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당> 새로 문연 아늑한 헌책방

명지대학교 앞에서 찾아가는 헌책방

등록 2000.12.10 20:34수정 2000.12.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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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에서 찾아가는 길

명지대 앞에 헌책방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는 지난 10월 끝머리에 홍제동 <대양서점> 아저씨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명지대 가는 길을 잘 알지 못해서 한동안 머뭇머뭇했는데 통신모임 게시판에 소개글을 올려 주신 분이 있어서 그 글을 보며 명지대 앞까지 찾아갔지요. 그러나 그 분은 명지대학교를 다니는 분이라 그런지 처음 명지대 앞을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무척 헷갈리거나 알기 어렵게 말씀을 해 주셨더군요. 사실 그래서 저도 조금 헤맸습니다.

서울에서 시내버스로 50, 59, 73, 74, 542, 543번이 다닙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마을버스 440번이 다니고요. 여기서 440, 542, 543번은 명지대 앞이 마지막 정류장이라 첫걸음을 떼는 분들은 기사분에게 `종점에서 내려달라'고 말씀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겠습니다.

정류장이름은 `명지대 앞'이니까, 안내방송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찾아가세요. 먼저 명지대학교 앞에서 내렸다면 명지대를 왼쪽으로 끼고 곧장 걸어가세요. `백련사' 쪽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백련사는 저 멀리 있고 우리가 가려는 헌책방은 명지대 높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15미터 앞 즈음에 있습니다.

신촌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신 분들은 버스에서 내린 길을 따라 그대로 곧바로 걸어가다가 건널목만 건너면 되지요. 그렇게 조금 걸으며 왼편 길 건너에 `왕김밥' 가게가 보이면 길을 건너세요. 그리고 거기서 바로 15미터 앞에서 헌책방 <문우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문창과 얘들이 많이 오지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학교 수업이 다 끝났을 무렵에 찾아갔는데 대학생으로 뵈는 이는 아무도 책방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학교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발길이 좀 뜸하다 싶더군요. 어쩌면 문을 연 지 이제 고작 한 달이 조금 지났으니 잘 몰라서 오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명지대에서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문창과 학생들은 이듬해 학교신문이 새로 나올 때 첫 호에 이곳 헌책방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실어 새내기를 비롯해 같은 대학교를 다니는 이들이 자주 찾도록 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오래된 어린이책이 한두 상자 나가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가물에 콩나듯 보기드물어진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그러는 한편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말자' 하고 생각하며 찾아갔습니다.

조촐한 찻집 분위기가 나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닥은 나무바닥입니다. 참말로 이곳은 찻집이나 옷가게였던 곳이었나 봅니다. 어쨌든 책방이 나무바닥으로 되어 있으니 느낌이 사뭇 다르더군요. 늘 시멘트바닥으로 된 곳만 다니다 보니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저씨에게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드리고-처음 뵈었지만 인사는 하면 좋죠-나무바닥을 살포시 느끼며 책장을 휘 둘러봅니다. 문연 지 한 달밖에 되지 않기에 책장은 많이 짜놓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바로 왼편에는 `손안에책(문고판)'으로 된 어린이책을 놓았고 맞은편에는 철지난 추리소설들이 있네요.

왼편과 오른편은 종교, 인문과학, 문학... 이렇게 책장을 줄줄이 채워나가다 왼편은 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사전을 꽂아두었고 오른편은 30해 넘게 묵은 책들을 꽂아두었습니다. 왼편 책장 꼭대기에는 고전이라고 하는 우리 나라 옛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두 줄로 올려 놓으셨네요. 부모를 벙어리로 둔 남자를 사랑하지만 여자 집안에서 장애인이 부모인 집안과 사귀는 걸 반대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종>이 눈에 띕니다.

학원명작선집

`학원 김익달' 스승이 한 일은 참 많습니다. 백과사전이라든지 청소년 잡지라든지 돈없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대준 일이라든지... 지금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는 `학원 장학회' 출신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지금까지도 밝은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김근태 국회의원도 학원 장학회 출신이지요- 안타깝게 어두운 구석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지요.

