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뭉크> 그는 뭉클하다!

글과 그림으로 뭉크를 만날 수 있는 기회

등록 2000.11.27 16:27수정 2000.11.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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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교 1학년때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압구정동 카페의 이름은 <뭉크>였다. 이 카페는 꽤 트렌디한 곳이었는데, 그 당시 탤런트 오연수 씨가 출연하는 KBS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을 했었다. 지금도 <뭉크>라는 이름 그대로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뭉크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보시던 미술책에 뭉크라는 화가가 있다는 걸 알고서 꽤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고, '절규'라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밖에는 딱히 그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좋았다. 어쩌면 그보다 '절규'라는 그림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그림을 보면 편안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이 나 대신 절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1997년, 회사에 입사한 후, 6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났을 때, 같은 부서의 직원으로부터 열화당에서 출판된 핸드북 사이즈의 책 <에드바르트 뭉크>를 선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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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바르트 뭉크. 1912
ⓒ 뭉크
그리고 며칠 전, 광화문의 조그만 참새구이집 '소조(燒鳥)'에서 선배 한 명과 후배 한 명, 이렇게 셋이 좁은 바(Bar)에 털썩 앉아서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선배의 아는 분이 정종 한 잔을 하려고 들렸다. 시간이 이미 자정을 넘은지라 정종은 못 하고, 그 분은 술 취한 두 여자에게 책 <뭉크뭉크> 두 권만 빼앗기고 나갔다. 이미 뭉크에 관한 책 한 권을 가지고 있던 터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책표지 '마돈나'의 마력에 빠져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열화당의 책 <에드바르트 뭉크>가 뭉크의 그림을 설명하고 뭉크의 삶을 다룬 그림책이라면, 다빈치출판사의 <뭉크뭉크>는 뭉크의 미공개 일기와 그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구스타프 쉬플러에게 뭉크가 보낸 편지를 선별하여 엮은 그림책이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면, 후자는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책꽂이에 함께 꽂혀 있다. 아마도 이 두 책이 접하는 부분에 뭉크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이 숨겨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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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 1894
ⓒ 뭉크
뭉크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적 갈등과 불안, 공포, 애정, 아름다움 등의 감정을 격렬적이고 정열적인 색과 왜곡된 선으로 표현한 새로운 미술운동의 선구자이다. 20세기 초 '표현주의'라 이름 붙여진 유럽 미술의 흐름에 뭉크는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미혼이었다. 예술가는 혼자 살아야 된다는 어느 예술가 어머니의 한마디가 오른쪽 뇌를 붉게 스친다. 그는 예술가치고 꽤 오래도 살았다. 81년. 그 긴 삶을 통해 그는 생의 과업이던 '생의 프리즈(The Frieze of Life)' 연작 속에서 그의 불안과 절망, 고통과 사랑, 무엇보다 죽음을 그려나갔다. '생의 프리즈'는 그의 그림 속에서 표현되지만, 무엇보다 그의 삶 자체가 또 하나의 '프리즈'였다.


뭉크는 아름다운 것만을 그린 화가가 아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린 화가가 아니다. 그는 인간, 살아 있는 인간의 모든 것을 그리려 노력했으며, 그가 본 것을 그린 화가였다.

살아 있는 인간의 삶, 그것을 즐거움과 슬픔으로만 이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그림은 대체적으로 이분되어 있다. '라파예트 거리', '칼 요한 거리의 봄날', '소년소녀들과 오리', '질주하는 말' 등의 그림이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면, '절규', '절망', '멜랑콜리', '병실에서의 죽음' 등은 어둡고 차가운 느낌, 즉 슬픔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뭇 사람들이 뭉크를 '사랑과 질투, 죽음과 슬픔, 신비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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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1894
ⓒ 뭉크
그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 자신이 병마에 시달리며 자랐다. 그런 그에게 질병과 죽음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예술적인 모티브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어두운 어린 시절, 청, 장년기의 보헤미안적 생활, 불안한 사고, 다른 예술가들과의 폭 넓은 교류, 독특한 여성관, 편집증, 이런 모든 요소들 자체가 하나의 '예술 프리즈'로서 뭉크의 그림 속에 배어 있다.

특히 뭉크가 광적으로 집착했던 '불안'에 대한 그의 접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안정적으로 다가온다. 왜일까? 인간의 영혼은 '안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뭉크는 '불안'을 노래했다. 보통사람은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불안'과 '공포'의 중압감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소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근대사회가 맑스의 말대로 '무정한 사회'라면, 그 근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불안'은 오히려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절규'한다. 무정한 사회에 아름답기만 한 그림은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적이고 더 인간적인 그림들이 더 가깝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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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절망.1892 / (오른쪽)절규.1893
ⓒ 뭉크

뭉크는 한국에서 꽤 인기가 높다. 그의 어두운 정서가 한국인의 억눌린 감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미술책들은 어렵다. 그러나 <뭉크뭉크>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도, 어떤 느낌도 주지 않는 그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뭉크뭉크>에 나오는 뭉크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덧붙이는 글 | # 프리즈란?
그리스나 로마 건축에서 기둥과 지붕 사이의 조각이나 문양으로 장식된 긴 띠 부분을 말한다.

덧붙이는 글 # 프리즈란?
그리스나 로마 건축에서 기둥과 지붕 사이의 조각이나 문양으로 장식된 긴 띠 부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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