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인도주의? 속이지만 마세요

<미국 사는 이야기 34>

등록 2001.01.11 13:44수정 2001.01.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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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차베스. 린다 차베스.
벌써 며칠째 뉴스는 시간마다 온통 린다 차베스로 채우더니 결국 린다 차베스는 노동부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린다 차베스가 누구냐 하면 부시가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이.


그녀가 불법체류자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민주당과 미국 산별 노조는 '그것 참 잘 됐네'하며 이 사실을 물고 늘어졌고 언론은 연일 린다 차베스 이름을 불러댔거든.

구타 당하고 갈 곳조차 없는 불법체류자, 과테말라 여성을 집에 두고 집안 일을 거들게 한 것이 화근이 됐지. 91년부터 92년 사이에 그랬다는데 린다 차베스는 그녀에게 1500 달러를 주었다네. 노동자 최소 임금 보장과 소수계 우대조치에 반대했던 전력 때문에 민주당과 미국 산별 노조의 미움을 샀다는 거야.

반대자들은 불법체류자를 불법으로 고용했으니 법을 어긴 이가 어떻게 노동부 장관을 맡을 수 있느냐는 거고 불법체류자인지 몰랐다고 했던 차베스는 결국 그녀가 불법체류자인 걸로 짐작은 했다고 고백했지만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아니었다고 하더군. 그 여자 처지가 너무 불쌍해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돌봐주었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차베스는 민주당과 산별노조의 '꼬투리잡기' 전법을 비난했고.

오늘 내가 린다 차베스 얘길 꺼내는 거는 처음부터 쉽지 않은 부시행정부 출범을 놓고 빚어지는 미국의 정치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야.
법을 따를 것인가. 인도주의를 따를 것인가.

여기 살다 보면 린다 차베스처럼 그걸 고민해야 할 때가 많다. 왜냐면 불법체류자들은 갈수록 늘고 이들의 처지는 정말 안쓰러울 때가 더 많으니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말하며 일자리를 달라고 하면 고용주들은 이들을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고 난처한 일이겠지.


그런데, 어떤 고용주들은 불법체류자들이 늘어나는 걸 속으로 은근히 좋아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미끼삼아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거나 노동 착취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들 눈물 빼는 예도 종종 있으니까. 지금 여기 한인사회도 불법체류자 문제로 시끌시끌해.

미 의회가 불법체류자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을 한시적으로 만들어 놓았거든. 바로 지난달에 미 의회를 통과한 이민법 제 245조(i)를 말하는 거야. 그동안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에 묶여 가슴 앓던 이들 중에 사면 대상자들은 10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오는 4월 전에 수속을 하면 합법적인 신분으로 바뀔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막아도 불법체류자들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사실 불법체류자들의 값싼 노동력이 미국 경제를 굴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게 아니니 미국이 이들을 사면해 주는 건 꿩 먹고 알 먹는 것이다. 이들의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인도주의적이라는 말도 들을 수 있으니까. 거기다 한사람 당 벌금이 1000 달러니 국고도 늘어날 테고.

하여간 이민법 245조(i) 때문에 IMF 이후 밀려든 한인 불법체류자들도 지금이 기회라고 변호사 사무실로 몰려들고 있대.
"우리 사무실을 찾아오는 이들이 세 배가 늘었어요. 전화문의는 말할 것도 없구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이웃집 아줌마 말이다.

"근데, 정말 조심해야 돼요. 법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신문에 매일 나오는 데도 내용은 저마다 다르니 도대체 어떤 게 맞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혹시 주위에 불법체류자 있으면 제발 먼저 잘 알아보고 신청하라고 그러세요."
맞는 말이다. 한동안 신문마다 이민법 245조(i)를 다루더니 요새는 또 이민 사기 조심하라구 거의 매일같이 경고다.

영주권을 고용주가 '내 주는'게 아닌데, 사실 고용주는 자기 필요에 의해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면서도 자기가 선심 써서 내 주는 것처럼 생색내며 노동착취 하는 사례가 종종 있거든. 또 영주권 내주겠다고 스폰서 서주는 대신 몇 만 불의 돈을 요구하며 불법체류자들에게 접근하는 예도 있고.

영주권이 뭔지, 그 영주권 때문에 발 동동 구르는 사람들. 4월은 금방 다가오겠지. 제발. 인도주의 정신은커녕 영주권 내주겠다고 사람 속이는 일 없기를. 교회마저 영주권 내 주고는 뒷돈 요구해 가슴 아픈 일 만들지 말기를.

그리고, 혹시 한국 상황 어렵다고 무조건 미국 가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사람들 있니?
제발 말려라. '불법체류자'라는 거 때문에 그것도 동포들한테 억울하게 당하고 기약도 없이 수년씩 두고 온 가족들 그리며 한숨만 키우고 맘 썩는 사람들 여기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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