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같은 세상을 살다간 탄광 노조위원장의 분신

<상주 탄광> 노조위원장 분신 사망 사건

등록 2000.10.12 11:16수정 2000.10.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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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을 3년여 남기고 맡은 노조위원장의 직함. 하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어디서 번듯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직함이 아니었다. 25년 동안 광산업체에서 일하면서 겪어왔던 부조리를 없애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동료들에게 '노동의 대가'에 걸맞는 임금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훌쩍 뛰어넘지 못할 벽을 맞닥뜨린 채 그가 선택한 길은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지난 11일 밤 10시, 문경제일병원 영안실에는 현직 노조위원장의 빈소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곳엔 며칠 전까지 (주)흥진태맥탄광(문경시 은척면 하을리, 이하 흥진탄광)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고(故) 김길동 위원장(56)의 영정이 있었다. 늦은 시간 영안실을 찾았다. 빈소에는 김 위원장의 평소 지인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정 앞에 곱게 차려진 제상과 분주한 방문객의 움직임이 그의 죽음을 위로하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그렇게 그의 죽음은 너무나 '슬펐다'.

너무 슬픈 죽음

고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오후 7시 25분쯤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탄광 현장 노조사무실에서 온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댕겼다. 당시 현장 경비원이 사고현장을 발견했지만 이미 그는 세상을 달리한 후였다. 그리고 그가 남긴 것은 자신의 승용차에 남긴 세 통의 유서뿐이었다.

평소 김 위원장을 알고 지냈던 주위 사람들은 갑작스런 그의 '분신자살'에 놀라워했다. 일반적으로 노동쟁의가 장기화될 때 발생하는 분신자살인데 최근까지 조용했던(?) 흥진탄광 사업장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 가족들은 평범하기만 했던 가장의 주검 앞에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 김성현 씨(30)는 "지난 추석 때 모든 일(노조 관련 사업)이 예전보다 잘 해결됐다고 들었다. 그래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 위원장의 자살이 있은 이후에야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자살하기 전 일주일동안 밤잠을 설쳤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김 위원장은 아들 김씨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결혼한 딸(29) 하나의 남매를 두고 있다. 하지만 가족들은 항상 단란했고 행복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무척 편하신 분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빠'라고 불렀고, 존칭도 쓰지 않을 만큼 격이 없었고 다정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또 "배움이 그리 깊지는 못하셨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생각하시고, 곧은 성품으로 사셨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죽음으로 마지막 의지를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읍 상계리에서 출생한 김위원장은 서른 살 무렵 서울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문경 지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광산업체에서 일해왔다. 그 세월은 벌써 '두 고개'를 넘어 스무 다섯 해에 이르렀다.

긴 세월동안 평조합원으로 근무했던 그에게 정년퇴임을 몇 해 앞두고 선택한 노조위원장 선거 출마는 남달라 보였다. 김위원장의 선거출마를 도왔던 한 동료는 당시 김 위원장의 선거출마와 관련해 "그 분은 단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선거출마에 나선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악덕업주에게 억울하게 당해왔던 광산업계의 부조리에 대한 한을 풀어보려는 의지가 더욱 강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년퇴임 전 3년여의 시간동안 지금까지 보아왔던 부당한 관행을 고쳐 보려는 김위원장의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지난 5월 1일 이후 5개월만에 그는 죽음으로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했다.

Y부장과의 갈등... '뜻 펼칠 수 없었다'

노조위원장으로서 그의 앞길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특히 그의 자살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지는 흥진탄광 Y부장간의 갈등은 심각했다.

흥진탄광 실세로 통하는 Y부장은 김 위원장이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조와는 아무런 협의 없이 무단으로 노조대의원인 안 아무개 씨를 탄광 외 근무에서 탄광 내 건양기 작업장으로 옮기게 했다. 당연히 노조의 반발을 사게 됐고, 김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으로서 Y부장을 면담했다. 하지만 당시 김 위원장은 Y부장에게 심한 모멸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노조는 대의원 회의를 소집하고 '더 이상 Y부장에게 탄압 받을 수 없다'는 결의를 세우고, 노조원들의 'Y부장 퇴출 서명서'를 회사 쪽에 제출했다. 결국 회사와 노조의 협상과정에 Y부장을 배제시키자는 쪽으로 의견을 절충하고 Y부장과의 마찰은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여졌다. 이후 회사 쪽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임금협상도 작년 수준(3 퍼센트 인상)보다 높은 수준인 8.3 퍼센트 인상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Y부장과 김위원장의 화해를 여러 차례 주선했던 노조의 의도와는 달리 Y부장은 화해를 거부했다는 것이 노조쪽의 주장이다. 당시 화해를 주선했던 한 노조 관계자는 당시 Y부장이 "(김위원장이) 무릎 꿇고 애원하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위원장이 노조사업을 펼치기 위해 나서면 자주 Y부장과의 마찰이 빚어졌다. 그럴수록 김위원장의 심적인 고충은 심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노조 관계자는 "의욕을 가지고 노조사업을 하려고 고민하면 무엇을 할 수 있나. 결국 실행단계에서 계획했던 것은 수포로 돌아가는데 어떻게 일에 대한 의욕이 생기겠냐"며 당시 김위원장의 어려움을 대신해 토로했다.

