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자화상, '구사대'로 변한 노조

광주 캐리어노조, 비정규직 노동자 '발목잡기' 동원

등록 2001.04.27 13:21수정 2001.04.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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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근로자에 대한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들어간 캐리어하청노동조합(위원장 이경석, 하청노조)에 대해 (주)캐리어 측이 공권력 투입을 요청함과 동시에 캐리어노동조합원(관리직)·경비용역업체를 이용해 하청노조원들의 출근을 막아서고 있어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80여명의 하청노조원들은 공장점거농성에 들어간 상태지만 (주)캐리어측은 "대화할 이유가 없다"며 맞서고 있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특히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할 주체인 캐리어노동조합(위원장 이현석)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회사측에 동조하고 있어 노-노간 갈등양상을 보여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라는 허울만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관련기사1 - 캐리어하청노조, 정문대치 4일째 '노-노대립 계속'
관련기사2 -우리는 왜 하청노동자들을 막고 있나

광주, 캐리어하청노조의 희망찾기

▲ "상시근로자, 정규직화", 6시간 부분파업
ⓒ <시민의소리>제공
지난 16일부터 하청노조는 간접고용을 통한 임금착취반대, 상시근로자 350여 명에 대한 정규직화,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부분파업'을 파업10일째인 26일 '공장점거투쟁'으로 수위를 높었다.

전국금속연맹 광주전남본부 유희양 부장에 따르면 25일 오후 3시를 기해 하청업체의 직장 폐쇄에 이어 (주)캐리어가 관리직 전체 사원을 회사식당에 집결시키고 하청노조 조합원들의 출근을 봉쇄한 채 농성중인 노조원에 대해 폭력진압을 시도하려 했다.

하청노조는 "선봉대를 조직해 천막농성 중이었으나 원청인 캐리어가 공권력을 요청하는 등 폭력진압 가능성을"보여 "공장점거 농성에 들어갔으며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이 집결해 있다"고 밝혔다.

이경석 하청노조위원장 등 노조원 80여명은 F1 조립룸을 25일 저녁 10시경부터 점거하고 "사태해결을 위해 원청 (주)캐리어가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앞서 대우캐리어측은 지난 2월 18일 공식 결성된 하청노조 이경석 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간부들에 대해 2월 22일 '해고'통지를 보냈다. 노조결성을 이유로 한 해고는 대우캐리어측이 하청노조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노조원의 해고는 지방노동청에 의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사측에서는 "5월에 복직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노조는 700여 명의 하청노동자 중 480여 명이 조합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캐리어 하청업체인 청우실업, (주)대명, 한보산업개발, 명신실업, 캐리어냉열, 광지실업 등 6개 용역업체와 교섭을 벌이고 지난 3일에는 지방노동청에 조정신청을 했으나 결국 결렬돼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실질적 권한을 가진 (주)캐리어가 직접 나서서 단체협상에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주)캐리어는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여섯 차례의 단체협상 요구에 책임을 회피하며 "대화할 이유가 없다"며 "용역업체와 해결하라"고 맞서고 있다.

(주)캐리어는 6개 업체에 하청을 주고 있지만 하청노동자에 대한 작업지시 등을 직접하고 있어 '노동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하청노조 송영종 사무국장은 "용역업체들은 실질적인 권한이 없어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서는 원청과의 협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캐리어는 에어컨 등 계절상품을 생산하는 업체여서 필요에 따라서는 700명에 이르는 인원이 일을 하지만 350여 명은 상시적으로 생산라인에서 작업을 한다.

박병규 금속연맹 광주전남본부장은 "파견근로자법에 따라 2년 이상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 원청에서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이 있다"며 "이들 상시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월 평균 70여 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지만 간접고용으로 인해 1인당 30만원 ∼ 40만원 정도는 용역회사에 착취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사무국장은 "이런 용역업체에 의한 중간착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안전복 등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는 장비 또한 낡아 근로조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대치. 26일 오전부터 캐리어노조원들은 사측의 구사대로 나섰고(왼쪽) 하청노조원(오른쪽)들과 대치하고 하고 있다. ⓒ 강성관
걸음을 뗀지 2달여만에 이들은 각종 근로조건개선, 상시 근로자의 정규직화라는 희망을 찾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들의 희망찾기를 막아선 것은 당연히 원청인 (주)캐리어의 행태이다. 하지만 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캐리어노동조합, 바로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싸늘해진 시선과 적극적 방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막아선 하청노동자들의 희망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회사의 구사대를 자임하고 있다"

광주 (주)캐리어 정문 앞에서는 80년대와 90년대 초 노동운동 현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원청 캐리어노조원들이 사측의 '구사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80여명의 하청노조원들이 공장점거에 들어간 25일 저녁부터 (주)캐리어는 경비용역업체의 청원경찰과 관리직 사원들을 정문 앞에 배치하고 하청노동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어 노동자와 노동자간에 대치하는 상황.

