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님, 150만명 허기 해결할
930억원을 그냥 버려둘 겁니까?"

OhmyNews연재: 이재용은 왜 출발선이 다른가 ②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 회계사의 공개편지 1

등록 2000.11.22 12:49수정 2000.12.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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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의 집중연재 둘째날---오마이뉴스는 11월 21일부터 30일간 삼성의 편법 세습의 진상과 그 책임을 묻는 기사 <이재용은 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른가>를 집중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참여연대와 함께 합니다. 뉴스게릴라와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와 동참 바랍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 회계사는 앞으로 2주간에 걸쳐 매일 국세청장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낼 예정입니다. 아래 편지는 그 첫번째입니다. ---편집자).



국세청장님 안녕하십니까?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 입니다.

지난 5월 23일, 국세청 회의실에서 만난 이래 6개월만인 것 같습니다. 당시 국세청장님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여 마치 '정의의 사자' 같았습니다. 다시 한번, 청장님의 그러한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부터 계속 편지를 올리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연재 첫째날: 더이상 국세청을 놔두지 않겠으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지난 4월 26일 제가 탈세제보한 사건과 관련하여 청장님과 법리적인 논쟁을 벌이고자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남들은 58,000원에 사는 주식을 총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단돈 7,150원에 살 수 있도록 한 사실이, 법리적으로 볼때 당연히 과세되어야 함은 청장님을 비롯하여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청장님의 눈앞을 가리고 있는 것은 '현실'이라는 장막입니다. 이 장막은 논리와 이성으로서는 걷히지 않습니다. 이 장막은 가슴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청장님과 가슴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장막은 논리와 이성으로 걷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누구나 자기만의 짐을 가지고 나온다고 합니다. 청장님의 짐은 무엇이고, 제 짐은 무엇일까요? 저마다 짐의 무게와 색깔이 다르겠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의 짐에는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청장님은 한평생을 세금과 함께 살아온 분입니다. 제가 볼 때, 세금은 중요한 나눔의 수단입니다. 나라에서 부자로 부터 많은 세금을 거두어 이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쓴다면, 매우 의미있는 나눔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라 잘사는 사람도 있고 못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노인,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청소년, 끼니 굶는 어린이는 없어야 합니다.

세금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청장님은 매우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 분이고, 한편으로는 하기에 따라서 많은 사람에게 베품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행복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세금은 나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많은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금은 '부자에게 많이 거두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많이 써야' 나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세금은 경제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오히려 '서민에게 많이 거두고 부자를 위해 많이 쓰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태어난게 재벌 아닙니까?

'부자에게 많이 거두지 못한' 세금의 직무유기에 대하여, 국세청은 법과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왔고, 저는 어느정도 일리있는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거 우리나라의 상속세법은 바보들이나 내는 '바보세' 라고 불리울 만큼 부자로부터 조롱을 받아 왔습니다. 약삭 빠른 재벌, 그 중에서도 가장 약은 삼성이 이 '바보세'에 걸려들리 없겠지요. 바보세 덕분에 삼성은 단돈 16억원의 세금만 내고 수조원의 재산을 이재용씨에게 물려주면서 경영권세습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삼성의 수많은 변칙증여중 단 한건이 우리에게 증거가 포착되었습니다. 이는 너무도 확실한 증거라서 비록 바보세라도 과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는건 뭐라고 변명하실 건가요? 이건 분명히 법과 제도의 문제는 아닙니다.


청장님,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졌습니다

지난 수십년간의 '서민에게 많이 거두고 부자를 위해 많이 쓴' 세금 덕분에 재벌이 태어났고, 운좋게 삼성 재벌가에서 태어난 30대 초반의 이재용씨는 자기힘으로 돈한푼 벌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수조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수조원은 누구의 피와 땀입니까?

국세청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삼성의 수많은 변칙증여중 확실히 꼬리잡힌 단 한건이라도 과세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탈세제보한 이 사건에 과세할 경우, 가산세까지 포함하여 약 930억원의 돈이 추가로 국고에 들어올 것입니다. 930억원이면 150만명의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일인당 62,000원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부자에게 62,000원은 하루 술값도 안되겠지만, 영세민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930억원이면 우리나라의 고아원과 양로원이 올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돈입니다. 청장님, 이 정도의 나눔의 역할도 거부하시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청장님은 독실한 천주교신자 이십니다. 모든 것을 텅비운 상태에서 기도하시며 영혼의 메아리를 들어보십시오. 장관자리에 대한 욕심, 삼성의 로비, 국회의원과 청와대에 대한 눈치, 이런 것들을 모두 비우시고 순수하게 영혼의 메아리를 들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신자에게는 하느님 말씀이 진리입니다. 진리에 대한 하느님 말씀을 듣는 순간,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순간 청장님은 이미 천국에 와 계신겁니다.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2000년 11월 22일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 종 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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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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