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만드는 부모가 되기 위해

어린이들의 발진과 발열

등록 2000.10.25 11:17수정 2000.10.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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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질병 가운데 부모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 중의 하나가, 홍역이나 풍진, 수두와 같은 전염성질환이다. 열이 나면서 얼굴이나 몸에 발진이 돋으면 여지없이 혹시 홍역이나 수두가 아니냐고 물어온다. 어쩌다 신문이나 TV에서 집단발병 소식이라도 접하고 나면, ‘우리 아이가 혹시?’ 하면서 조바심을 내는 부모들이 부쩍 늘어난다.


얼마 전, 병의원이 파업으로 대부분 문을 닫았을 때, 평소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문의를 받았다. 아이가 열이 나면서 온몸에 발진이 돋았는데 홍역인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화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을 뿐더러, 발진상태만 듣고 뭐라고 분명한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우선 증상치료 하면서 경과를 잘 지켜보라는 어쩌면 상투적인 말만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의사라도 사실 한 순간의 발진이나 임상양상만으로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 아이들의 발진이기 때문에, 아마 직접 봤더라도 같은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그런데, 돌이켜보니 우리 부모들이 유독 발진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홍역이나 수두와 같은 전염성 질환이 과거 공중위생이 좋지 못하고, 예방접종이나 의료수준이 높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나 기억만으로,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고 큰 후유증을 남기는 무서운 질병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보통의 감기보다는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지만 드물고, 대부분은 다른 바이러스 감염질환과 마찬가지로 감기 비슷한 증상과 발열과 발진 외에는 별 문제가 없이 지나간다. 다만 높은 전염성 때문에 공중보건학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늘 대중매체의 조명을 받는 이 질환들이 굉장한 병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발진의 원인질환을 찾는 데는 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병원에서 진찰 받는 순간의 임상양상이나 발진의 상태 뿐만이 아니라, 그 전후의 상태나 변화가 진단에 중요한데, 의사가 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없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의 얘기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발열이나 발진의 경과에 대해서 잘 설명하지 못한다. 조금만 알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정리를 해본다.

홍역은 홍역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10-12일 쯤의 잠복기를 지나 증상이 나타나는데, 3-5일 정도는 발열, 기침, 콧물, 결막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 특징적인 모래알 크기의 회색빛 반점인, 코플릭반점(Koplik spot)이 아래 어금니 부위 맞은편 구강점막에 나타났다가 12-18시간 내에 사라진다. 사실 이 반점은 홍역의 진단에 중요하지만, 실제로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코플릭 반점이 사라지고 나서 피부의 발진은 귀의 뒤쪽에서 시작해서 얼굴, 목, 팔과 몸통, 다리아래로 3-4일간 퍼졌다가 열이 떨어진 후 나타났던 순서대로 소실된다. 발진이 나타났을 때가 임상증상이 가장 심하고 고열이 난다.

홍역과 함께 예방접종을 하는 풍진은, 발진이 나타나기 1주 전부터 가벼운 감기증상과 귀뒤, 후두부, 목뒤의 임파선이 커지면서 통증을 동반하고, 발진은 발열과 함께 나타나는데 얼굴에 처음 나타나서 수시간 내에 급속히 온몸으로 퍼진다. 역시 3-4일이면 발진은 사라진다.

2세 미만의 아이들이 잘 걸리는 바이러스 감염인 돌발진은, 급작스럽게 발열이 시작되지만, 발열 정도에 비해 아이가 아파보이지 않고 열이 날만한 특별한 이상소견이 없다가, 3-4일 후 열이 떨어진 다음에 나타나는 몸통과 목의 발진이 특징이다. 얼굴이나 다리에는 발진이 드물다.

1주이상 발진이 지속된다면 전염성홍반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역시 바이러스 질환으로 미열등 경미한 증상 앓고난 일주일 쯤 후에 발진이 뺨에서 팔다리, 몸통, 엉덩이로 진행해서 1-3주 정도 지속된다.

수두는 거의 모든 연령의 소아에서 생길 수 있는데, 5-9세의 어린이에 호발한다. 전염성이 강해서 가족 내 접촉한 경우 거의 100% 감염을 일으킨다. 보통 발진이 나타나기 24시간 전부터 딱지가 생길 때까지 전염성이 있다. 2주 정도의 잠복기를 지나 처음에 작은 반점이 생기고 그것이 곧 눈물방울 모양의 물집이 되어 터진 후 딱지가 생기는데, 이러한 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 발진은 가슴과 등에서 먼저 시작해서 얼굴 팔다리로 퍼진다. 수두는 발진이 물집과 딱지로 진행하는 특징적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쉽게 진단된다.

수족구병은 말 그대로 손과 발, 입에 물집이 생기는 바이러스 감염질환으로 구강점막과 혀에는 물집이 터지면서 패이는 궤양성 발진이 된다. 전염성이 강하고 발열, 호흡기, 소화기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입 속에 생긴 궤양으로 잘 먹지 못하게 되지만, 1주일 정도면 좋아진다.

성홍열은 세균감염인데, 갑자기 열이 나고 토하고 목이 아픈 후 12~48시간 이내에 발진이 나타난다. 발진은 전신으로 급속히 퍼지는데, 소름이 돋은 양상을 보이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들어갔다가 손가락을 떼면 다시 나타나는 양상이다. 얼굴에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피부가 겹치는 부위에서 가장 심하다. 1주일 정도 지나면 발진이 사라지고 꺼풀이 벗겨지지 시작한다. 혀에 하얗게 백태가 끼면서 벗겨져 딸기모양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밖에도 고열이 5일이상 지속되며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발진이 생기고 눈이 충혈되고 혀와 입술이 빨개지며 임파절이 커지고 손과 발의 껍질이 벗겨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가와사키병이 있다. 또 감기 걸린 아이의 몸에 생긴 발진은 감기약 때문일 수도 있고, 아토피성 피부염등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다. 두드러기 발진이거나 땀띠일 수도 있다.

이렇게 조금은 전문적인 임상양상을 늘어놓았지만 부모가 아이들 발진의 원인을 구분해내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발진이 생겼다고 안절부절 할 것이 아니라, 전후 변화를 세심히 관찰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 주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발진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지만, 증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진이 언제, 어디에서 부터 생겼는지 등을 꼼꼼히 관찰해서 정보를 주는 부모가 명의를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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