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기는 국세청 위의 나는 삼성

OhmyNews연재: 이재용은 왜 출발선이 다른가 ⑤

등록 2000.11.27 09:27수정 2000.12.1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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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의 집중연재 둘째주 첫째날---오마이뉴스는 11월 21일부터 4주간 삼성의 편법 세습의 진상과 그 책임을 묻는 기사 <이재용은 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른가>를 집중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참여연대와 함께 합니다. 뉴스게릴라와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와 동참 바랍니다.---편집자)


참여연대가 지난 4월26일 국세청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씨 등의 탈세를 제보한 지 7개월이 지난 오늘,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온 많은 국민들은 국세청을 주시하고 있다. 과연 국세청은 삼성SDS 사안에 대해 과세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국세청 문을 열었다.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나요?"
- 아뇨.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교육 갔다가 오늘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11월 25일 토요일 오전, 이재용 씨 탈세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국세청 4국1과장은 불청객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 요즘 참여연대 등에서 국세청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저도 곤혹스럽습니다. 오늘도 교육 갔다와서 회의 때 혼났습니다."
- 삼성SDS 사안에 대한 조사는 어느정도 진척된 겁니까.
"개별 납세자의 납세정보에 대해서는 비밀을 유지해야합니다. 국세청 전체가 무슨 말을 할 수 없습니다."
- 7개월이면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요.
"7개월이 아니라 8개월, 9개월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사할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제보가 들어왔다고 해도 한쪽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하고 법리적으로도 따져봐야하고…."
- 법리적으로 과세하는데 문제는 없습니까.
"과세한다 안한다에 대해 국세청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없습니다. 지그시 참고 기다려주십시오."

4국1과장은 삼성SDS 사안에 대해 아무런 뚜렷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연대 하승수 변호사는 국세청의 이런 태도 자체가 "변했다"고 말한다. 하 변호사는 지난 5월말 박원순 변호사, 윤종훈 회계사 등과 함께 삼성 탈세 제보건에 대해 안정남 국세청장과 면담했다. 당시 분위기를 한 변호사는 이렇게 전한다.

"녹음을 해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 국세청장의 태도는 요즘같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외압은 있을수 없다, 조속한 시일내에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단호했어요."



뛰는 국세청 위에 나는 삼성


사실 삼성과 국세청은 오랜동안 악연이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32) 씨가 95년 말부터 98년 말까지 아버지와 삼성그룹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약 4조의 재산을 얻기까지 국세청이 추징한 세금은 고작 16억이다. 증여세의 최고 세율이 40%임을 감안할 때 이재용 씨가 내야할 세금의 최대액은 단순계산으로 1조6천억. 하지만 당시 국세청은 그렇게 추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법적인 구멍과 그것을 잘 이용하는 삼성측 때문이었다.

세법을 주로 연구해온 최명근 교수(경희대 법대)는 "삼성은 세법의 허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들"이라며 "많은 세법 조항이 삼성이 처음 사용하고 다른 재산가들이 따라해서 그것을 막기위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현 교수(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는 "공익재단의 출연도 증여의제로 보고 과세한다는 조항은 예전 삼성 창업자 이병철에서 2세 이건희로 넘어갈 때 사용한 수법으로 생긴 조항"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1천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내걸고 '전국학생세금문예작품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성실납세의 소중함과 납세 도의심을 높이는 내용'. 허나 '1조6천억원'의 세금을 '16억원'으로 때우는 기막힌 수법이 재벌가의 비기(秘技)로 애용되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성실납세'를 요구할 것인가. 힘없는 서민들에게만?
이병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삼성과 국세청의 악연'을 세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잠시 두터운 세법을 펼쳐보자.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0조는 다음과 같다.

