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는 청소년이 없다

세밑 인터넷방과 주점 등을 돌아보니...

등록 2000.12.29 12:03수정 2000.12.2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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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6일과 27일 청주의 밤에는 청소년도 없었고 대한민국도 없었다.

밤 11시께 청주시 내덕동 ㄱ 인터넷방.

중고생들로 보이는 10대들이 30개 정도의 PC를 거의 다 차지하고 한켠에서는 정복을 입은 의무경찰 세명이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요즘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3인조 여성그룹의 노래가 귀청을 떨어져 나갈만큼 울려 퍼지는 PC방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쉴새없이 뿜어내는 담배연기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입구 계산대 위에는 이같은 풍경을 비웃듯 커다란 글씨로 '18세 이하 미성년자 오후 10시 이후 출입금지…우리 업소는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지 않습니다…'등의 문구가 선명하게 아크릴 판에 새겨져 있다.

간신히 찾은 빈자리에는 컴퓨터를 켜자 화면에는 누군가가 보고 미처 없애지 못한 채 급히 나간 흔적을 나타내듯 해외 포르노 영상이 선명하게 떠 올랐다.

바로 이웃한 자리에는 청소년이란 말도 하기 어려운 초등학교 3학년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마우스를 꼭 움켜쥔 채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간간히 흘러 나오는 소리는 고스톱을 할 때 외치는 말들 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기계음이 들리더니 의무경찰 세명이 황급히 인터넷방을 뛰쳐나갔다.

아마도 야간순찰을 돌다 매서운 추위를 잊기 위해 잠시 이곳을 들렀다가 파출소로부터 긴급한 호출을 듣고 나가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인터넷방을 나서며 청소년들이 무엇을 하고 있나 슬쩍 바라보니 음란물이나 도박게임등을 올려놓고 시선을 떼지 못하거나 혹은 채팅에 열중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간, 청주시 사천동 한 호프집.

호프집이라는 말과는 맞지않게 오히려 소주를 더욱 많이 팔고 있는 8개의 테이블이 있는 이 곳에는 일부 10대 청소년들을 비유해 말하는 '깻잎머리'와 그 오빠들이 절반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의 그들은 벌써 몇잔 술이 들어갔는지 목소리가 상당히 높아지며 정상적인 말보다는 욕설을 연신 담배 연기와 함께 던졌다.

목소리가 높아진 아이들의 대화에는 누가 누구를 사귄다, 연예인 누가 어떻더라, 채팅을 통해 누구를 만났다, 누구 재수없다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음란한 대화들의 연속이었다.

지난 97년 제정돼 몇차례 개정된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과 청소년이 유해한 업소에 출입하는 것등을 규제하고, 청소년을 청소년폭력 · 학대 등 청소년유해행위를 포함한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 · 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그러나 2000년 12월 26일과 27일 한시적이나마 청주에는 청소년이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법으로 드러났다.

비록 군 복무를 대신해 들어선 길이라지만 법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의무경찰이 단속을 하지 않고, 업소 주인은 경고문안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하는 것은 이들이 지켜야할 법적 대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청주시 운천동에서 인터넷방을 운영하는 G모(40) 씨는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야간에 이용할 경우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부모를 동반해 입장 허가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전화를 통해 동의했다는 연락이 많다"면서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것은 비교적 엄격히 금하지만 몰래 흡연을 하거나 음란물을 보는 것은 사실상 규제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G씨는 "재떨이를 구비하지 않고 철저한 금연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인근 인터넷방에 비해 수익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는 말을 전하며 경영상 어쩔 수 없이 탈법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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