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웬 풍물소리?

최첨단 디지털기기로 새봄을 여는 국악방송

등록 2001.02.26 20:20수정 2001.02.26 21:48
0
원고료로 응원
라디오를 듣기 위해 전원을 넣고 여기저기 채널을 맞춰본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풍물굿 소리. 아니 라디오에서 왠 풍물굿 소리? 한참 자지러지게 풍물굿 소리가 나오더니 이젠 걸쭉한 판소리 "흥보가"의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이 나온다. "불붙는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박고, 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애 밴 부인은 배를 차고."

KBS 제1FM방송? 그러나 지금은 국악방송이 나올 시간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라디오 방송 중 유일하게 국악을 들려주는 곳이 KBS 제1FM인데 그나마도 좋은 시간대는 없다. 주파수 99.1MHz. 그럼 분명 아닌데.


바로 이 방송이 우리문화 우리소리를 표방하고 새봄에 새롭게 개국하는 재단법인 <국악방송(이사장 윤미용ㆍ국립국악원장 겸임)>이다. 국립국악원 내의 국립박물관 2층에 국악방송이 있다. 지난 금요일(2. 23)에 이 국악방송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채치성 편성팀장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이윤경 편성부장과 같이 진행되었다.

-먼저 국악방송을 열게 된 배경과 의미를 말씀해주시죠.

해방이후 수십 년 간 우리는 학교음악시간에서 국악교육을 멀리한 결과로 국악의 생활화·대중화에 완전히 실패하였으며 이어서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범람은 국악을 들을 수 있는 바탕마저 완전히 점령되고만 것이 그동안의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국악문화 복구에 대한 긴급성을 인정하여 그 대책의 일환으로 국악전문방송국 설립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의 국악교육이 괄목할만한 성과가 있었지만 교육을 해야할 교사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다양한 공연, 강습이 있지만 수혜를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일반 대중이 국악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리가 흔히 낯가림을 이야기하지만 귀가림도 있다고 합니다. 서양음악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에게 낯설지 않게 접근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라디오방송일 겁니다. 즉 어쩌다가 아닌 늘 국악을 접할 수만 있다면 몰라서, 낯설어서 느끼는 일반인들의 귀가림은 해소될 것이고, 이에 따라 대중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국악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편성팀장님은 일반인들에게 라디오 국악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꽃분네야" 등 창작국악의 작곡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국악방송의 설립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국악을 생활화, 대중화시켜야 한다는 국악에 대한 사명감 때문입니다. `국악의 생활화'는 음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어떤 타이틀로 건 국악과 30년 가까운 인연을 맺어오면서 늘 붙들고 매달려온 화두였습니다. 이 좋은 국악을 일반인들이 쉽게 듣고 좋아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화두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국악방송이야말로 제가 해야될 숙명적인 일이라 생각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국악방송의 시설규모와 특징은 무엇입니까?

서울에 FM방송국을 두게되고, 전북 남원에 FM중계소를 두어 방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예산과 인력으로 출발합니다. 설립 예산은 24억원으로 방송광고공사, 마사회, 문예진흥원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운영 인력은 국악 전공자 6명이 포함된 PD 8명과 기술팀 5명. 초미니 방송국인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인 최첨단디지털 시설로 녹음에서 송신소까지 모두 디지털기기가 해결합니다. 아날로그 기기가 있기도 하지만 그건 보조기기에 불과합니다. 모니터와 키보드를 통한 컴퓨터장치가 모든 것을 처리해 줍니다. 그래서 초미니 시설, 극소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무인송신소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본 기자가 아날로그 시설의 다른 방송국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이 방송국의 시설을 둘러본 소감은 놀랐다고 표현해야 할만한 것이었다. '오디오 파일'이라는 방송 시스템을 활용, 음악과 음악 해설 등 모든 방송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컴퓨터에 저장해서 꺼내 쓴다는 기술담당자의 도움말이었다.

컴퓨터로 자료를 검색하고 편집해 입력하면 진행자나 기술자가 없어도 컴퓨터가 방송을 내보낸다. 즉 자료를 찾느라 창고를 뒤지거나 PD가 스튜디오에서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밝은 음악, 우울한 음악도 컴퓨터가 선곡해주기도 한다. 음반이나 테이프를 트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느 방송국에서 흔히 보는 턴테이블이나 CD 플레이어 같은 녹음 재생장치가 없다. 대신 디지털 믹싱 콘솔과 여러 대의 컴퓨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100% 디지털 방송은 국내 처음이라는 기술담당자의 설명이다.

- 국악방송의 편성방향은 무엇입니까?

도시와 농촌에서 사라져 가는 국악문화의 발굴·보급에 힘쓸 것이며, 전통국악과 현대국악의 조화로운 보급과 한국 전통 문화의 소개 그리고 주한 외국인 및 위성시대를 대비해 영어방송도 할 계획입니다. 정치·사회 소식 및 상업광고는 배제될 것입니다.

또한 국악 애호가만 듣는 방송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즐겨 듣는 방송을 만들겠습니다. 어린이와 일반인을 위한 교양ㆍ교육용 프로그램을 위주로 전문 감상용 프로그램, 국립국악원의 공연 실황 중계, 주부ㆍ운전자ㆍ노년층ㆍ농어촌 주민 등 대상별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악에서부터 민속악까지 모두 골고루 수용하는 것은 물론 국악을 들으면서 민족문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우리의 민족문화를 동시에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 합니다. 퀴즈, 청취소감 등을 통한 청취자의 참여를 유도하여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 생각입니다.대중에게 다가가되 점잖고, 우아하고, 품위있는 방송이 될 것입니다.

- 국악방송이 개국한 뒤 예상되는 효과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연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국악감상 기회를 누구에게나 줄 수 있으며, 방송을 통한 국악교육으로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음악의 공감대 형성과 인기 국악프로그램과 국악스타의 탄생이 예상되어 국악의 대중적 생활화에 기여하는 등 많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립국악원이 전국에 천 개 이상 생기는 효과도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쉴 때 편안해지고, 운전할 때 차분해질 것이고, 이에 따라 모든 이의 심성이 여유롭고, 편안해지면 사회문화 전반이 아름답게 바뀌지 않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 본래의 전통문화를 회복하여 우리 겨레에게 여유있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해봅니다.

- 국악을 위시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민족문화가 서양문화에 밀려 숨을 죽이고 있는데 이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방 이후 음악교과서의 편수관이 서양음악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음악교육은 서양음악 일색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민족문화들도 같은 현상이었죠. 자연스럽게 서양적인 것이 몸에 배게 되고, 민족문화는 일반인들에게 낯설어지게 되었으며,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대중들은 민족의 자긍심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아름다운 한복을 입으면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하며, 국악을 들으면 고리타분하다고 하고, 전통차는 맛이 없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갔습니다.

우리 문화를 다시 살리려면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민족문화가 아름답고, 재미있고, 유익하고, 훌륭하다는 인식을 새롭게 심어줘야 합니다. 국악방송을 여는 것도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인터뷰 내내 채치성 편성팀장과 이윤경 편성부장에게서는 향기가 났다. 그 향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스프레이로 뿌린 향기가 아니라 국악과 함께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가지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국악방송은 지금 시험방송을 하고 있으며, 오는 3월 2일(금요일) 오후 2시에 개국식, 점등식을 하고, 본 방송을 시작한다. 이 날 저녁 7시 30분에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축하공연이 있으며, 방송으로 실황중계를 할 예정이다.

FM 99.1MHz, 국악을, 민족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라디오의 주파수를 여기에 고정해두라고 권하고싶다. 우리들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을 위해서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4. 4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