'[轉換社債利益에 대한 贈與擬制] ① 특수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전환사채를 취득한 경우로서 당해 전환사채의 취득가액과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교부받을 주식가액과의 차액에 대하여는 그 차액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특수관계에 있는 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

96년 12월 30일 만들어진 이 조항은 96년 초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씨 등 4남매에게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해 준 것이 주요 발단이 되어 생겨났다. 또한 1년 뒤인 97년 11월 10일에는 동법 시행령 '제31조 5 [新種社債 등에 대한 贈與擬制(신종사채 등에 대한 증여의제)]'를 신설, 전환사채(CB) 뿐 아니라 그 사촌 격인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 등도 증여로 인정, 증여세를 물릴 수 있게 법을 정비했다.

또 있다. 99년 12월 28일 신설된 '제41조의 3 [株式 또는 出資持分의 上場 등에 따른 利益의 贈與擬制(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상장 등에 따른 이익의 증여의제)]' 조항은 삼성 등 재벌 때문에 생긴 대표적인 조항이다. 국세청은 위헌시비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을 신설하여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싸게 넘겨준 직후 상장하는 방식에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법을 바꾼다.

하지만 모두 '뒷북'일 뿐이었다. 삼성그룹 일가는 법의 헛점을 파고들어 항상 앞서나갔고 국세청은 이미 일이 끝난 후에야 법을 정비하여 "이제부터 이 방법은 안통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한 법학과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삼성이 우리나라 세법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7개월의 조사기간에 담긴 의미

하지만 지금 참여연대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삼성SDS의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 이전에 있었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의 사안이 국세청으로서는 세법의 미비로 '과세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었다면, 삼성SDS는 법적 근거가 있는 99년 2월의 사안이다. 또한 이재용 씨가 주당 7천150원에 사들인 주식은 이미 시가 5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었다고 참여연대는 주장한다. 최명근 교수는 "장외거래의 증거가 확실하다면 법리적으로 과세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왜 7개월 이상 조사하고 있으면서 뚜렷한 발표를 하지 않고 있을까. 참여연대는 삼성 측의 끈질긴 로비를 의심하고 있다. 그 근거로 국세청 출신의 삼성사외이사 4명과 지난 7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의 독대를 들고있다. 한마디로 정치적이라는 말이다. 이부분에 대해 국세청 4국1과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참여연대에서는 국세청 출신 삼성사외이사를 통한 삼성의 로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국세청은 법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이에요. 요즘에는 직원들 하나하나가 다 생각이 있습니다. 혹 웃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국세청이 지금처럼 유지되지도 않아요."


"세무공무원은 입이 없다"

국세청은 과연 한국 최대의 재벌인 삼성에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사가 진행중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 기자들이 물어볼 때 검사가 흔히 하는 말이 "검사는 입이 없는 것 알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11월 25일 국세청 3층 과장실에서 4국1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민단체의 취지에 많은 공감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보받은 후 우리가 아직 공식적인 어떤 언급이 없는데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무슨 결과를 내놓은 후에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 이렇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삼성도 만만한 곳이 아닌데, 과연 국세청이 삼성에 'NO'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차 말하지 않았습니까. 한다고 이야기해도 안되고 안한다고 이야기해도 안되고. 세무공무원은 입이 없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주내에 국세청장과의 인터뷰를 공식적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집중연재-윤회계사의 공개편지
<11월22일>"국세청장님, 150만명 허기 해결할 930억원을 버릴겁니까?"
<11월23일>국세청앞의 변칙증여 규탄 "개미들의 절규 안들립니까?"
<11월24일>"국세청출신 사외이사들 때문입니까, 청장님?"
<11월27일>'작은 도둑' 봐준 말단 직원들이 항명한다면?
<11월28일>아버지가 빚갚을 땐 70만원, 아들이 사들일 땐 단돈 9천원
<11월29일>"비록, 언로가 막혔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가립니다"
<11월30일>"승소율 99%, 왜 머뭇거리십니까? '드림팀'이 돕겠습니다"
<12월 1일>마지막 편지 "더 이상 편지만 쓰지 않으렵니다"

오마이뉴스 집중연재 '이재용은 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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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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