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미디어만 판치고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미국 대선이 남긴 교훈

등록 2000.11.09 17:35수정 2000.11.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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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미국 CNN 방송의 아주 웃긴 보도를 접했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전세계 언론의 오보사태가 잇따랐다고 하면서 한국 언론을 예로 드는군요.

저희 신문은 석간이라, 마감시간이 달라서 좀 이야기가 다르지만, 조간 신문들은 일제히 가판에 '부시 당선'을 보도했죠. 천하의 CNN이 그렇다는데 누가 의심이나 했겠습니까.

미국 대선은 지금 '투표 용지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투표함이 사라졌다', '컴퓨터 기록에서 고어의 1만표가 갑자기 줄었다' 등등 온갖 주장이 나오면서 혼미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시간 10일 오전에 문제의 플로리다주 재개표가 끝나도 부재자 투표 수천표가 앞으로 열흘간 속속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엄청난 표차가 나오지 않는한 지루한 연장전은 계속됩니다.

오늘 드릴 이야기는 영국 신문 '가디언'이 전한 '미국 대선의 교훈'입니다. 우리나라 언론도 당당하게 이런 기사를 독자적으로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싶은 그런 이야기죠. 오늘 저희 신문에도 제가 기사로 쓴 내용이지만 다시 소개하죠.

요점은 간단합니다.
미국 대선의 교훈은 뭐냐. 바로 이런 거다. 이제 현대적 선거는 돈에 의해, 즉 부자들에 의해, 또 미디어 장악을 통한 통제에 의해서만 승리한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시들어가지만 선거운동원들은 그들만의 승리를 자축할 것이다.

다소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미국의 선거정치를 꽉 잡고 있는 법칙은 우선 경쟁자보다 더 많은 표를 얻는 것. 표를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TV 광고입니다. 또 TV 광고 시간을 따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결국 이를 위해 수백, 수억달러의 정치자금을 모아야 하죠. 이번 미국 대선은 이같은 정치판의 신념을 배신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비록 재검표 사태에 부딪쳐 당선구도는 혼미해졌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는 2004년 대선에는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를 쏟아부은 이번 선거보다 훨씬 돈이 더 들 것이라는 점이죠. 물론 최근 쟁점으로 떠올랐던 선거자금 개혁방안은 물건너 갔습니다.

일반 대중의 참여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도 이번 선거의 교훈입니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잔치일 뿐이라는 거죠. 일각에서는 인터넷이 대중의 민주적 정치참여를 이끌 것으로 기대했지만 착각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은 선거 조직운동가와 로비스트, 여론조사원, 언론과 시민운동가 등 일부에게만 날개를 달아줬다는 거죠.


또 앨 고어나 조지 W 부시 후보는 모두 철저한 선거지침에 따라 움직였다고 가디언지는 지적합니다. 조직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 대중이나 즉흥적 사태, 끈질긴 탐사보도를 내세우는 언론 등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대상. 현대 선거전에서 정치보도는 위험하답니다. 고어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단 한차례 기자회견을 가진뒤 언론을 멀리했으며 부시도 말실수를 연발한 끝에 기자를 피했답니다.

물론 이들은 오프라 윈프리, 데이빗 레터맨, 제이 르노 등 코메디쇼나 심야토크쇼에는 출연, 가벼운 농담으로 TV시청자들을 유혹했지만 결코 정치 프로그램과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성공적 미디어선거전의 본질이라는 거죠.


점점 일반인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만 상관없습니다. 어떻게든 한번만 내게 표를 찍도록만 조직하면 그만입니다. 전세계 정치인들은 이같은 교훈을 배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는군요.

돈과 미디어 장악을 통한 선거판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참, 이건 제가 내일 쓸 기사인데요, AP통신 분석에 따르면 이번 미국 상원선거 당선자의 81%, 그리고 하원의원 당선자의 96%가 상대방보다 돈을 더 많이 쓴 쪽이 이겼답니다. 물론 예외도 가끔 있겠지만 '선거가 돈잔치'라는 건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더 맞는 모양입니다.

제일 돈을 많이 쓴 존 코자인(골드만삭스던가? 확실치 않지만 암튼 월가의 모 회사 회장이었죠) 상원의원 당선자는 65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0억원 이상 썼다는군요. 그 돈 써서 할만큼 상원의원 자리가 짭짤한 자리인가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가 '이지페이퍼' 등 메일진을 통해 발행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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