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H바이러스보다 더 끔찍했던 86년 4월

체르노빌 그 후 15년, 탁석산의 핵보유 주장을 반대한다

등록 2001.04.26 09:30수정 2001.04.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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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컴퓨터를 켜면서 많은 사람들이 흠칫 놀랐을 줄로 안다. ‘아차! 오늘이 4월 26일이지!’놀라며 혹시나 자기 컴퓨터가 ‘체르노빌(CIH)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나 않았는지 전전긍긍하며 이리저리 살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제 미리 백신파일로 안전장치를 해둔 사람이라면 안심하고 컴퓨터를 켰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왜 하필 4월 26일에 이런 악질적인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떠돌아다니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줄로 안다. 이 바이러스는 그저 컴퓨터를 망칠 뿐이지만, 지난 1986년 실제의 체르노빌에서는 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히로시마 원폭 때보다 200배나 많은 방사능을 누출했으며 인접한 세 개 공화국의 37만5000명의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었고 또한 이후 복구작업에 동원된 80만 명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안겨준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올해로 꼭 15년을 맞는다.

지금까지도 우크라이나에서는 330만 명이 방사능 치료를 받고 있고, 서울 면적의 5배에 해당하는 지역이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비옥하던 땅은 황무지가 되어 버렸고 수없이 많은 마을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에겐 아직도 지독한 현실로 살아 있는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두려움을 덜 느끼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원자력 말고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그 위험덩어리를 끌어안고 끝까지 가 보자고 주장하고 있고, 자주국방을 위해서라면 핵무기 정도는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 주장의 선봉에 탁석산이 서 있다.

체르노빌 사건 이후 15년, 철학자 흄의 인과론을 공부했다는 철학자 탁석산이 <한국의 주체성>(내가 산 것은 2001년 1월에 인쇄된 초판 3쇄본이다. 출간 6개월만에 대단한 성과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또 다른 책 <한국의 정체성>은 수위를 달리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뒤이어 나온 이 책 역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나로선 기가 막힌 일이지만)에서 밝힌 핵 보유 주장에 나는 심히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나는 핵 무장을 주장한다. 약소국이 강대국에 맞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편이 바로 핵 무장이다. 핵이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는 것은 핵을 보유한 국가들의 논리일 뿐이다. 왜 우리는 핵 무장을 하면 안 되는가? 나는 과학이 우리에게 안겨 준 선물을 마음껏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43쪽)”


핵이 과연 과학의 선물이라고 불리울 자격이 있는 산물인가? 지금도 합천의 원폭병원에서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질 당시 일본에 끌려가 있었던 한국인들이 죽어가며 신음하고 있다.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들의 후세, 즉 그들의 손자, 손녀에게까지 고스란히 넘어가 대를 이어 불행을 안고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할 뿐이다.

과학의 선물이라고 얘기하는 또 하나의 난제, 인간복제만 해도 그렇다. 의학계에서는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탁월한 성과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결과가 끔찍하기만 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고로 팔 하나를 잃어 나의 복제인간을 만들고 그에게서 팔 하나를 취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감히 결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자. 그가 바로 나이고, 나의 복제인간이라면 그 역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고픈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 팔 하나 정도 자르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면? 그의 생명을 죽여 나의 생명을 연장할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을까? 이런 윤리적인 명제에 대한 어떤 답도 내리지 못한 채 과학이란 녀석은 전 인류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버렸다, 이미.