초창기 학원 장학금을 받았을 사람들이 즐겨 보지 않았을까 싶은 `학원명작선집'이 여덟 권 눈에 들어옵니다. 1956년에 나온 <박계주-날개 잃은 천사>부터 1965년에 나온 <장수철-휘파람을 부는 소년>까지 여덟 권을 챙깁니다. <이원수-민들레의 노래(1961)> <마해송-비둘기가 돌아온다면(1963)> <박계주-마적골의 소년(1963)> <김내성-황금 박쥐(1958)> <강소천-그리운 메아리(1963)> <박용구-먹장구름을 뚫고(1963)> 들. 4

0년대 끝머리에서 50년대 첫머리 아이들에게 반가운 책이었을 녀석을 손에 쥐며 지난날 아이들이 가졌을 느낌을 떠올려봅니다. 책이 귀하던 때 사람들은 이 책 한 권 한 권을 사서 보기도 힘들었을 테니 빌려서 보려고 무던히도 설움도 받고 힘들었겠지...

<학생중앙> 78년 12월호를 보니 만화가 이두호 씨가 그린 <뿌리> 마지막회가 실려 있습니다. 알렉스 헤일리 씨가 쓴 이야기 <뿌리>를 이두호 씨가 그려서 <학생중앙>이란 곳에 실었다는 사실을 알고 좀 놀랐습니다. 뒷날 <하이틴>으로 탈바꿈한 이 녀석은 70년대엔 그래도 퍽 문화수준을 갖춘 잡지였음을 보여 주니까요.

<강소천 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1961)>도 보고 1982년에 나왔다는 `마산 완월국민학교' 어느 여자아이 문집을 봅니다.

때려잡자 공산당을 일기에 쓴 어린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빠에게 북한과 한국의 축구시합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여쭤 보았더니 우리가 2:1로 이겼다고 하셨다. 참 기뻤다...지고 돌아가는 북한 선수들의 울고 가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북한에 돌아가면 필시 죽도록 심한 노동을 할 신세들이다. 한 민족끼리 서로 대결을 하고 또 지고 간 북한 선수들의 불쌍한 처지, 모두가 우리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이긴 것이 여간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시합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시합이며 공산당놈들과 우리 국민들의 시합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기를 아이들이 쓰고 교사가 지도하고 교장이 칭찬하고 교육감이 좋은 학생이라며 문집을 내도록 뒷배(후원)하던 때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18해. `한 민족'이란 말을 하다가도 `공산당놈들'이란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어린이. 이 어린이는 자라서 또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배웠을까요. 우리 시대가 낳은 아픔이라지만 너무도 생생하여 그냥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재미있고 알기 쉬운 음악이야기, 용문사(1967)>를 보니 `음악 이야기'가 온통 서양음악뿐입니다. 우리네 음악 이야기는 한두 줄 있을까 말까 한 책. 이런 책도 참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골방 마루바닥에 새긴 시

<꿈을 비는 마음(1978)>은 늦봄 문익환 스승 첫 시모음입니다. 이 책은 늦봄이 전 태일 열사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통일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뛰어들다가 붙잡혀 옥살이를 하게 되면서 나온 시모음이죠.

열화당에서 나온 사진문고 <서대문 형무소>를 보면 차디찬 마룻바닥 옥 안에 갇힌 이들이 바닥을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서 장기판이나 고누판을 만든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늦봄 스승은 날카로운 것이 없어서 맨손으로 마룻바닥을 파서 절절한 마음을 기록했고 그 절절한 마음이 뒷날 <꿈을 비는 마음>이란 시로 태어났지요.

"이 한 권의 시집은 책장이나 장식하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다. 이 한 권 시집은 일하는 일꾼들의 땀으로 흠뻑 젖어야 하며 인간적 삶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핏방울에 얼룩지고...<펴낸이 말>" 하고 적습니다. 그렇지요. 책은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 손'에 쥐어져 제대로 곰삭여지고 다시 꽃피어나야 합니다.

