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간 '카르텔 허물기'인가,
악의적인 '경쟁지 죽이기'인가

영남일보측, 매일신문 보도내용에 '발끈'

등록 2000.11.27 13:59수정 2000.11.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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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와 매일신문의 다툼이 결국 법정싸움으로 악화돼 독자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매일신문이 경쟁지의 법정관리 신청 기각을 계기로 지역에서 '언론독점화'를 진행하기 위해 공격적인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발언은 없고, 기사에만 있는 발언' 하지만 이것도 관행?

지난 21일 법정관리를 신청중인 영남일보가 허위보도를 이유로 매일신문에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중재신청을 언론중재위원회 대구중재부에 냈다. 언론중재위 한 관계자는 "10월 31일자 매일신문에 실린 '국감초점' 기사 중 자민련 김학원 의원의 국감질의 내용에 대한 부분이 허위보도라며 영남일보가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중재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매일신문 '국감초점' 기사 중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은 자민련 김학원 의원의 발언이 실제로 있었는가 이다. 당시 매일신문은 10월 31일 있었던 대구고등법원과 지방법원에 대한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와 관련해 '법사위소속인 김학원 의원이 "(영남일보의)매출액이 95년 이후 해마다 줄어드는 등 시장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며 언론의 법정관리가 결국 국영 언론화를 의미하고 법정관리를 수용할 경우 다른 군소 신문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르지 않겠느냐는 점등을 지적하고 법원의 입장을 물었다'는 내용을 실었다.

하지만 영남일보는 '매일신문의 김의원 발언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경쟁 신문사를 말살하려는 음모'라며 반발했다. 본 기자가 김의원의 비서관과 전화통화에서 확인한 결과 "국감 질의에 앞서 발언할 내용을 미리 준비한 자료에는 영남일보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의원님이 이후에 삭제하고 발언했다"며 영남일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서면질의서에도 영남일보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감초점' 기사를 쓴 매일신문 이 아무개 기자는 "(김의원의)질의내용에 영남일보의 법정관리 문제가 생략된 부분은 알고 있다"면서도 "당시 국감 일정상 보도자료에 의존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 대정부, 상임위 질문 등이 보도자료에 근거해 쓰이고 있고 이러한 관행은 매일신문뿐만 아니라 같은 석간신문인 영남일보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반문했다.

영남일보, '참을 만큼 참았다'


영남일보가 발끈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국감초점'기사에 한정돼 있지 않다. 영남일보 기자들 사이에는 매일신문의 '영남일보 죽이기'에 참을 만큼 참았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남일보는 11월 22일자 신문 2면 하단광고에 영남일보 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 노동조합 공동명의로 된 '독자여러분께 영남일보 실상을 알립니다'라는 글을 내보냈다. 이 글에서 비대위쪽은 영남일보의 법정관리 신청-기각과 관련해 "영남일보가 적지 않은 부채와 경영실책으로 위기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제하고 하지만 "기업으로서의 영남일보와 언론으로서의 영남일보는 분명 구별된다"라고 주장했다.


또 "영남일보의 경영상의 위기를 기화로 일부 언론이 시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호도하고 있다. 특히 영남일보의 경쟁지는 천박한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악의적으로 영남일보 파산 운운하며, 이를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며 매일신문을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영남일보 노조의 한 간부는 "동종 업종간에 추태로 비쳐질까 우려돼 함부로 발언할 수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연일 이어지고 있던 매일신문의 보도가 "영남일보를 말살하려는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매일신문의 '언론사 카르텔 허물기'?

영남일보에 대한 매일신문의 보도가 영남일보 쪽의 주장처럼 악의적인가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쉽게 매일신문이 '언론사 카르텔'을 깨고 있다고 고집하기도 쉽지 않다.

매일신문은 (주)영남일보가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 전인 올해 8월 25일자에 '영남일보 임금 40억 체불'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법정관리 신청을 한 10월 27일 '영남일보 자본잠식 743억원'이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영남일보 관련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논란을 빚고 있는 '국감초점' 기사 외에도 10월 27일자 기사 '언론사 법정관리 찬반양론', '군소 언론사를 모두 국영화 할 작정인가' 그리고 법정관리가 법원에서 기각되고 난 후 보도한 11월 20일자 '법정관리 노리던 타사도 영향', '영남일보 갱생 가능성 없다' 등 매일신문의 영남일보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남달랐다.

매일신문의 한 기자는 "언론사로서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하고 영남일보에 대한 기사보도 또한 특별히 악의적이라기보다는 영남일보의 실상을 알려내는 것이 언론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악의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여전한 보도'관행'이 의미 퇴색시켜

반면 일부에서는 '매일신문이 영남일보 재생불가능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남일보는 지난 20일 법정관리 신청이 기각됐지만 아직 항소라는 절차가 남아 있고, 이러한 항소가 받아들여지는 것에 따라 영남일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매일신문이 너무 지나치다'고 반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사의 내용과 비중을 뒤로 미루더라도 지금의 매일신문의 모습이 영남일보 '죽이기'라는 심증을 굳히게 하는 것은 매일신문에 대한 인식이 '언론 개혁적'이 못했다는 데 있다.

대구참여연대 언론모니터팀 허미옥 팀장은 "매일신문이 보여왔던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언론사간 카르텔 허물기라는 주장에 무게를 더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영남일보 사태를 이용해 경쟁지에 상대적인 우위에 있는 힘을 과시하며 지역언론사의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행보가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지역언론사, 보도 관행부터 깨어야

특히, 이번에 언론중재위의 '도마'에까지 오른 '국감초점' 기사에서 보듯이 언론사의 보도관행이 그 사안의 진실여부를 떠나 작위적이라는 지적을 면키는 어렵다. 허미옥 팀장은 "전남일보 한 기자의 논문에 의하면 출입처를 가지고 있는 기자들의 보도자료 의존 비중이 90%를 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사안의 경우 사후취재를 반드시 해야 하며 오보된 것이 있다면 솔직히 정정 보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의 다툼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지역언론사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숙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매일-영남의 다툼은 지금까지 보도관행과 지역 정론지로서 거듭나기를 모색할 때만이 '경쟁지 죽이기'라는 오명을 벗고 언론사간 '카르텔 허물기'라는 대의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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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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