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란 없다, 그냥 들어달라"

김명일 전공의 '대장' 인터뷰:엉킨 실타래와 실마리

등록 2000.09.06 09:59수정 2000.09.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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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전공의들이 '완전한 의약분업'을 외치며 주도한 2차 의사폐업. 그것이 시작된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들의 투쟁열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꼬이고 꼬인 우리나라의 의료환경문제는 해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의대 교수마저 외래진료에서 철수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정부의 총체적 의료개혁조치와 의료계의 폐업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9월 5일. 이번 파업주도의 핵심인 김명일(인하대 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 3년차) 전공의 비상대책위원장은 조금 피곤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새벽 6시까지 회의를 했다는 김 위원장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한달여간 수배생활이 끝난 후 처음 갖는 언론과의 인터뷰는 김 위원장이 아침 겸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우유를 시킨 후 시작됐다.

관련기사 1:31일간의 수배, 5개의 휴대폰과 3시간의 인터넷
관련기사 2:수배중 마지막 던진 한마디 "반민중성?"

- 지난 8월 31일 비상공동대표 10인 소위원회가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한 후 협상에 관한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을 협상국면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협상국면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협상 국면이 아닌 대치국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이제까지 항상 대치국면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수세였고 그후 공세로 나갈 때가 있었고, 지금은 힘의 접점 즉 균형상태라고 봅니다. 협상은 완전한 힘의 우위에 있을 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협상이 되려면 전제조건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정부측에서 그것에 대한 태도변화가 없습니다."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건 정부다. 구속자와 수배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협상이 이루어질 수 없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 전제조건으로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 '대국민 사과'를 들고 있는데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한 듯 싶은데요.


"구속자와 수배자 문제는 모두 파업과정에서 생긴 것이고, 파업의 원인 자체를 제공한 것이 정부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 협상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굴복입니다. 또한 대국민 사과를 한다는 것은 약사법 개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협상에 들어가면 또 결렬될 수밖에 없죠."


"협상은 없다, 오직 협상 테이블만 있을 뿐"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의사들이 발표한 '대정부 요구안'으로 옮겨졌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 개원의 등 다양한 위치의 의사들로 구성된 '비상공동대표 10인 소위원회'(이하 10인소위)는 지난 8월 31일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 요구안은 모두 33쪽으로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나오던 의사들의 요구가 모두 집약되어 있다.

"요구안이 너무 많지 않냐"는 물음에 김 위원장은 "요약하면 약사법 문제와 의료환경개선 문제 두 가지"라고 밝혔다.

"진료권과 처방권이 훼손되지 않는 형태로 약사법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약분업평가 감시단이 직접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불법진료 사례가 책으로 두 권, 케이스로 3천 건 정도나 됩니다.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의료환경개선 문제의 핵심은 지역의료보험재정에 국고지원을 50%로 확충하라는 것과 의료발전특위의 위상·인선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쪽에도 말했습니다. 전공의 처우개선 안해도 좋으니까 약사법과 의료환경을 개선하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언제 배고프다고 이러는 것입니까? 경제적인 문제가 동력은 됐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 의사 내부에서는 '요구안과 협상안은 다르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지요?

"우리는 이 요구안에 적힌 내용을 타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보고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협상안이 아닙니다."

- 이것이 타협의 대상이 아닌 '기본'으로 본다면 정부가 이 내용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이면 협상안이 또 나오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죠. 이것 자체가 협상안이고 요구안입니다. 그러니까 협상안이라는 것은 우리 개념에 없습니다. '협상이란 없다, 그냥 들어달라'는 겁니다. (요구안을 잡으며) 이것을 던지는 협상테이블만 있는 것입니다."


"약사법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

김 위원장의 식사로 샌드위치가 나오자 인터뷰는 잠시 중단됐다. 10인소위가 발표한 대정부요구안은 폐업 이후 의사들이 처음 내놓은 단일한 요구안이고 이후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요구안으로서는 너무 '방대하다'는 지적이 있다.

"요구안이 방대한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의료모순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해결되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스케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약사법 개정 부분은 이번 정기국회때 해결하고 두번째 의료환경 개선 부분은 당장 해결 가능한 부분과 시간이 걸리는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형태가 나와야 합니다. 더이상 '하겠다'는 말만으로는 안됩니다."

8월 31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국민건강권수호를 위한 의사학생 대동한마당'
ⓒ 권우성


- 의료 개혁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약사법이 아니라 지역의보재정 50% 확충으로 대표되는 의료환경 개선일 수 있는데 왜 약사법이 계속 앞으로 나오고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입니까.

"이번 싸움이 약사법으로 시작됐기 때문이죠. 또한 둘은 분리된 문제가 아닙니다. 모순된 의료환경으로 인해 잘못된 의약분업이 불거져 나온 것이죠."

김 위원장은 약사법과 의료환경 개선 중 어느 것이 더 핵심이냐는 질문에 '둘 다 핵심'이라고 말했다. 중요성으로 보자면 후자가 더 중요하지만 약사법이 없으면 투쟁의 이유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약사법과 의료환경개선 문제를 '엉킨 실타래와 그것을 풀 수 있는 실마리'로 비유했다.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은 엉킨 실타래이고 이번 의약분업으로 빚어진 사태는 그 실마리라고 할 수 있어요. 먼저와 나중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마리가 없으면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하지 않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어지는 기사'로 기사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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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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