우리 문단에 남긴 일은 많지만 다른 이에 견줘 썩 잘 알려지지 못한 이주홍 스승 책 <조개껍질과의 대화, 성문각(1961)> <아버지, 홍성사(1982)>도 봅니다. 1974년에 나온 <김정한소설선, 창비>과 1979년에 나온 <현기영-순이삼촌, 창비>도 보고요.

정년퇴임하고 뭐 할 일이 있나

"이것 좀 봐요. 책이 좋지 않으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어요?" 하며 책 더께와 먼지로 하얗게 되고 더러워진 손을 보여 주십니다. 털털하게 웃으면서 책이 좋으니 정년퇴임하고나서 뭐 할 일도 없고 해서 헌책방을 여셨답니다. 책방에 꺼내놓은 책들 가운데는 당신이 보던 책들도 많을 텐데 이제는 공부하고 자라나는 뒷세대가 볼 책이라고 여기시지 않나 합니다.

1970년대 여성잡지 뭉텅이를 가리키며 "저것들도 그 동안 버리지 않고 다 모아 두었지. 사실 우리 어렸을 적에 만화책이나 잡지들을 누가 다 보관했나? 그냥 보고 다 버렸지... 요즘은 만화 가짓수가 많이 늘었지만 그것들도 다 보고 버리는 것들이잖아... 그것도 30년이 지나면 귀해질 테지" 하십니다.

저도 어릴 적에 <소년중앙>은 거의 달마다 빼놓지 않고 용돈 아껴가며 사보고 모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한 해에 한두 번씩 형과 제가 학교간 사이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쓰레기통까지 가져다가 버리시곤 했죠. 어머니로서는 그저 한 번 보고 버릴 것들을 왜 자꾸 사시나 했고-가난해서 비좁은 집에 그런 허접한 책이 쌓이는 꼴을 보지 못하시기도 했을 겁니다- 공부나 할 것이지 하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책들도 지금 와서는 한 시대를 되새기고 담아내는 값진 자료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82년에 나온 <학생중앙>을 보면 처음 열린 프로야구에 발맞춰 야구만화도 담고 있는데, 이 야구만화들은 뒷날 만화평론가들이 일본만화를 베낀 것임을 밝혀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때 어린 아이들이 그런 걸 알았겠습니까.

아이엠에프 시대라 하지만

아이엠에프 시대고 사람들 주머니가 더 가벼워지며 책을 사 보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정년퇴임해서 할 일도 없겠다 싶으신 분도 많고요. 사실 교사들 정년퇴임 햇수가 두어 해 줄며 아우성이 많습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 교수도 마찬가지죠. 그 분들도 정년퇴임하고나서 이렇게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자그맣게 헌책방을 꾸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문우당> 아저씨는 "옛날엔 골목마다 자그맣긴 해도 (헌)책방들이 줄줄이 있었는데... 책을 안 보니 책방도 많이 줄고..." 합니다. 오랜동안 학자로 일하신 분들은 정년퇴임을 하고나서도 자기 학문을 갈고닦을 수 있지만 오랜동안 고단하게 일해서 지치신 분들은 이런저런 책도 두루 보고 이런저런 책도 애써 찾으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헌책방을 열고 책손님을 맞이해 이야기 손님도 만나고 책도 팔고사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문화를 바라보는 정부 정책이 없긴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하나씩 자그맣게 만들어나가는 책 문화야말로 참말로 튼튼하고 알찬 문화일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명지대 옆 문우당> 02) 372-9145 / 017-229-5745
 - 14시에 문을 열어 22시까지 엽니다. 주말에도 문을 열고요

* <문우당>을 찾아가서 산 책이 꽤 많기에 다른 책들 소개와 함께 다른 이야기를 다음 기사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

덧붙이는 글 <명지대 옆 문우당> 02) 372-9145 / 017-229-5745
 - 14시에 문을 열어 22시까지 엽니다. 주말에도 문을 열고요

* <문우당>을 찾아가서 산 책이 꽤 많기에 다른 책들 소개와 함께 다른 이야기를 다음 기사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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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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