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당장 내 손에 피 묻히는 일은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불러올 처참한 결과에 대해 단 1%도 책임질 수 없는 것 아닌가? 약소국이 강대국에 맞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편은 핵 무장이 아니라 그들의 핵을 무장해제시키고 그 막대한 비용을 지구 환경을 위한 대체에너지 개발, 공동의 평화프로젝트 따위를 수행하는 데 쓰도록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왜 핵 무장을 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들 강대국 국민들의 생명도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생명의 존엄은 나라도, 국경도, 인종도 따지지 않는 법이다. 나의 생명만큼이나 상대방의 그것도 소중한 것이므로 다 같이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당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 글을 읽으며 문득 미군의 성폭행문제로 시끄럽던 때, 어느 대학의 총여학생회에서 내걸었던 플래카드의 문구가 떠올랐다.
“성폭행은 니네 나라에서! 미국을 반대한다, 양키 고홈!”
미국 여성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이냐며 일대 논란을 일으켰던 그 문구를 떠올리는 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타국민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인식은 이 땅의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핵은 위험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미국의 핵무기도 없애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핵무기를 없애지 않고 계속 보유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67쪽)”

첫 번째 문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옳은 말이다. 그래서 전세계 환경단체가 싸우고 있는 것 아닌가? 전세계 모든 국가가 핵을 포기하고 핵발전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옆 집 철수가 가진 똑같은 장난감을 사 내라고 엄마에게 떼를 써서는 안될 일 아닌가? ‘그 날 이후’란 영화를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핵전쟁 후 인류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비참함, 절망, 따위의 말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암울한 세계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국으로 치닫고자 하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핵 보유를 자주국방의 지름길로 오해하게 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아마도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일 것이다. 모델이 되었던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박정희를 무진장 싫어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소설 속에서는 두 사람이 ‘구국의 결단’을 내리고 함께 핵개발을 주창하는 것으로 그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던 이 소설에서는 노골적으로 민족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독자를 호전적인 우익으로 돌려세운 바 있었다.

이들의 주장을 온건히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평화란 언제나 국어사전에서만 살아 있는 유명무실한 단어에 불과할 것이다.

“가령 미국의 주장대로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하자 일본과 북한도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동북아의 평화와 질서가 무너지는가? 오히려 핵을 통한 세력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즉 남한과 북한은 더 이상 군사적 위협을 운위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 서로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군사적 모험을 하려고 하겠는가? (70쪽)”

모래 위에 세운 평화가 과연 얼마나 가겠는가? 각자의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한 다음, 어쩌면 겉으로는 화평해 보일지 모른다. 어쩌면 한동안은 진정한 평화가 온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평화와 균형은 당연히 거짓이고 위선일 뿐더러, 모든 국민이 단 하루도 깊이 잠들지 못하는 팽팽한 긴장 위에 자리잡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단 한 순간의 잘못으로도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 죽는 것보다는 남까지 같이 죽는 걸 보는 게 속 편하다는 말 아닌가? 죽어도 나 혼자는 못 죽겠다는 논리 말이다.

조지 클루니의 ‘페일 세이프’란 영화를 보면, 두 나라 사이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핵전쟁이 일어나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죽어간 생명에 대해 결정권자는 어떤 책임도 질 수 없었다. 현실도 이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극우주의자도 반평화주의자도 환경보호 반대론자도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는 탁석산(내가 생각하기엔 자기가 아니라고 한 셋 다 해당한다고 보여진다)의 핵 보유 주장을 나는 결단코 반대한다.

다소 장황하게, 어쩌면 불필요하게 감정적으로 이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핵을 보유하는 일은 체르노빌 바이러스를 걱정하며 컴퓨터를 켜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다.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껴안고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낸 세금이 단 한 푼이라도 핵개발에 쓰이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지난 2000년 4월 1일부터 2001년 3월 31일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핵관련 10대 사건(참조:녹색연합 선정 10대 뉴스 www.greenkorea.org)만 봐도 그렇다.

2000년 11월에 발생한 울산 방사성 동위원소 파손 사고를 비롯, 울진 원자력 발전소 핵폐기물 임시 보관 저장조 누수 사건(무려 300일 동안 20톤의 핵연료 저장조 냉각수가 누수되고 있었단다), 울진·영광 핵발전소 5, 6호기 내벽 균열 발생 등 핵무기를 지니지 않은 지금도 이미 우리는 충분히 불안하다. 핵사고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삼풍이나 대구지하철, 성수대교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체르노빌 폭발로부터 15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피해갈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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