원청 캐리어노동조합과 캐리어하청노동조합, 이들의 가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차이에 있다. 이들의 거리는 대치하고있는 정문을 가로지르는 도로 사이만큼이나 커보였다.

하청노조의 "연대와 지지의 '동지'여야 할" 대우캐리어노동조합원들이 절망의 '벽'을 쌓고 있다. 우리 노동운동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애초 캐리어노조는 하청노조 설립과정에서 연대와 지지를 보내와 노조 설립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들 가슴에 멍에를 지우고 있다."
하청노동자 최경호 씨의 말이다.

실제 하청노조는 지난 2월 캐리어노조의 총회에 200여 명이 참여해 연대를 과시하고 임단협 출정식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비정규직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는 없었다. 그러나 지나 3월 9일 비정규직철폐 전국순회투쟁단이 하청노조를 방문하고 연대집회를 갖는 과정에서 전경이 정문을 봉쇄해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캐리어노조위원장은 "조합원의 정서에 맞지 않다"며 임시대의원대회를 갖고 "앞으로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구사대로 나선 노동자들

원청 (주)캐리어의 캐리어노동조합은 19일 임단협을 모두 마쳤다. 하청노종자 김모 씨에 따르면 "캐리어노조는 임단협 4일만인 19일 기본급 7%인상 등 모든 부분을 합의하고 하청노동자들에 대해 재계약시(오는 9월) 기본급 9% 인상 등을 원청과 잠정합의했"지만 "캐리어노조는 하청노조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협상해 버렸다"고 말했다.

▲ 점점 높아가는 벽/ 26일 오후부터 캐리어측은 회사 정문을 쇠줄과 나무 받침대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트를 쳤다. 금속연맹 지역본부장과 하청노조 간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강성관
결국 하청노조의 요구사항인 '상시근로자 350여명에 대한 정규직화' '간접고용을 통한 임금착취반대' 등은 빠진 채 마무리되고 만 것이다.

하청노동자 최경호 씨는 "우리에게는 임금인상보다는 정규직화를 이루어내고 하청노조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며 "여전히 비정규직은 사측이나 정규직 노조에 의해 배척되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5일부터 회사 정문을 막아서고 있는 '구사대'에서는 이들 캐리어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하청노종자 최모 씨에 의하면 "26일 아침 노조에서는 사내방송을 통해 '우리가 뭉쳐서 정문을 막자' '모두 모이자'라고 집결시켜 이렇게 막아서고 있다"고 전했다.

한 하청노동자가 정문을 막아선 사람들을 향해 "관리직과 경비업체 청원경찰들은 이해할 수 있다"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여기에 나와 있는 노동조합원들은 시킨다고 나와 있으면 되느냐, 제발 들어가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정문을 막아선 한 노조원은 "회사를 말아먹으니까 이렇게 나와있다"며 "용역업체 사장에게 말해라,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갈 수 없다"고 되받아쳤다. 그의 말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금속연맹 지역본부,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은 '지원대책위'를 구성하고 캐리어노조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난감 할" 뿐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금속연맹 광주전남본부 한 간부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정규직화 요구에 대해 정규직들이 자신의 기득권 확보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조의 연대와 지지가 관건인데..."라며 답답해 했다.

캐리어노조가 이렇게 점거농성을 '진화'하고 나선 것은 '하청노조의 요구가 너무 많다' '조합원들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 후문은 콘테이너 박스로 막고 있다.
ⓒ 강성관
이에 대해 하청노조 사무국장은 "요구가 많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상시근로자의 정규직화, 불법파견 근무에서 오는 착취구조 개선 요구는 최소한의 법 조항이라도 지켜달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캐리어노조가 구사대로 나선 것에 대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노조에서 이럴 수 있느냐"며 "그것들은 민주노조 소속일 뿐 노조도 아니다"고 비난했다.

한편 캐리어노조 간부들 속에서도 노조의 적극적인 물리력 동원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리어노조 한 간부는 "노조원 모두가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함께 하려는 노동자들도 많다"며 노조 내에서도 대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하청노조의 파업은 용역업체의 직장폐쇄, 원청인 캐리어의 '노조불인정' 그리고 구사대로 나선 캐리어노조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복잡한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정규직들의 대응, "그럴 수 있는 노동자의 현실일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끼리의 대립이 어떻게 풀어져 나갈지가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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