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걸레 들고 출근 그후

대구 D중학교 '청소사건'으로 보는 교육행정

등록 2000.12.26 02:38수정 2001.01.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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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즐기던 대구 D중학교 장명재(48) 교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월요일 8시까지 출근하고 출근시 걸레를 가지고 오시오."

학교에 급박한 사안이 터졌을 때나 이용되는 비상연락망을 통해 걸려온 전화치고는 상식밖의 내용이었다.
'웬 걸레...?'
장 교사의 뇌리엔 이내 의아함이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한 장 교사는 어처구니 없는 풍경을 접해야 했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일찍 등교한 학생들은 학교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또 교사들도 직접 나서 청소를 거들고 있었다.

당시 이 학교 1, 2학년의 기말고사 일정까지 미루자는 제안이 나올 만큼 청소가 다급했던 D중학교의 사연은 무엇일까?

일명 'D중학교 청소사건(?)'으로 불리는 이번 '소란'은 시교육청 한 간부가 던진 한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됐다. 장 교사가 비상연락망을 통해 '걸레 출근'을 지시 받은 3일, 이 학교에선 대구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2001년 초등학교 임용고사'가 있었다.

당시 시험감독 차원에서 D중학교를 방문했던 시교육청 정아무개 교육국장은 "청소상태가 불량하다. 청소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교육감이 직접 학교를 방문할 것"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이 한마디의 말에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4일 기말고사 시험일정을 미루고라도 아침부터 청소하자는 계획은 일선교사들의 반발로 사라졌지만 이 학교 1500여명의 학생과 60명의 교사들은 시험을 마치자마자 학교 건물 곳곳을 윤이 나도록 닦아야 했다.


결국 이날 교육감의 방문은 없었다. 하지만 예정대로 '청소점검'은 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 동부교육청 교육장 등 교육청 관계자 5명이 입회한 가운데 약 한시간 가량 '관리실태 점검'이 있었다. 결국 D중학교는 40여 개에 달하는 관리실태를 지적 받는 것으로 '청소사건'은 끝을 맺었다.

이번 'D중학교 청소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립해 있다. 우선 교육청 한 관계자는 "교육청 어르신들이 평소 D중학교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복무관리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단순히 일각에서 이야기하듯 '청소점검'이 아니라 전반적인 학교관리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이번 'D중학교 청소사건'이 각종 인터넷에 회자되고 일선 교사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전제하고 "일선학교의 실태를 세심하게 파악하기 위한 배려있는 조처였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 교사를 비롯한 일선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교육청의 행위가 지나쳤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시교육청 홈페이지 등에 직접 글을 올려 교육청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장명재 교사는 "개교 42주년을 맞는 학교에 대한 현실적인 상황은 고려하지 못한 채 한 학교를 꼬투리 잡기 식으로 청소상태를 점검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안은 단순히 청소점검의 문제를 넘어 교육청 관료들의 권위주의 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선교사들이 무엇보다 문제삼는 부분은 이번 관리실태 점검이 비교육적이며 권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다.

특히 수업시간 중에 있었던 이날 관리실태 점검에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육청 관계자들이 일일히 교사들을 부리며 청소상태를 점검케 해 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교사들의 수치심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또 '교실 내 게시판 테두리 나무의 도색이 벗겨짐', '컴퓨터 자판에 먼지가 많고 때가 있음', '화장실 바닥에 물기로 발자국이 생겨 미관상 좋지 않음'등 군대에나 있을 법한 점호식 점검이 지나쳤다는 점등이 비난을 받고 있다.

또 D중학교는 시교육청 건물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어 교육청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 때 출입하는 차량의 주차가 빈번해 수업방해를 받는가 하면, 각종 흙먼지 등이 자주 발생해 청소관리에 더욱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을 고려하지 못한 채 지적만 있는 교육청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지적이다.

4일 이후 D중학교는 40여 개에 이르는 관리실태 조사결과에 맞춰 그 후 일주일이 넘게 학생과 교사들이 매달려 매일 방과후 대청소를 실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이러한 비난 외에도 일각에선 '교육청의 D중학교 죽이기'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D중학교의 한 교사는 "(이번 청소사건) 교육청내의 알력 다툼의 결과, 또 전교조 지회원이 많은 D중학교에 대한 길들이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장 교사는 "물론 교사들이 관리를 평소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 "교사들도 학교시설 관리에 대해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친 교육청의 행태에 대해서도 교육청이 사과하고 새로운 권위주의적인 행정을 버리는 것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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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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