표를 처리하는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79조(무효투표)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전사(轉寫) : 유권자가 한 후보에게 분명히 찍었는데 접는 과정에서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아 제3의 위치에 찍히는 경우. 이 경우 보통 기존에 접힌 선으로 다시 접어 불빛에 비춰보는 것으로 판명함.

▲오손(汚損) : 투표지가 더럽혀지거나 훼손된 경우. 상황에 따라 처리함. 특히 투표용지가 완전히 두동강 난 경우 개표과정에서의 실수로 그랬다면 그 자리에서 테이프로 붙이고 개표과정에서 검표원의 실수로 그랬다는 표시를 함.

▲무인(拇印) : 기표용구 외에 다른 지문이 찍혀 있을 경우 비밀투표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무효처리하는 것이 원칙.

▲인육(印肉) : 기표용구 외에 인주가 묻어있다고 하더라도 투표인이 선거인명부에 지장을 찍은 다음 휴지로 깨끗이 닦지 않은 채 기표하다가 실수로 묻거나 또는 다른 실수로 인해 묻은 것이라고 판단되면 되도록 유권자의 선거의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유효를 인정.

▲경계선 기표 : 기표 동그라미가 보다 많이 치우친 쪽에 유효를 줌.

3. 각 표의 왼쪽 위에 낙서가 돼 있는 것은 대법관의 '유무효 또는 보류' 표시입니다. 재검표 때 쓰여진 것이므로 표를 판단할 때 전혀 개의치 않아도 됩니다.

4. 스캔받은 표는 로딩을 빠르게 하기 위해 3장씩 묶어서 공개합니다. 각 사진을 또 한 번 클릭하면 알아보기 쉽게 크기가 커집니다.

5. 각 표의 밑에 설명이 있습니다. 재판부의 의견은 '재'로, 박혁규 의원쪽의 의견은 '박'으로, 문학진 위원장쪽의 의견은 '문'으로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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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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