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 이후 최대 갈등
18세기 산물, 21세기 민의와 충돌

<대선 연장전 감상법> 그 역사적 뿌리와 논리

등록 2000.11.11 14:14수정 2000.11.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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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플로리다의 재개표 과정이 미 전역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치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특히 전국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 선거인단 제도와 관련하여 집중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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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공화 양측의 입장과 논리

이번 선거결과의 가장 핵심적인 모순은 전국적 지지율에서는 이기고 선거인단 획득에서는 뒤지는 바람에 지지가 상대적으로 낮은 후보가 집권하게 될 수 있는 기이한 구조적 현실이다.

민주당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요체는 국민들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수를 차지한 지지율을 근거로 내세운 논리이다.

반면에 공화당은 이런 식으로 차기정부 이양에 차질이 생기면 전통적인 미국 민주주의 제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면서, 먼저 국가이익을 고려하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의 공정성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대로 넘어가면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공화당은 이제 싸움을 그만 끝내고 국가적 분열을 추스려서 앞으로 나가자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미국사회는 이 문제로 심각한 내부분열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선거의 공정성이 파괴된 상태에서 집권하는 정부는 출발부터 정통성의 문제를 안게 된다는 점에서 쉽게 사태를 정리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되고 있다.

부시가 집권한다해도 선거에서는 지고 집권에는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따라 다닐 것이고, 앨 고어의 경우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고 법정소송으로 대통령직을 얻어냈다는 비아냥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으로 해서 어느 쪽도 어떤 결론이 나도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이다.


구조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선거과정에서의 기술적 문제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국적 지지율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 선거인단 제도와 관련한 문제이다.

현재와 같은 정치제도 하에서는 다수의 민의에 기초한 집권이 아닌, 그래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인물이 집권에 성공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이미 미국 정치사에서 세번이나 있었고, 당시에도 논란이 심각하게 일었다. 1800년과 1824년에 토마스 제퍼슨과 존 퀸시가 각기 선거인단 동수로 인해 하원의 결정으로 대통령직에 취임했고, 1888년에는 벤자민 해리슨이 그로버 클레블랜드에 비해 지지율에서는 훨씬 뒤쳐졌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이겨 대통령이 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당선된 대통령의 지도력 자체에 정통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그 결과 전국적 규모의 국가적 통합력을 발휘하는데 심각한 한계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단지 선거시기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4년 내내 중대한 정치적 갈등의 소지를 안게 하는 구조적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고어는 이러한 상황이 예상되기 전에는 자신의 지지율이 부시에 비해 뒤쳐져도 선거인단 제도로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러한 선거인단 제도가 헌법적인 요구이니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자 미국 정치의 불투명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에 중대한 도전이 발생했다고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이러한 제도의 모순을 일찍이 지적해온 바 있는데 그간 이를 무시하다가, 막상막하의 상황에서 패자가 될 가능성이 있게 될 경우 이것이 얼마나 억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가 절감된 것이다.

각 주의 독립성과 연방의 권한 사이

상하 양원과 같은 수(현재 각 주 2명으로 한정된 상원 100명, 인구비례로 뽑히는 하원 435명, 워싱턴 D.C. 3명 : 따라서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면 대선 승리로 확정됨)로 선출되는 선거인단 제도는 승자 독식제도가 가장 큰 문제이다. 조금의 격차로라도 다수를 차지하는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작은 당은 전혀 선거인단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발언권을 전혀 가질 수 없다.

미국은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합중국(合衆國)"으로서, 각 주는 연방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외교, 국방, 발권(發券)의 기능 등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하나의 국가와 다를 바 없다. 미 대선은, 이 하나 하나의 국가, 즉 각 주가 밀고 있는 대통령 후보를 그 주의 인구 대비로 설정된 선거인단이 대표하여 연방선거에 임하게 되는 형식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초기 역사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연방정부의 구성에 대하여 각 주의 독자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존재했던 시기였다. 해서, "우리 주는 누구를 밀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선거결과가 나온 것을 가지고 인구비례로 차지하는 선거인단을 그 주에서 당선된 후보자를 지지하는 표로 다 계산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선거제도는 미국 각 주(州)의 상대적 독자성을 좀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연방체제 성립과정에서 요구된 18세기의 산물이, 그 연방체제가 전국적으로 이미 완성되어 통일정부의 기능을 확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21세기 정치의 발목을 잡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연방체제가 다져질 대로 다져진 단계라 보다 중요한 것은 전국적 지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정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내막적으로 그 역사적 배경을 좀더 살펴보자면, 인구의 수가 북부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던 남부의 주들이 직접선거를 도입할 경우 북부의 영향력에 연방정부가 놓이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생긴 제도의 측면도 있다.

즉, 고정된 수의 선거인단이라는 방식으로 중간에 완충장치를 만들어 전국적 지지세의 영향력을 일정하게 차단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국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 펜실베니아 주의 제임스 윌슨은 직접선거를 제안했던 것에 반해, 남부 노예주의 이해를 대변한 버지니아주의 제임스 메디슨은 직접 선거제도가 인구수로 북부에 미치지 못하는 남부에 불리할 것으로 생각,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를 추진했던 것이다.

이는 연방체제 성립 과정에서 중대한 논쟁거리가 되었고, 직접선거를 통한 일반 민중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당대의 일부 상류계층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도 설명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발현이 이루어질 경우, 자신들의 특권적 지배체제에 도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만일 부시가 전국적 지지는 떨어지면서도 집권한다면 그 의미는 바로 이렇게 전국적 민의의 기초 위에 서있지 않은 정부의 수립도 가능하다는 실례가 우리 앞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배치되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전국적 민의의 총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서 심각한 모순을 본질적으로 안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제 이러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어떤 방식으로 미국이 풀어나갈 것인지 세계적인 관심거리이다.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갈등국면

미국인들이 자신의 정치제도에 대하여 확신이 흔들리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은 한편에서 보자면 정치적 위기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모순을 낳을 수밖에 없는 정치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미국의 헌법문제를 놓고 중대한 논쟁이 시작될 것을 예고해주고 있으며, 민의에 충실한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접근이 새롭게 요구될 것인지가 미국사회에서 매우 의미있는 논의의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정부의 지휘자가 누구인지 결정되지 못한 채, 정권교체의 과정이 혼미에 빠진 것은 미국으로서는 초유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민주, 공화 양당이 이토록 치열하게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독설과 격전을 벌이는 것 또한 남북 전쟁 이후 거의 처음으로 겪는 미국사회 내부의 거대한 정치적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어떤 방식으로 미국이 풀어나갈 것인지 우리 모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11월의 시기는 미국의 현대사에서 실로 막중한 의미를 지닌 정치의 계절임을 역사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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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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