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의 생성 생생하게 그려내

이동희씨의 '사진으로 보는 서양철학기행1'

등록 2000.07.24 10:59수정 2000.07.25 11:58
0
원고료로 응원
'지루하지 않은 철학책'이라는 말은 '검은 백조'라는 말처럼 언어모순일까. 하지만 이 책은 단연코 지루하지 않은 철학 책을 실현했다. 이야기와 사진, 그리고 서양 철학의 발흥지를 찾아다니는 기행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을 공부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철학사를 읽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철학사를 쓴 저자나 그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유포한 말이라고 치부할지는 모르지만 철학 전공자의 입문서는 언제나 철학사였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다.

철학을 만나는 비결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난해한 철학사를 꾸역꾸역 며칠이고 붙들고 씨름한다 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은 '철학'의 지나친 태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철학자 이동희 씨가 펴낸 「사진으로 보는 서양 철학 기행1」은 이러한 '철학의 태만'을 꾸짖기라도 하듯 전혀 지루하지 않은 철학책이다. 이 말은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기자가 이 책을 본 후 느낀 솔직한 소감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모 대학의 어떤 철학 교수가 저지른 이 이야기는 실화다.

"사색비 : 얼마얼마"

아마 대학교수들은 학기별로 연구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학교 당국에 제출하는 행정적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있는가 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잡지를 얼마에 구입했고, 어떤 책을 얼마에 샀고, 자료 수집으로 얼마의 비용을 지출했고 등등.


물론 이 일을 꼼꼼히 대학교수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뻔할테고, 대개 조교들에게 얼마의 액수에 해당하는 지출내역을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베테랑 조교가 아닌 이상 속깨나 썩을 일이지만, 이 이야기이 주인공인 어떤 대학의 철학교수는 전혀 조교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 교수는 조교에게 이렇게 작성해 주었다고 한다. "사색비 : 얼마얼마".


얼마나 일목요연한가. 한 항목으로 모든 잡다한 내역을 통합해 버렸다. 그리고 그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연구를 위해서는 책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여행도 가고,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는 등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어떻게 비용내역을 항목별로 작성하겠는냐"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였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냥 재미있으라고만 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만 노여움을 푸시길...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야말로 철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어떻게 철학을 공부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철학책이 지루하고, 어려워야만 한다는 고루한 생각을 벗어던질 수 있겠다는 의도에서 꺼낸 것이다.

발로 쓴 서양 철학사

이 책, 즉 연구 결과물에 대한 지출내역을 작성하라고 한다면 "여행경비 - 얼마"라고 해야할 것 같다. 지은이 이동희 씨의 말이다.

"나는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에서 유럽 쪽으로 서양 철학의 정신이 옮겨가는 과정을 발로 추적해 가면서 다른 사람의 시각이 아니라 '내 눈으로' '서양 철학'을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서양 철학의 발상지로 두 번의 답사 여행을 떠났고 이제 그 첫 번째 결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은 이동희의 서양 철학 기행 1권이다. 부제로 '트로이에서 에페소스까지'라고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 자연철학자의 시대(기원전 2000∼500년)를 돌아다닌 결과를 이 책 한 권으로 담았다.

이 책은 다른 철학사 책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사진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서양 철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흔히 서양철학의 시작을 탈레스로 상정하고 모든 것을 탈레스로부터 기준 삼아 서양 철학사를 바라보는 태도가 지배적이었는데, 이에 대해 지은이는 구분함으로써 서양철학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서구인들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더 먼 옛날, 신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서양 정신을 탐색한다. 당시의 유적과 유물, 문헌을 생생하게 돌아봄으로써 메마르지 않고 풍성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책을 기획한 출판사 이학사의 오영나 편집주간은 "지난 2년간 기획과 준비의 과정을 거쳤다"며 "서양철학사를 일반인들도 재미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앞으로 이 책은 "근세까지 이어져서 대략 5권 정도로 마무리 될 것 같다"고 오 주간은 밝혔다.

이 책을 일반인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얘기는 접근하기가 쉽다는 차원에서 지적한 부분이고, 기자가 읽어본 바로는 오히려 철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 없는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북리뷰 부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북리뷰 부꾸에 실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