Y부장과의 관계 이외에도 김위원장은 평소 부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었던 탄광 노동자들의 후생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분신자살을 결행하기 앞서 남긴 유서 중 '대통령님께 드립니다'의 제목의 글 중에는 국고보조금이 지원이 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처후는 결코 좋지 않다는 내용의 하소연을 담고 있다

석탄산업 사양화, 국고보조금은 어디로...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석탄산업합리화사업으로 이전부터 사양해 되고 있었던 석탄 광업소는 구조조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었던 중소규모의 석탄광업소는 문을 닫았다. 결국 지금 전국에는 대한석탄공사에서 운영하는 3개 탄광, 민영화된 8개 탄광만 남았다. 이들 탄광의 경우엔 에너지 자원을 지키기 위한 차원에서 매년 국고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이 국고보조금은 '생산안정지원금'(이하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원되며, 단순 시설운영비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의 임금이나 후생과 관련한 예산지원도 포함돼 있다. 물론 국고보조금 외에 기계·설비에 대한 현물지원도 있다.

하지만 흥진탄광의 경우 이 지원금이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후생복지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쪽 한 관계자는 "작년 경우엔 47억원이 회사로 지원됐다. 하지만 강원도 지역 타 탄광 노동자들의 임금에 비해 70∼80 퍼센트 수준으로 낮은 형편이다"고 주장했다.

물론 강원도 지역 타 탄광에 비해 생산능력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생산이 용이한 환경이나, 설비가 적게 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임금이 낮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노조쪽 주장이다. 또 복지시설도 미비해 탈의실 겸 목욕시설로 쓰는 설비 외에 변변한 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이 조여... 숨 못 쉬겠다'

결국 이번 사건은 김위원장이 ▲회사쪽의 노조활동 방해 ▲노동환경 문제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조위원장으로서 나섰지만 여의치 않자 사업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언론에 호소하기 위해 결행한 분신자살로 여겨진다.

평화시장 피복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안고 쓰러진 날이 벌써 30년을 넘기고 있다. 하지만 세월의 깊이만큼 우리 사회는 노동자에게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것이 한 '늦깍이' 노조위원장의 분신자살을 눈앞에 둔 우리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닐까.

김위원장이 자살을 결행하기 전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동료에게 남긴 말이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목이 조여... 숨을 못 쉬겠다"

한편 회사쪽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체 공개적인 답변을 자제하고 있다. 현재 Y 부장은 회사에 출근을 하지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Y부장은 일단 사직서 제출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국고지원비 유용과 관련해 지방노동사무소와 관할 경찰서는 공금 횡령에 대한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김길동 노조 위원장의 유서>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태백광업소는 자연조건이 전국 탄광 중 제일 좋은 곳입니다. 자재 및 인건비가 적게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흑자가 나고 있으나 복지시설은 전혀 없고 임금도 전국 민영 탄광에서 하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또 복지비 역시 최하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대통령님 탄광은 국고보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탄광은 매우 높은 임금과 좋은 시설을 제공하는데 여기는 국고 보조금을 자기내 이익을 내는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또 노동조합을 탄압하여 자기 부하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료일체를 제공치 않고 건의 사항은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무원이 퇴직했는데 아예 보충해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는 총무부장이 모든 전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자는 권력을 악용하여 근로자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노조 대표로서 어찌할 방법이 없어 저는 죽음으로 항거 하오니 정밀조사를 하시여 국가보조금 부당이득 분을 회수하여 근로자들에게 돌려주시고 총무부장을 살인죄로 처벌하여 주십시요. 저 역시 저 놈의 간접 괴롭힘으로 자살 결심을 했으니 저놈은 충분한 사실자라 할 것입니다. 

태백광업 노조위원장 김길동

덧붙이는 글 <김길동 노조 위원장의 유서>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태백광업소는 자연조건이 전국 탄광 중 제일 좋은 곳입니다. 자재 및 인건비가 적게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흑자가 나고 있으나 복지시설은 전혀 없고 임금도 전국 민영 탄광에서 하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또 복지비 역시 최하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대통령님 탄광은 국고보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탄광은 매우 높은 임금과 좋은 시설을 제공하는데 여기는 국고 보조금을 자기내 이익을 내는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또 노동조합을 탄압하여 자기 부하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료일체를 제공치 않고 건의 사항은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무원이 퇴직했는데 아예 보충해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는 총무부장이 모든 전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자는 권력을 악용하여 근로자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노조 대표로서 어찌할 방법이 없어 저는 죽음으로 항거 하오니 정밀조사를 하시여 국가보조금 부당이득 분을 회수하여 근로자들에게 돌려주시고 총무부장을 살인죄로 처벌하여 주십시요. 저 역시 저 놈의 간접 괴롭힘으로 자살 결심을 했으니 저놈은 충분한 사실자라 할 것입니다. 

태백광업 노조위원장 김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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